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국의 송어낚시 | 리처드 브라우티건

2016.06.22 23:29 입력 2016.06.23 09:53 수정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서울대 명예교수

잃어버린 하천을 찾아서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1967)는 1960년대 미 대학생들이 즐겨 읽던 ‘문화바이블’ 같은 책이었다. 메마른 현대문명, 오염되고 파괴된 자연환경과 정신생태계, 그리고 사라진 목가적 꿈을 슬퍼하며, 다시 한번 송어가 뛰노는 하천을 찾아 방랑하는 현대인의 기구(祈求)를 그린 소설은 한 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송어낚시>는 국내에서는 수난을 겪은 비운의 책이었다. 번역서의 제목만 보고 낚시코너에 진열한 서점 직원 탓에 책이 전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장석주, 최승자, 신경숙, 배수아, 천명관 같은 한국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들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승희의 ‘그림 속의 물’도 메마른 현대문명을 적실 하천을 찾는 시여서, <미국의 송어낚시>와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보는 현대는 한때 인간이 추적했던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이 하천의 송어로 축소된 시대이자, 생태계 파괴로 인해 송어와 하천마저 사라진 삭막한 시대이다. 좌절한 그가 발견하는 것은 시멘트 계단이 되어버린 하천과 굳어진 하천을 피트당 잘라서 팔고 있는 현대의 상업주의다. 그런 사회에서는 인간성이 고갈되고, 폭력이 난무하며, 코브라 릴리처럼 식물조차도 동물을 잡아먹는다.

송어 하천을 찾지 못해서였는지 브라우티건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소설은 나로 하여금 늘 목가적인 꿈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는 내게 낚시질은 기다림을 수반하지만, 언젠가는 풍요와 재생의 상징인 대어를 낚을 수 있다는 희망도 남겨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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