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4·3은 말한다 - 제민일보 4·3취재반

2022.01.24 20:59 입력 2022.01.24 21:09 수정
김동현 |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이사장

‘멸공’ 인증샷 찍는 이들에게

[김동현의 내 인생의 책]②4·3은 말한다 - 제민일보 4·3취재반

몇 해 전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다. 흐드러진 벚꽃을 배경으로 화염병과 최루탄이 오고 가던 시위 현장을 찍은 흑백 사진이었다. 사진 속 몇몇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왜 4월이면 벚꽃이 잊지도 않고 피었던지. 꽃 나들이 좋은 날들이었지만, 매운 최루탄 연기에 눈물 콧물 쏟고 나서야, 낙화를 안주로 삼아 막걸리 몇 잔 먹을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4월을 알았다. 금서를 몰래 읽고, 선전문을 돌려 보았다. 고통의 시간이 깊으면 실감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항쟁의 분노와 학살의 공포 사이를 살아냈던 그 시절의 삶이 풍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4·3은 말한다>를 만났다. 집요한 사실의 문장을 읽을수록 숨이 턱턱 막혔다.

책이 출간된 몇 해 후 신문사에 입사했다. 풍문을 사실의 기록으로 만들어간 주인공들과 함께 일했다. 오래된 컴퓨터 앞에서 취재를 정리하던 선배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신문사를 정리하고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4·3은 말한다>를 다시 읽어갔다. 책의 문장들은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기억의 침몰에 저항하는 몸부림이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역사였다.

어김없이 4월은 다시 온다. 70여년이나 지났지만 대통령 추도사에 ‘무고한 양민’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다. 제주의 비극은 ‘죄 없는 죽음’의 역사만이 아니다. 김경훈 시인의 시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 억울한”, 여전한 현재다. ‘멸공’이 무슨 비비고 만두도 아닌데 마트에서 인증샷이나 찍는 이들에게 4·3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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