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2013.03.27 22:38 입력 2013.03.27 23:10 수정
금정연 | 서평가

▲ 시간의 향기 | 한병철·문학과지성사

[오늘의 사색]시간의 향기

“30년 뒤에 하이데거는 다시 깊은 권태와 향수 사이의 인접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고향은 여전히 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오직 추구의 대상으로서만 그러하다.

왜냐하면 우리를 온갖 심심풀이에 빠져들게 하는 것, 즉 고향이 아닌 속에서 낯선 것, 흥분시키는 것, 마력적인 것을 통해 날마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그런 심심풀이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바로-거의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는-깊은 권태라는 근본 정조인 것이다.(…)

시간은 지속성을, 장구함을, 느림을 잃어버린다. 시간이 주의를 지속적으로 묶어두지 못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것, 자극적인 것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텅 빈 간격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권태는 필연적으로 “놀라운 것, 거듭하여 갑자기 새롭게 휘몰아치는 것, ‘충격적인 것’을 향한 중독”을 수반한다. 충만한 지속성은 “한시도 쉴 줄 모르고 계속되는 기발한 활동”에 밀려난다. 하이데거는 더 이상 행동을 향한 결단을 깊은 권태의 대척점에 두지 않는다. 그는 이제 “결연한 시선”이 긴 것, 느린 것을 보기에는 너무 근시여서 긴 시간의 향기를 느낄 줄 모른다는 것, 과도하게 고양된 주체성이야말로 깊은 권태가 생겨나게 한 주된 원인이라는 것, 더 많은 자기 생각보다는 더 많은 세상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행동보다는 더 많은 머무름이 권태의 저주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짧은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독서를 멈추어야 했다. 얼핏 가벼운 제목과 만만한 분량과는 달리, 중심을 잃은 채 무차별한 시간에 휩쓸리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는 저자의 글은 읽는 이에게 사색을 요구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스마트폰을 집었다. 마침 내가 즐기는 게임이 포인트를 두 배로 적립해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다니, 참으로 빌어먹을 저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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