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요구’ 멈추지 않는 홍콩 시위,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로 승리

2019.11.01 20:51 입력 2019.11.01 20:52 수정
이종산 소설가

‘시스템’에 대항하는 인간

켄 리우<종이 동물원>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자유 요구’ 멈추지 않는 홍콩 시위,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로 승리

올해 7월 홍콩 시위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홍콩 시위: 채팅 앱은 어떻게 홍콩 시위 문화를 이끌고 있을까’라는 제목의 BBC 뉴스기사였다. 기사는 실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익명의 사람이 준 정보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었는데, 요지는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수백개의 텔레그램 단톡방을 운영하면서 시위 참여자들이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위에서 채팅 앱을 활용하는 이점 중 하나는 개인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채팅 앱은 특정한 개인이 집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체포되는 걸 막는 기능을 한다. ‘HK맵 라이브’는 텔레그램 단톡방들에서 오가는 정보를 모아 집회 참가자들이 위험구역이나 경찰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앱이었지만, 애플이 이것을 앱 스토어에서 삭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애플은 ‘HK맵 라이브’를 삭제한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이 앱을 복구했다가 중국의 거센 항의에 다시 앱을 내렸다. 애플은 중국 정부가 가진 자본의 힘을 무시하지 못했다.

켄 리우의 유명한 소설집 <종이 동물원>에 수록된 단편 ‘천생연분’에서는 센틸리언이라는 기업에 감시당하는 미래 사회가 나온다. 카메라가 달린 인공지능 ‘틸리’는 주인공의 일상을 모두 기록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분석해 그에게 딱 맞는 것들을 매 순간 제안한다. 틸리가 제안하는 것은 그가 그날 먹을 식사나 지금 들을 음악 같은 사소한 것부터 그가 데이트할 상대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틸리는 그가 데이트 상대와 나눌 대화의 화제까지 제안한다. 주인공은 틸리의 제안을 따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틸리는 항상 옳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집단의 일원 ‘제니’를 만나면서 주인공의 삶은 흔들린다. 소설의 결말부터 얘기하자면,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체제 전복을 시도하지만 결국 시스템에 더 깊숙이 편입된다. 이미 사회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시스템에 반항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시스템을 망가트리기 위해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시스템은 그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시스템의 눈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자유 요구’ 멈추지 않는 홍콩 시위,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로 승리

얼핏 보면 이것은 소위 ‘뒤통수를 때리는’ 예리하고 현실적인 결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때로 현실의 사람들은 소설의 냉소적 결말을 넘어선다. ‘HK맵 라이브’를 앱 스토어에서 끌어내린 중국 정부의 힘은 막강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거대한 체제에 체념하고 흡수되는 대신 계속 싸우고 있다. 홍콩 시위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이 싸움을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개인으로서 존중돼야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 증명은 밖을 향한 것이면서 안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유를 요구하는 행위로 자신이 아직 인간임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기에 어떤 싸움은 그 자체로 승리가 되기도 한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