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문학자리’ 개원

2010.08.01 21:18

“한국 근현대 문학은 당신을 만나 비로소 정신의 실핏줄 얻었습니다”

“당신, 이 세상에 오실 적/ 맨 처음 느낀 그 발가락은/ 간지러움이었나요/ 부끄러움이었나요/ 저 장흥 땅 진목리 잔등 타고 내려간/ 노을 아랫목이 여직 따땃한 것이/ 어째 당신이 저쯤에서 소주상 미리 봐놓고/ 짐짓 기둘리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한국 근현대문학은 이청준을 만나 비로소/ 정신의 실핏줄을 얻었다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살았던 모든 것이/ 들키고야 마는 커다란 물음표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 둥그렇게 부풀어 오는 부끄러움 어찌하지 못하고….”(황지우 추모시 ‘거룩한 염치’)

미백(未百) 이청준(1939~2008)은 한국 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당신들의 천국> <축제>를 비롯한 장편과 ‘소문의 벽’ ‘눈길’ ‘서편제’ 등의 중단편들에서 정치·사회적 메커니즘의 횡포와 그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권력과 언어의 관계에 천착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그의 작품들이 주는 울림은 지금 시대에도 한치의 빛바램이 없다.

소설가 이청준의 묘역 앞에 자리잡은 ‘이청준 문학자리’. 고인이 생전에 손수 그려넣은 장흥 문학지도와 이청준의 초상과 유문이 새겨진 ‘글기둥’, 이청준의 호 ‘未百’이 새겨진 14t의 ‘미백바위’가 득량만을 바라보고 있다.

소설가 이청준의 묘역 앞에 자리잡은 ‘이청준 문학자리’. 고인이 생전에 손수 그려넣은 장흥 문학지도와 이청준의 초상과 유문이 새겨진 ‘글기둥’, 이청준의 호 ‘未百’이 새겨진 14t의 ‘미백바위’가 득량만을 바라보고 있다.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 뒤로는 소설 ‘눈길’에서 주인공과 어머니가 새벽 눈길을 헤치고 가던 산길과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가 된 산자락이 자리잡고 있고, 앞으로는 이씨의 어머니가 늘 밭일을 하던 논밭 너머로 ‘여름의 추상’ 등의 무대가 된 망망한 바다가 펼쳐진 곳에 이청준의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31일 소설가 이청준의 2주기를 맞아 그의 묘역이 있는 전남 장흥군에서 열린 ‘이청준 문학자리 개원식’에 참석한 문화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

31일 소설가 이청준의 2주기를 맞아 그의 묘역이 있는 전남 장흥군에서 열린 ‘이청준 문학자리 개원식’에 참석한 문화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

소설가 이청준의 2주기를 기념해 그의 넋과 문학을 기리기 위한 ‘이청준 문학자리’ 개원식이 지난 31일 장흥 이청준 선생 묘역 앞에서 열렸다. 문학평론가 김병익·김치수·김화영,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 정현종·황동규·황지우 시인, 소설가 김승옥·한승원·최일남·윤후명, 영화감독 임권택·이창동, 철학자 박이문 등 문화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씨의 묘소 바로 앞에 마련된 ‘이청준 문학자리’는 가로 7m·세로 7m의 네모 반듯한 돌방석으로 고인이 살아 생전에 ‘서편제’ ‘눈길’을 비롯한 자신의 작품들이 태어난 곳을 손수 그린 문학 지도를 새겨넣은 ‘바닥’과 김선두 화백이 그린 작가의 초상, 이씨가 유서처럼 남긴 ‘해변 아리랑’의 한 대목 등을 새긴 ‘글기둥’, 14t의 거대한 오석색에 그의 호 ‘未百’을 묵직하게 새겨넣은 ‘미백바위’로 이뤄졌다. 조각가 신옥주·박정환 부부가 제작한 ‘문학자리’의 공사비 1억원은 독자와 문인, 문화계 인사들 277명과 6개의 단체가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부금으로 채워졌다.

이날 행사에는 2015년까지 6년에 걸쳐 이청준 문학을 총망라해 발간할 예정(전 33종·34권)인 ‘이청준 전집’(문학과지성사)의 1차분인 <병신과 머저리> <매잡이> 봉정식도 함께 진행됐다. 이청준추모사업회장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어지러운 세상을 먼저 겪고 참아내신 그 생애와 사유에서 우리의 어려움을 이겨낼 길을 헤아려 찾고, 더 심하게 거칠어진 사람들의 억척스러움 앞에서 진지한 고통을 통해 사랑과 화해를 가르친 문학과 정신으로 우리의 더럽혀진 속을 씻어낸다”고 말했다. 전남 장흥군은 앞으로 이청준 문학관 건립 등 이청준 추모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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