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사태를 보며 연금개혁을 생각하다

2024.03.18 20:23 입력 2024.03.18 20:25 수정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극으로 치닫는 갈등을 보며 다음 연금개혁은 어떻게 진행될까 생각해본다. 연금개혁에 관해 국회 주도로 국민 의견수렴 절차, 즉 공론화 과정이 진행 중이다. 연금개혁이 의대 증원 사태가 가는 길을 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들이 학습과 토의를 거쳐 직접 연금개혁안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숙의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주요 정당들이 연금개혁에 관해 침묵하고 넘어갈 수 있게 면책권을 주는 효과도 있다.

공론화 과정에서 노동자, 사용자, 여성, 농민, 소상공인, 청년, 노인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이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선택지를 두 개로 정리해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더 내고 더 받는 것’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것’ 두 가지다. 구체적으로 1안은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소득대체율 50%로 올리고 보험료율은 13%로 조정하는 것, 2안은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소득대체율 40%로 하되 보험료율은 12%로 하는 것이다. 숙의단은 개혁의 선택지를 제시할 뿐 최종 선택은 500인의 국민대표단이 한다.

이후 일부 언론은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쏟아냈다. 언론의 관심은 연금개혁에 대한 넓은 공론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에 기초할 때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논의 지형을 왜곡시키고, 우리 연금정치에서 새롭게 시도해보는 숙의민주주의를 새싹 단계에서 짓밟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선 몇몇은 공론화 과정 자체를 문제 삼는다.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이 개혁안을 도출하고 전문가가 개입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문가는 개혁안 선택지 초안을 만들고 상반되는 입장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사실 의제숙의단의 집단지성이 전문가보다 나을 때도 많다. 예컨대 연금개혁 의제 중 하나로 ‘세대 간 형평성 강화’가 제시되었지만 의제숙의단 다수는 이를 ‘세대 간 연대 강화’로 바꾸자고 공식 제안하였다. 공적연금을 지탱하는 것이 ‘세대 간 연대’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국회 공론화과정에서는 오히려 숙의단으로 모인 이해관계자의 역할이 다른 사회적 합의 시도에 비해 크게 축소되어 있어 우려스럽다.

숙의단 논의 결과를 폄훼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연금이 거대한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다는 거짓말, 그리고 노인세대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젊은 세대는 희생을 치를 것이라는 왜곡된 통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확산시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경제 대비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큰 기금을 쌓아놓고 있으며, 장기 미래에 점진적인 제도 조정과 다양한 재원 확보, 노동·사회개혁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여력이 있다. 국민연금 재정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부채계산으로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이미 GDP의 10% 이상을 공적연금에 지출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을 보라. 더욱이 노인빈곤율이 다시 40%를 넘은 지금, 한국 노인의 기득권을 말하고, 보장성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의 근거는 어디 있는가?

몇몇 이들은 공론화 결과로 국민이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을 선택한다면 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익명의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까지 인용하며 설파한다. 공론화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이를 파기하자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협의의 여지 없이 강 대 강 대치로 치닫는 의대 증원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환자에게 필수적인 보장성과 공공성 강화라는 진짜 의료개혁 없이, 의사 수 증원만 둘러싸고 갈등하는 상황이 연금개혁에서 반복될까 우려스럽다. 진짜 노후보장 강화 없이 보험료율 인상만 남은 연금개혁을 둘러싼 허위 강성 대립은 결국 사연금 상품을 파는 이들에게만 이득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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