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만큼 정권심판 민심을 표징하는 것도 없다. 집권 2년도 되기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정권 조기 종식’ 구호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만큼 심판 민심은 매서웠다. 여당이 108석으로, 간신히 탄핵 저지선을 지켰지만 내용상으론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임’에 가깝다. 내각제 같으면 총리가 물러나고 정권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권은 남은 임기 3년도 극한 여소야대 우산 아래 놓이게 됐다. 야당 협조나 양해 없이는 입법, 예산, 인사, 법제화가 필요한 정책 등에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윤 대통령은 일찍이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식물 대통령’이 실체로 다가왔다.
총선 결과는 국정 기조의 전면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응답했다. 응당 그리하여야 하나, 소환되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뒤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쇄신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 제대로 반성하고 국정을 쇄신했다면 총선 결과가 이렇지는 않았을 터이다.
국정 쇄신,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오만·독선·불통의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쇄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단기에 윤 대통령의 변화와 국정 쇄신 의지를 검증할 수 있는 다섯 개의 시험대가 앞에 있다. 인적 쇄신, 협치, 소통, ‘해병대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문제다.
가장 먼저 이뤄질 인적 쇄신.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내각 인선에서 구태를 깨고 파격에 가까운 감동 인사를 할지 여부다. 야당도 비토할 수 없는, 거국 내각 효과를 낼 통합형 인사를 국무총리로 발탁하느냐가 핵심이다.
두 번째 협치, 먼저 손을 내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날지가 바로미터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여 야당과 대화·타협하는 정치의 복원에 나설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불통의 장막을 거두고 국민, 언론과 직접 소통하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다. 기자회견을 한사코 거부하고, 나홀로 담화나 국무회의 발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방 소통 방식을 개선할 것인가. 당장 ‘총선 패배 입장 발표’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따라 방향이 가늠된다.
다음으로 총선 후 제일 먼저 대통령 책상에 올라올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대처다. “국정 쇄신 의지는 ‘채 상병 특검법’을 대하는 자세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총선 와중에 이뤄진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이 정권심판론을 폭발시켰다.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순직 사건에서 보듯 국민을 지키지도 못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권의 무도함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여당 내에서도 특검법 수용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선 민의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채 상병 특검법’에 무조건 거부권으로 맞선다면, 윤 대통령의 ‘불변(不變)’을 공인하는 게 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변화 의지는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 ‘풀이’에서 확인될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품백 수수 사건’ 등 김 여사 관련 각종 의혹들을 단호히 정리할지 여부다. 끊이지 않는 대통령 부인의 국정 관여 의혹, 이를 확실히 불식시킬 조치가 나올지도 지켜봐야 한다. 뒷북치기 제2부속실 설치 등으론 해법이 될 수 없다. 종국엔 ‘김건희 특검법’을 대하는 자세가 모든 것을 말해줄 테다.
윤 대통령은 이 다섯 가지 시험대를 통과해 국정 쇄신과 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기대와 회의가 교차한다.
밀리기 싫어하고 고집스러운 윤 대통령이 총선 민의와는 반대로, 반동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어차피 여야 의석 분포는 21대 국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남은 3년의 국정도 지난 2년과 같이 독단적으로 운영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다섯 가지 시험지에 적힐 응답이 달라진다. 인적 쇄신은 감동 없는 보여주기에 그치고, 국무총리 인선은 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협치는 외면하고, 일방 불통은 개선하지 않고,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로 막을 것이다.
총선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이고, ‘이름뿐인 대통령’으로 전락을 자초하는 길이다. 윤 대통령이 끝내 변화를 거부하면, ‘이대로’ 3년은 너무 길고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