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상공에 다시 위성정당이 떠오르고 있다. 거대 양당의 탐욕이 쏘아 올렸다. 그 위성의 불빛을 좇아 정치인들이 몰려들 것이다. 사다리를 내려달라고 발을 구르며 읍소할 것이다. 흡사 휴거를 기다리는 종교집단처럼 한바탕 굿판이 벌어질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총선을 앞둔 봄날 이런 글을 썼다.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여의도 상공엔 위성정당(위성이란 용어가 점잖다. 어떤 이는 괴뢰라 칭한다)이 떠 있다. 위성정당에서 쏟아지는 요설(妖說)이 봄날을 어지럽힌다. 국민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정당정치는 십리나 후퇴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왜소해지고 있다. 군소정당과 함께 가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어내야 한다. 금배지 달아보겠다고 허겁지겁 번호표 받아들고 위성정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인물들 참으로 없어보인다.”(2020년 4월3일자 경향신문)
승자 독식과 거대 양당의 독점 구도를 막자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놓고 한순간에 파기해버렸다. 민주당이 이처럼 국민과의 약속을 깨버린 적이 있었는가. 민주당 지지자들마저 낯을 들 수 없었다. 소탐대실, 대의를 저버리면 그 후과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이겼지만 대통령선거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졌다. 사견이지만 패배의 시작은 위성정당을 띄워 도덕적 우위를 스스로 지운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교하게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위성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헤어질 결심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정당정치는 4년 전보다 후퇴했고 민주주의는 더욱 왜소해졌다.
이재명 대표가 위성정당을 띄우겠다고 선언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누구 하나 일어나 안 된다고 외치지 않았다. 4년 전엔 당내에서 비판여론이 일었지만 이번엔 안팎이 조용하다. 위성정당방지법을 만들자며 날을 세웠던 의원조차 병립형으로 회귀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물러섰다. 무도한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려면 한 석도 아쉽다는 핑계를 댈 것이다. 무례하고 진부하다.
언제부터인지 정치권에 새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새 인물이 당내 경쟁을 통해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구든 정당에 들어오면 내부의 기득권에 편입되고 충성을 강요당한다. 처음부터 당내 권력에 줄을 서야 하고, 당론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찍히면 퇴출이다. 정치신인들도 그렇게 ‘젊은 꼰대’가 되어간다. 인걸의 빼어난 자질도 기성정치인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 새로운 세력을 모으는 리더십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그래서 새 얼굴도 도로 그 얼굴이다. 이 모든 것이 양당제의 고착화에서 비롯되었다.
정치개혁을 외치면서도 적대적 공생을 위한 양당의 성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제도권에서 서로 싸우며 새 인물과 세력은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다. 내놓는 정책들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의사당에서는 활기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개혁 대상들에게 개혁을 맡겨야 하니 겉돌 수밖에 없다. 결국 민심은 제도권 밖으로 눈을 돌렸고 급기야 윤석열, 한동훈 같은 정치 문외한들이 완장을 차고 들어와 정치판을 휘젓고 있다. 초보 정치인들이 기존 관행을 질타하며 제도권 정치인들을 조롱해도 대응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 그만큼 정치 토양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든 지방선거든, 양대 정당 후보 중 승자가 권력을 다 가져가는 현실이다 보니, 양당의 기성 정치권에 어떻게든 잘 보여야 정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하여 들어오는 자는 그의 나이가 몇 살이든 기존 구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흐르지 않는 물길에 고인 물은 오래되어서 고인 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인 물이다.”(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약속이 뒤집히고, 술수와 거짓말이 아무나 찌르고, 대의는 실종되었다. 신의와 도덕이 무너진 자리에는 집단이기와 사리사욕만 돋아나고 있다.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정치판은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 이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상황도 한계에 이르렀다. 정치권에 봄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 어떤 설렘도 없이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