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백의민족이라 했던가? 활옷을 감상하며 드는 생각이다. 조선 왕실의 예복으로 여성이 결혼할 때 입던 혼례복이 활옷이다. 직접 마주하니 환희와 장엄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하다. 활옷이라는 용어는 순수 한글이다. 그 유래는 몇 가지 있으나, 나는 이런 느낌을 살려 ‘활(活)’옷으로 해석하고 싶다.

붉은색이 주조색인 활옷은 무엇보다 그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도 않다. 화려하지만, 들이밀지 않는 오묘하고 깊은 색이다. 백제와 조선의 미학 중 하나인 화이불치(華而不侈)가 활옷에도 유효하다. 활옷의 원조인 홍장삼(紅長衫)은 기품이 있고 소매가 넓고 길어 넉넉한 품을 보여준다. 붉은 비단 위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각종 자수와 금박은 지극하다.

이 붉은빛의 정체는 잇꽃이다. 잇꽃은 옛말 ‘닛곶(닛곳)’에서 비롯된 말로 그 유래는 여럿이다.

그중 잎과 총포(總苞)의 톱니 모양 생김새가 이(齒)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다(조민제 등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흔히 홍화로 알려진 잇꽃은 한여름에 붉은빛을 띤 황색의 꽃이 피는데, 언뜻 엉겅퀴를 닮았다. 씨앗으로 기름을 짜지만, 꽃을 이용한 염료식물로 더 유명하다. 평양의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홍색 천이 잇꽃 염색이었다니 그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에는 잇꽃의 꽃잎 1근이 쌀 한 섬 값이고, 염색 과정도 지난하여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색감은 진홍, 심홍, 대홍 등의 단계가 있다. 대홍은 왕실 전유의 색으로, 잇꽃을 사용해 마지막 단계에 얻게 되는 가장 짙고 귀한 홍색을 말한다.

조선 왕실의 복식 색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다. 음양오행의 기본색은 청, 백, 적, 흑, 황의 오색이다. 오색은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정색(正色)으로 양에, 홍색은 적과 백이 섞인 간색(間色)으로 음에 해당한다. 생성·창조를 상징하는 적색과 진실·순결을 상징하는 백색이 결합한 색이 홍색이니, 왕실 여성의 혼례복 색으로는 으뜸이다.

거의 200여년이 지났음에도, 활옷의 홍색은 그 빛이 살아 있어 당시의 영기를 내뿜는다. 이성지합(二姓之合)이 만복지원(萬福之源)이라! 떨리는 가슴을 붉은 활옷 속에 감추었을 어린 공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무슨 소용 있으랴, 직접 보고 감상하시라. 겨울의 문턱에서 가슴속에 뜨거운 불을 지피는 ‘활옷만개’ 전시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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