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낯선 일상 ‘보편성’으로 버무려…내 만년문학 전환점 ”

새 장편 ‘낯익은 세상’ 펴내… 작품 구상 중국 리장서 기자간담회

작가 황석영씨(68)는 신작 장편 <낯익은 세상>이 ‘만년문학’으로의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그의 문학 전반기가 ‘객지’ ‘삼포가는 길’ 등으로 대표됐다면, 망명과 징역살이 이후 1998년부터 내놓은 작품이 후반기에 해당된다. “한 10년 동안 작업하다보니 본능적으로 위기감이 들었어요. 거의 해마다 뭔가를 써 왔는데 매너리즘이 온 것 같기도 하고, 또 한 번 자기변신을 하지 않으면 당분간 글을 못 쓰겠다는 초조함이 있었죠.”

변신의 지렛대로 선택한 것은 ‘보편성’이었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한반도로부터도, 세계로부터도 동떨어진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천년 가까이 보존돼온 고성이 찬연한 중국 윈난성 리장은 그런 의미에서 맞춤한 장소였다. 그는 이곳에서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여간 소설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귀국해 올해 3~4월 제주도에서 집필을 마무리했다.

소설 출간에 맞춰 그는 다시 리장을 찾았다. 황석영은 1일 소설의 고갱이를 만들어 낸 리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에 추구했던 세계와 가치를 표현하는 데 있어 현실에 밀착해서 쓰기보다 수십년 전이나 지금의 현실이나 일맥상통하게 흐르고 있는 것들을 좀 더 보편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 황석영씨가 1일 중국 리장의 한 거리에서 신작 <낯익은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작가 황석영씨가 1일 중국 리장의 한 거리에서 신작 <낯익은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이번 소설을 구상하면서 프란츠 카프카를 떠올렸다고 했다. “카프카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그리는데, 사건과 사물의 배치가 엉뚱해 저절로 추상적인 작품이 됩니다. 그렇게 그려낸 추상적 세계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을 반성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보편성이 곧 추상화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낯익은 세상’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추상적으로 그려진 ‘낯선 세상’을 뒤집은 것이다. “쓰레기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굉장히 낯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뭐가 낯설어, 결국 우리가 벌여놓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늘 살고 있는 대도시이지만 밤늦게 이름모를 모퉁이에서 길을 잃을 때 느끼는 낯섦과 같습니다.”

시대 배경과 인물이 모두 아슴푸레하게 그려진 것은 그러한 보편화와 추상화의 일환이다. 소설은 80년대 중반을 연상시키지만 구체적 설명은 없다. 인물들도 모두 이름 없이 아수라, 두더지, 땜통 등의 별명으로만 호칭된다. ‘딱부리’라는 열네 살 먹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그렇다. 구체적인 삶의 전선을 맞닥뜨려야 하는 어른들의 일상에서 비켜나, “전쟁을 맞아서도 천진난만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 장소로 ‘쓰레기장’을 선택한 것은 “우리들이 자본주의 문명을 만들어 오면서 잘못 이뤄온 세상의 모순들이 집약된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쓰레기장이란 상황을 집어낸 것이지 그 자체를 소설의 소재로 삼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우리가 예전에 살아온 기억들을 함부로 버리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생애 속에서 소비해 버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지난 기간에 살아왔던 욕망의 잔재들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쓰레기장”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가 되묻는 것은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집단 우울증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 영성이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그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도깨비’로 대변되는 삶 속의 정령성이다. “사람이 손으로 정성 들여 만들어 썼던 물건들이 오래되면 도깨비가 되는데 우리가 이뤄낸 세상이란 게 그러한 고유한 정령성을 계속 죽이면서 이뤄냈던 것 같습니다.” 손으로 만든 메밀묵을 도깨비인 ‘김서방네’에게 먹이는 소설의 장면은 그렇게 손때 묻은 것이 아니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인간관계든 사물이든 ‘레디메이드’되고 소비되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듯하다.

그럼에도 당장의 현실에 맞서 싸우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시 쓰레기장에서 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자’는 맥빠진 이야기로 읽힐 소지도 있어 보인다.

황석영은 “누구는 같은 시대를 그린 ‘객지’가 서정화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며 “이제는 옛날 식으로 (주장을) 앞세워서 얘기하기보다 조화롭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이 내게 만년문학의 특징을 배려·회한·자성의 ‘배회자’라고 말하던데, 주변에서도 이제 잘난 척하지 말고 상대방 얘기도 들으라고 하는 얘기를 좀 들었어요.”

그는 “이번 작품은 여태까지 써 온 작품들과는 달리 새로운 쪽으로 나갈 길이 보이니까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앞으로연재를 하지 않고 전작소설을 집필할 예정이라는 황석영은 등단 50년을 맞는 내년에 스스로의 작가인생을 담은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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