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저주토끼’는 주목받지 않을 때 마음 가는대로 쓴 소설···소수자, 고통, 상실 담은 이야기 계속 쓸 것”

2022.04.14 16:47 입력 2022.04.14 23:22 수정

소설집 <저주 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오른쪽)와 번역가 안톤 허가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집 <저주 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오른쪽)와 번역가 안톤 허가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받지 못했던 때, 내 마음대로 써보자는 생각으로 썼어요.”

소설집 <저주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46)는 “처음으로 제 소설이 이런 관심을 받게 돼 아직 얼떨떨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음 가는대로 쓴 소설인데 부커재단에서 높이 평가해줘 감사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상금 100만원이 탐나서 교내 문학상에 응모해 당선됐는데, 그 작품이 (<저주토끼>에 수록된) 단편 ‘머리’였어요. 상을 받으니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싶었고, 그 뒤로는 별로 주목받는 작가도 아니었기에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썼습니다.”

한국인 작가의 작품으로는 한강의 <흰> 이후 4년 만에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는 복수를 소재로 한 환상 소설이다. 영국 부커재단은 이 소설에 대해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정 작가의 표현대로 2017년 국내 출간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달 10일 부커상 1차 후보에 이어 지난 7일 최종 후보 여섯 편에 선정되면서 국내외 독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소설의 해외 판권 계약은 부커상 후보 지명 전 7개국에서 최근 15개국으로 늘어났다. 작가의 다른 소설 <붉은 칼>(2019)과 <그녀를 만나다>(2021)도 지난달 영국 출판사 혼포드스타와 계약을 맺어 내년쯤 영문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두 소설 모두 <저주토끼>를 옮긴 번역가 안톤 허(한국명 허정범·41)가 번역했다.

작가와 함께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안톤 허는 “<저주토끼>의 문학성, 그 중에서도 뛰어난 문체에 반해 번역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장르문학이 문학성이 좀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정 작가의 작품은 문장도 아름답고 이야기도 참신했다”며 “문장 안에 아이러니를 많이 구사한다는 것이 정 작가 문체의 특징인데, 이런 문장은 영어로 번역하기도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너무나 재밌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미권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일단 변기에서 머리가 나오는데, 얼마나 재미있나. 그런 이야기를 누가 싫어하겠나”라며 웃었다. <저주토끼>와 함께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른 박상영의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하기도 한 안톤 허는 “번역가로서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면서 “<저주토끼>의 이번 부커상 최종 후보 지명이 우리나라 장르 문학의 문학성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가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가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보라는 <저주토끼>가 “인간의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책에 수록된 단편 ‘흉터’가 대표적이다. 그는 “불의나 부정을 저주해 결국 나쁜 사람이 망했다고 해서 생존자들이 겪은 기억과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어느 정도 불의하고 부조리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쓸쓸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현실적인 환상과 SF적 상상력에 사회비판적 요소를 담아낸 그의 작품세계는 작가가 전공한 슬라브문학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정 작가는 “1920~1930년대 소비에트의 소위 ‘빨갱이’ 문학을 전공했는데 당시는 혁명 직후, 스탈린의 폭압이 시작되기 전의 시기였기 때문에 예술이 정말 자유롭게 꽃피던 시기”라며 “그 무렵 슬라브문학의 자유로움과 환상성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학에서 슬라브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슬라브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해 왔다.

차기작으로 페미니즘 소설집 <여자들의 왕>(가제)이 오는 6월쯤, 환상·공포 경장편 소설 <호>(가제)가 8월쯤 출간될 예정이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 그는 <여자들의 왕>을 ‘페미니즘 판타지’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소수자와 고통,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데, 그런 것만 쓰면 독자들이 괴로워할 것 같다”면서 “지금은 문어, 대게, 상어, 멸치, 김 등을 소재로 한 해양수산물 시리즈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부커상 최종 수상작은 내달 26일 발표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