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으로 도마 오른 법원의 ‘구속영장’

2022.09.20 16:17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등의 청년 단체 시민들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모여 ‘신당동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추모장소에서 마지막 발언을 하고 있다./한수빈 기자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등의 청년 단체 시민들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모여 ‘신당동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추모장소에서 마지막 발언을 하고 있다./한수빈 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의 불법촬영 혐의 구속영장을 지난해 법원이 기각한 사실이 알려진 뒤 이번 사건에 법원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스토킹 등 2차 가해나 강력 범죄 비화 가능성이 큰 범죄들의 경우 피해자 보호를 좀 더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구속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일 “현행 인신구속제도는 구속·불구속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한 구조로 구체적 사안마다 적절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구속영장단계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지난해 전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을 두고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게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조건부 석방제도는 불구속하되 피의자에게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거나, 거주 제한, 보증금 공탁 등 제한을 두는 제도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사법행정자문회의를 통해 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결정하고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대법원은 이 제도로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소송법상의 불구속 수사 원칙, 피해자 보호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예규를 만들어 스토킹 초기대응에서 중요한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청구를 신속히 처리하고 있고,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법원에선 피의자의 인신 구속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중심이었다. 전씨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의 소명·증거인멸 우려·도주 우려 등 크게 3가지 요건을 중심으로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기존의 관례 등에 따른 판단으로 보인다”며 “전씨를 구속할 정도로 발부 기준을 완화할 경우 경범죄자나 도주 우려 등이 적은 피의자들의 구속율도 높아지는 등 불구속 수사 원칙과 피의자 인권 보호라는 가치가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신당역 사건을 계기로 법원이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 범죄 등 재범 우려나 강력범죄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범죄의 경우 피해자 보호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여부를 결정할 때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이 이날 제시한 조건부 석방제도를 두고도 피해자 보호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법원의 지난해 논의 당시 이 제도가 피의자 석방을 전제로 해 피해자 안전과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보석금을 낼 형편이 되는 피의자만 석방되는 등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대한변협이 전날 “ 법원이 스토킹 범죄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석방) 시에는 가해자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능동적 감시가 가능하도록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선제적인 공권력의 개입과 제한조치를 감수하도록 하는 조건을 붙이는 조건부 석방제도를 마련하는 보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것도 그래서다.

홍기태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보다 본질적으로는 영장 심사 때 구속요건 해당 여부만을 법리적으로 따질 게 아니라, 실제 범죄별로 어떤 특성을 갖는지, 피의자의 행동 특성은 어떤 지를 살피고 이를 구속 여부 판단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가해자를 위주로 볼 수밖에 없지만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기존 잣대로 판단하는 게 부적절할 수 있다”며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더라도 (스토킹 범죄의 경우에는) 구속영장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가장 실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 스토킹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할 창구는 없는 상태다. 법원에 피해자 위해 우려를 주장하는 것은 검사 몫이라 스토킹 사건에 대한 검사의 관심과 의지에 따라 심사가 가지각색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드러난 행위만으로는 피해자가 느낀 공포 등 피해를 가늠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스토킹 범죄의 경우에도 성폭력 사건처럼 피해자 변호사 특례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호사는 피의자 구속영장 심사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검사와 피고인이 주체인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재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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