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금을 넘어가 남기고 온 것

단과대 리모델링 공사로 연구실을 옮기기 전까지 수년 동안 사용해왔던 공간은 문고리가 헐거워 문이 저절로 열릴 때가 많았다. 시설과 선생님께 말씀드려 몇 차례 손보았지만 여전했다. 그러니 주말이나 늦은 밤 학교에 남아 일할 때면 안쪽에서 문을 잠가두곤 했는데, 마침 그날은 잠그는 걸 깜박 잊었던 모양이다. 클래식 FM을 켜둔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끼익’ 하는 소리가 나길래 고개를 드니 닫아둔 문이 어느새 또 스르르 열려 있었다. 볼륨을 키운 것은 아니었으나 이어폰 아닌 스피커를 사용했으니 복도에 얼마간 음악소리가 들렸을 테다. 중간고사를 한 주 앞둔 토요일 오후였고, 같은 층 복도 저편엔 임용시험 준비실과 자습실이 있었다. 시험공부하는 학생들을 방해한 것은 아닐지 미안했다. 좋아하는 아리아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 때 가사도 못 외면서 서툰 음정으로 흥얼거리기까지 했는데 혹시 누가 들었으면 어쩌나 부끄러웠다. 소음에 민감한 학생이 ‘에브리타임’ 등의 온라인 게시공간에 ‘음악 테러한 사대 모 선생’에 관해 글을 남기면 어쩌나 겁도 났다.

잠시 후 머그컵을 씻으러 복도 끝 세면실로 가다가 우리 학과 학생을 마주쳤다. “시험 준비는 잘하고 있어?” 희미하게 웃으며 의례적 인사말을 건네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던 그녀가 “근데 아까 지나다가 교수님 방문이 열려 있길래…” 운을 뗐다. 스피커 소리가 실제로 꽤 컸던 것일까, 혹은 다른 학과 학생들의 불평을 전해듣고 진언을 해주려는 것일까. 긴장해 나도 모르게 일순간 표정이 굳었다. “열려 있길래 봤는데요. 음악을 들으며 몰두해 책을 들여다보고 계신 거. 그거 좀 멋있었어요.”

실은 그날 마쳐야 할 일 중엔 여러 행정업무 외에도 원고 마감과 세미나 토론문 작성과 수업자료 온라인 탑재 등이 있었다. 무엇부터 할지 고민하며 종종거리다 지레 지쳐 아무 책이나 펼쳐둔 채 한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고 음악 선율도 귀에 안 들어오던 순간. 그 남루하고 한심한 순간이 열린 문틈 사이로 잠시 저편에서 들여다본 타인의 시선엔 ‘토요일 오후에 음악 들으며 공부에 매진하는 연구자’로 비추어졌던 것일까. 긴장을 풀고 뒤돌아서서 피식 웃다 다음 순간 마음이 에였다. 웃기면서도 뭉클한 영화를 보고 나올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드물지만 이따금 아름다운 결을 지닌 누군가를 만나 그를 알아볼 때가 있다. 남루한 옷차림 안에 형형히 빛을 발하는 깨끗한 얼굴 같은 사람. 반듯하고 견고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진 사람. 단단한 갑옷 틈새의 여린 속내에 무언가 닿으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듯 무방비 상태가 되는 사람. 난 사회적 가면을 쓴 무리 안에서 그 희소한 존재들을 감별해낼 줄 안다는 데에 자긍심을 품어왔으나 그이들에게 내 존재는 빗금 바깥의 무엇일 뿐이었다. 상대의 내밀한 그늘을 보더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거나 함께 아파할 자격을 갖지 못한 존재. 대개 그 선을 내 쪽에서 알아서 지켜왔으나 언젠가 한 번, 어리석은 바람을 품고 빗금을 무모하게 넘어가려 한 적 있었다. 그다음은 예상대로였다. 관계를 만회하고 싶은 조바심, 이쪽에서 잘못한 게 혹시 더 있었나 하는 불안감, 근거 없는 추정에서 비롯된 절망.

어쩌면 당시 내가 감별해냈다고 여겼던 희소한 아름다움 또한 그날 그 학생의 시선에 담겼던 장면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예전 그때의 상대방도 지쳐 멍하니 있던 도중 누가 머뭇거리며 다가오니 긴장해 흠칫 굳었을 뿐일지 모르겠다고. 본인에 관한 엉뚱한 선망을 듣고 뒤돌아서며 그 역시 지금의 나처럼 그저 피식 웃었을지 모르겠다고. 빗금을 넘어가 상대의 내면에 남기고 온 것은 무거운 돌덩이가 아니라 찰나의 웃음이었을 수 있다고. 그 생각이 위안을 주었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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