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여친을 알고 싶으면, 그녀가 먹는 음식을 보세요

2015.05.01 21:26 입력 2015.05.01 21:49 수정

▲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데버러 럽턴 지음·박형신 옮김 | 한울 | 336쪽 | 3만6000원

[책과 삶]여친을 알고 싶으면, 그녀가 먹는 음식을 보세요

음식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단순히 살기 위해 먹는다는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을 ‘특징짓는’ 상징적 기능도 담당한다. 주위와 다양한 관계를 맺을 때도 음식은 중요한 매개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학에서 음식에 주목하는 건 이 때문이다.<음식과 먹기의 사회학>은 호주의 여류 사회학자 데버러 럽턴이 1996년에 펴냈다. 약 2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지만 ‘옛날 얘기’라는 느낌은 없다. 옮긴이 박형신의 말처럼 ‘엄격한 사회학자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음식과 관련한 회상에 잠기게’ 되기 때문이다. ‘음식과 먹기’라는 지극히 일상적 행위를 영양학·사회학·인류학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첫 장(음식과 먹기:이론적 관점)은 다소 딱딱하다. 2장부터는 음식이 우리 생활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식습관·음식문화가 개인의 삶 나아가 사회와 어떤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방대한 자료, 다양한 사례, 치밀한 분석으로 엮어내 흥미롭게 읽힌다. 부제는 ‘음식, 몸, 자아’로 원작의 제목이다.책을 읽다 보면 가족,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하다가 겪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아, 그래서 그는 이렇게 행동했구나’ ‘나만 유별나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구나’ 등을 깨닫게 된다. 먹는 행위를 둘러싼 크고 작은 풍경에서 갈등과 조화를 반복하며 발전하는 사회의 모습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책과 삶]여친을 알고 싶으면, 그녀가 먹는 음식을 보세요

# 친구가 집에 식사초대를 했다. 무슨 의미일까.

저자에 따르면 음식은 복제 불가의 창조물이다. 재료 장만 등 그 준비가 복잡할수록 상징적 가치도 더 커진다.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고 요리에 정성을 들이는 것만큼 호의·경의를 표하는 선물은 없다는 의미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초대에 응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거절하더라도 초대자의 정성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게 좋다. 물론 공짜 선물은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대와 유사한 수준의 답례가 없다면, 다시 그 친구의 집을 방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끔한 지적이다.

# 부부가 말다툼을 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내는 남편과 화해하는 수단으로 특별한 요리나 평소 남편이 좋아하던 식사를 준비한다. 남자들은 초콜릿 같은 먹거리를 사거나 외식을 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남녀의 이런 차이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을 위해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자 틈을 노리는 여성의 모습과 귀가할 때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음식냄새에 흐뭇해하는 남성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뭔가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느낄 만한데, 저자가 인터뷰한 여성들은 남편과 아이를 위해, 또 생일 같은 날 특별한 이벤트로 음식을 만들거나, 만들고 싶어 했다. 애정과 정체성을 가득 담은 음식인 만큼 거부될 때의 분노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밥 안 먹는다고 혼내는 엄마의 내면엔 자식 염려도 있지만 자신을 거부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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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엄마가 정성껏 만든 음식보다 왜 과자를 더 좋아할까.

여기서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집약적으로 펼쳐지는 권력 투쟁의 공간이다. 먹는 걸 거부하는 행위는 부모보다 약세에 있는 아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 수단이다. 부모의 권위와 벌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정크 푸드’를 향한 탐닉도 같은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사탕과 같은 단 음식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의 행위는 맛 자체를 선호한다기보다 어른들이 싫어하는 음식이라는 점이 아이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사탕을 먹는 방식-손가락으로 집고 과장되게 씹고 거품 이는 소리를 내고 입에서 음식을 빼내는 것을 자주 포함하는-은 아이들에게는 ‘문명화된’ 먹기와 관련한 어른들의 예법에 대한 즐거운 반항의 하나이다.”(110쪽)

# 식사는 가족 갈등의 시작과 끝?

책은 영국의 이혼 부부와 재혼 부부에 대한 한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식사를 제때 준비하지 않아 발생한 마찰, 폭력 등 식사시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다양한 갈등 사례들이 나온다.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한 남편이 아내에게 요리를 기대할 때 폭력적이 된다는 사례도 있다.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간 큰 남편’ 얘기로 들리지만, 식탁에서 부모의 큰 다툼을 목격한 어린 시절 기억이 식습관이나 좋고 싫은 음식, 심지어 개인의 성격까지 결정한다는 얘기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책과 삶]여친을 알고 싶으면, 그녀가 먹는 음식을 보세요

# 식당서 음식 주문하는 모습 보면 그 사람의 세계관을 알 수 있다?

메뉴판보다 동료들의 선택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뉴판을 꼼꼼히 훑어본 뒤 선택을 내리거나 특정 메뉴에 호불호를 뚜렷하게 밝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스타일이든 음식 결정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 자기 통제 능력, 자기애, 영양에 대한 지식, 신체 건강에 대한 의지, 음식의 유래와 구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사회·경제적 지위, 민족성 등도 식탁 예절과 식사 속도의 차이를 낳는 요인이다.

# 스트레스는 비만의 주범?

차에 나쁜 가솔린을 넣는 것과 사람이 나쁜 음식을 먹는 것에 차이가 있을까. 당연히 없다. 몸에 좋은 건강 음식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예외가 있다.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다. 책에 소개된 여성들은 “행복하지 않을 때 먹는 경향이 있고, 게다가 나쁜 것들을 먹는다”고 말한다. 음식은 인생의 압박감을 견뎌낼 수 있는 한 원천이 될 수 있다. 문명 자체가 질병과 건강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되는 시대에 건강에도 안 좋은 음식을 굳이 찾아서 먹는 건 위안, 편안함,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 대학교수는 “정신을 차리고 많은 일을 해야 한다거나 기분이 나쁠 때에는 커피나 초콜릿, 비스킷을 먹는다”고 말한다. 이 책의 결론처럼 ‘음식은 친구이자 적’이며, ‘현대사회 또한 합리주의(금욕주의)와 낭만(쾌락)주의적 윤리 간 끝없는 긴장관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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