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경제학원론 | 도미즈카 료조

2017.04.30 22:35 입력 2017.04.30 22:43 수정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자본론’의 간접체험

[류동민의 내 인생의 책] ①경제학원론 | 도미즈카 료조

온갖 진보적 사회과학 서적이 앞다투어 출간되던 1980년대에 번역된 ‘부총양삼’(富塚良三·도미즈카 료조)의 <경제학원론>은 심상한 제목과는 달리 독자를 압도하는 촘촘한 활자로 채워진 두툼한 분량 때문에라도 묘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경제학과 신입생 시절 선친에게서 선물 받은 이 책은 서가에 꽂힌 채 나를 노려보곤 했다.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일념에 심지어는 지하서클에 잠시 발을 걸치기도 했고, 강의실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가치’니 ‘공황’이니 하는 단어들을 밑줄 쳐 읽으며 어설픈 자부심도 가져 보았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전원리론’이라는 용어가 바로 <자본론>의 위장된 번역어임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이 책의 일회독을 거의 마칠 무렵이었던 듯하다. 한참 뒤 막상 ‘고전원리론’의 실물을 펼쳤을 때, 마땅히 느껴야 할 감동이나 혼란, 어려움 등은 그저 덤덤하게만 다가왔다. 마치 청소년용 요약본을 읽은 다음 접하는 고전문학의 원전이 이미 다 아는 얘기로 여겨지는 것과도 같이. <자본론> 같은 고전은 이미 고교 시절에 읽었다는 서구의 유명한 학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그저 한숨과 회한만 밀려올 따름이다. <성문종합영어>에 실린 조각글로나 버트런드 러셀과 에리히 프롬을 읽으며, 요컨대 ‘이식된 근대’를 살아야 했던 주변부적 지식인의 숙명이라 생각할 수밖에.

몇 년 전 1923년생인 지은이가 아직도 학술논문을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면서도 반가운 적이 있었다. 평생 마르크스의 원전을 읽고 해석하는 작업을 해온 노학자 앞에서, 한때 느꼈던 도전의식과 감동을 넘어 처연함과 경의가 뒤섞이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에게는 한번쯤 나도 그런 저자이고 싶다는 부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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