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 이젠 서재로 돌아가라”

2001.04.01 19:17

지난 2월 위암 수술을 받은 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직을 사퇴하고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소설가 이문구씨(60). 그저 ‘오후에 찾아뵙겠다’며 찾아간 길. 그는 마침 산책을 나가려고 준비하던 참이었다. “항암치료, 거 되게 힘들더구만. 체력 보충도 할 겸, 운동삼아 산책삼아 겸사겸사 요 뒤 올림픽공원에 나가보려는 거지 뭐”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 탓에 나가려던 행장을 풀고 앉은 그는 수술 뒤끝이라 조금 수척했지만 거침없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식구들이 피곤하니 그만하시라고 말릴 때까지 두어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문학과 문단생활, 문단의 현안에 대해 얘기했다. 거추장스러운 묻는 말은 빼고, 그의 이야기만 기록했다.

-문인들은 서재로 돌아가야 해요. 글을 안쓰면 그게 어디 문인입니까. 작가회의도, 문협도 군사독재 시대의 시대적 산물입니다. 성명내고 시위하고, 이젠 그런 세월이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회의를 비롯한 문인단체 자체가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지요. 좋게 말하면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할까.

-아쉬운 건, 문인 복지조합의 결말을 못맺은 거예요. 나처럼 누가 암에 걸렸다고 쳐봐요. 수술도 하고 투병도 해야 하는데, 작가한테 누가 돈 빌려줘요. 문인은 몸뚱이 말고 담보잡힐 게 뭐 있어. 그렇다고 매번 십시일반 돈을 걷어 줄 일도 아니고. 새 이사장이 되신 현기영 선생님이 잘 하시겠지요. 몇몇 회원들이 이것저것 성명내자고 할 때 많이 괴로웠어요. 문인들이 나설 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마광수씨, 장정일씨 구속문제가 터졌을 때 문인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야 했어요. 박정희기념관, 뭐 그런 것은 나설 일이 아니지요.

-서울생활이요? 한 40년 서울생활에 보다시피 잃은 건 건강이고, 얻은 건, 글쎄? ‘관촌수필’은 서울 살면서 쓰긴 썼는데 그것도 고향 보령 얘기니. 나만 6·25 전쟁 통에 부모 형제를 잃은 건 아니에요. 다들 그랬지요. 먹을 것 없이 자라 우리 세대 기억 속의 고향은 아름답지 않지요. 그런데 내가 쓴 작품을 모두 모아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고향의 산과 들, 나무와 풀 포기 하나 헐뜯은 대목이 없더라구요. 그게 고향인 것 같아요.

-지난 87년 위궤양으로 고생할 때에서야 안가던 고향에 내려갔지요. 거기서 병이 나았어요. 고향이 병을 고쳐준 거지요. 그때 눌러앉아야 했는데 문단 선후배 등쌀에 다시 올라왔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병도 그때 호미로 잘 막았던 건데 잘못해서 지금 가래로 다시 막는 셈이 됐지요.

-지난해 미당 빈소에 조문간 것과 동인문학상을 탄 거 가지고 말 많이 나온 걸 알아요. 실천문학 발행인으로 있을 때 친일파에 관한 책을 펴냈어요. 거기에 미당 선생도 있고, 백철 선생도 있고. 김동리 선생에게 갔더니 그러시더라고. 진짜 친일파는 춘원뿐이다, 처자식 벌어먹이려고 한 친일과 각반 차고 아침마다 일본천황에게 절을 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해선 안된다, 그렇게 하면 친일파가 안될 사람이 어디있느냐, 청록파는 신인일 때니 일본애들이 써먹으려 안한 것뿐이다 뭐 그런 말씀이었지요.

-그후 몇년 뒤 백철 선생이 돌아가셨는데 문상도 안갔어요. 평생 후회가 돼요. 어느날 출판기념회에 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미당 선생과 맞닥뜨렸어요. 그때 미당 선생이 자넨 나하고 술 한잔 먹어야겠어. 스승이 먼저 화해를 청한 거지요. 미당 팔순잔치에 가서 문인들이 모인 가운데 정식으로 사과했어요. 친일은 친일이고 문학의 스승은 스승이지요. 스승이 돌아가셨는데 조문을 안가다니요.

-동인문학상? 그땐 작가회의 이사장이라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계제가 안됐지요. 요즘은 우리 같이 환갑 나이된 사람에게 좀처럼 문학상을 주지 않잖아요. 미리 나 상 못받겠다, 이러고 나설 수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나보니 수상자가 돼있던 거지요. 또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제 문학선배이자 작가회의 원로들입니다. 그분들이 심사를 했는데 그걸 어떻게 거부합니까? 그러면 그분들을 인정하지 않는 거고, 그렇다면 그 분들을 작가회의에서 제명하는 게 원칙에 맞지요. 또 내가 그 상을 거부해봐요. 먼저 탄 사람은 뭐고 앞으로 탈 후배들은 얼마나 심적 부담이 가겠어요.

그는 문단에서 비켜서있으니 홀가분하다고 했다. 항암치료가 끝나면 아주 고향 보령으로 내려갈 작정이다.

〈윤성노기자 ysn0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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