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함께할 한 권의 책은 무얼까…작가 알베르토 망겔의 ‘서재를 떠나보내며’

2018.11.25 21:05 입력 2018.11.26 10:14 수정

프랑스서 미국으로 이주하며

3만5000여권 정리하다 보니

인생의 벗 다시 만나는 기분

[김유진 기자의 크로스 북리뷰]끝까지 함께할 한 권의 책은 무얼까…작가 알베르토 망겔의 ‘서재를 떠나보내며’

평생 모아 온 수만 권의 책들을 몇 개월 만에 처분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세계적인 독서가로 꼽히는 작가 알베르토 망겔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랬습니다. 2015년 67세의 망겔은 프랑스의 아늑한 시골집에서 뉴욕 맨해튼의 침실 한 칸짜리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서재에 있는 3만5000권의 장서를 가져갈 책, 창고에 보관할 책, 버릴 책으로 나눠야 했습니다.

올해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서재를 떠나보내며>(더난)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책의 원제(Packing my Library)는 발터 벤야민이 1931년 발표한 에세이 ‘Unpacking My Library’에서 따 왔습니다. 벤야민은 아내와의 이혼 소송까지 겹쳐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 2000권의 책들을 정리했는데요, ‘책 풀기’는 벤야민에게 정신적 위로를 주는 균형추 역할을 했습니다.

책에 관한 책이 대개 그렇기 마련이지만, 망겔의 이번 책에도 수많은 작가와 작품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지난 7월 캐나다 리터러리 리뷰는 “망겔의 글쓰기를 흠모하는 독자들에게는 일탈이나 우회로, 관련 정보들조차도 문학적 의미와 역사적 관점을 더하면서 글이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서가 알베르토 망겔  유튜브

독서가 알베르토 망겔 유튜브

194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망겔은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이스라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스무살부터 독재 정권 치하의 조국을 떠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작가, 편집자, 번역가로 생활했고 캐나다 국적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 사랑하는 ‘독서가’가 되었습니다. 스코티시 리뷰 오브 북스는 지난 8월 “훌륭한 독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망겔의 삶을 요약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에게 마치 남극이나 아마존의 시원에 도달하려는 시도와도 같았다”고 했습니다.

망겔은 2016년 7월부터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을 맡아 책과 도서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역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60년 전인 1955년 도서관 수장에 임명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입니다. 보르헤스와 망겔의 인연도 문학계에서는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망겔은 10대 시절 서점 직원으로 일하던 중 손님으로 찾아온 보르헤스에게 4년간 책을 읽어주며 인연을 맺었습니다.

망겔은 올해 3월 미국 문학 전문 웹사이트 ‘리터러리 허브’와의 인터뷰에서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와의 추억을 회고하며 “그는 음식에도, 음악이나 시각예술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말, 공유된 언어, 그리고 언어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서재를 정리한 망겔은 “책 싸기는 이름 없는 공동묘지에 책들을 집어넣어 그들의 주소를 서가라는 2차원에서 상자라는 3차원으로 바꿔주는 것이다”라며 “꿈속에서 그 책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싸면서 그는 진정으로 인생의 벗이 되어주는 책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내 곁을 지킬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일까요.

※이 기사의 동영상은 경향닷컴, 경향신문 페이스북, 유튜브, 네이버TV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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