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기준 왜 자꾸 낮아질까…‘효과 없는’ 과잉진료 고발

2023.07.08 07:40 입력 2023.07.09 06:11 수정

대학 병원·제약사 이윤 추구에

엄격한 검증 않거나 제도 바꿔

고혈압 기준 낮춰 ‘비정상’ 급증

환자들, 불안·약물 부작용 ‘위험’

환자보다 압도적 의료 정보 갖고

이윤 나는 치료 추천하며 정당화

깨끗한 물 등으로 수명 늘어도

‘현대 의학 덕분에’ 성과 부풀려

<히포크라시>는 비과학적 관행에 의존하는 현대 의학을 비판한다. 픽사베이

<히포크라시>는 비과학적 관행에 의존하는 현대 의학을 비판한다. 픽사베이

히포크라시

레이첼 부크바인더·이언 해리스 지음 | 임선희 옮김

책세상 | 400쪽 | 2만2000원

사람은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의사가 환자라고 판정한다. 의사 지시대로 진료를 받고 처방대로 약을 먹는다. 환자는 의사와 간호사가 주고받는 의학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저 믿고 따른다.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처방이 과학적이며 자신에게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사는 의과대학 졸업식장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이른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의학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호주 국립보건의학연구소(NHMRC) 수석연구원 레이첼 부크바인더와 뉴사우스웨일스대 의과대학 교수 이언 해리스는 <히포크라시>에서 현대 의학이 과학적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과학적인 관행에 의존해 의료 행위를 한다고 비판한다.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위반한 위선(Hypocrisy)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의료의 약 3분의 1은 가치가 없고, 10%는 오히려 해롭다고 추정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증거가 있는데도 계속해서 많은 의사들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시술과 처방을 한다.”

저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의료화’를 경계한다. 의료화란 노화와 완경(폐경)처럼 정상적인 인간의 상태를 의학적 문제로 정의하고 치료하려는 것이다. 의료화의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46개국에서 임부의 입덧 치료제로 판매된 ‘탈리도마이드’이다. 자연스러운 입덧을 질병으로 규정한 의료는 재앙을 일으켰다. 아기 약 2만명이 기형아로 태어났고 약 8만명이 사산됐다. 저자들은 환자에 비해 의사가 압도적인 의료 정보를 가진 ‘정보의 비대칭성’이 의료화를 부추긴다고 본다. “결정은 의사가 내리고 위험 부담은 환자가 지는 도덕적 해이가 생겨난다. 의사들이 이윤이 많이 나는 치료를 추천하며 이를 쉽게 정당화한다.”

과잉 진단의 배경에는 의료 산업이 있다. 픽사베이

과잉 진단의 배경에는 의료 산업이 있다. 픽사베이

과잉 진단·치료도 저자들이 지적하는 대상이다. 의사들이 자신의 의료 행위로 인한 환자의 이익을 과대평가하고 피해를 과소평가한다며 여러 의료 사례를 제시한다. 한국인의 ‘4대 성인병’으로 꼽히는 고혈압도 한 예로 들어 흥미롭다. 고혈압 진단 기준은 세계적으로 점점 강화되는 추세이다. 1999년 이전까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고혈압 기준이 ‘수축기 160㎜Hg 이상, 이완기 95㎜Hg 이상’이었다. 미국은 1988년 ‘140/90㎜Hg 이상’으로 정했다가 2017년 ‘130/80㎜Hg 이상’으로 강화했다. 한국에선 대한고혈압협회가 ‘140/90㎜Hg 이상’을 ‘고혈압’으로, ‘130~139/80~89㎜Hg’를 ‘고혈압 전단계’로 진단한다.

고혈압 진단 기준을 강화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환자로 규정된다. 저자들은 어느 지점부터는 환자의 이익보다 피해가 큰데도 건강을 위해서라며 ‘정상’의 상한선을 계속 내리기만 한다고 비판한다. 혈압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남발해 환자에게 스트레스와 불안, 보험 가입 영향, 치료 약물 부작용 등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압은 사람마다 다르며 같은 사람이라도 짧은 시간 내에 혈압이 변할 수 있다. 혈압을 새로운 ‘정상’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사람들은 한 종류 이상의 약물을 복용해야 했고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저자들은 과잉 진단·치료의 배경에 의료 산업이 있다고 본다. 대형 병원과 제약사가 이윤을 추구하면서 엄격한 검증을 건너뛰거나 의료 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의혹을 제기한 최근 사례는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카누맙’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1년 심사위원회 전원의 반대에도 이 약을 긴급 승인했다. 환자 가족들은 연간 7000만원의 약값을 부담했지만 실제 환자들에게 효과가 없었고 뇌부종, 뇌출혈 등 부작용을 일으켰다. 두 제약사가 개발한 또 다른 신약 ‘레카네맙’도 한국 출시를 앞뒀다. 치러야 할 비용이 연간 35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자들은 의사의 능력이 영웅시되고 현대 의학의 성과는 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꼬집는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1년 83.6세로 20년 이상 늘어났다. 저자들은 건강과 장수에 의학의 공은 미미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현대 의학 덕분이 아니라 깨끗한 물 공급, 상하수도 분리, 충분한 식량 확보, 전쟁 억제 등 공중보건과 정치 및 산업의 성취 덕분이다. 공중보건 조치가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는데도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자원을 개별화된 의료에 사용한다.”

저자들은 각자 분야에서 호주 국민훈장을 받은 전문가지만, 일부 주장은 매우 논쟁적이다. 기존 의학 지식을 여지없이 깨뜨릴 만큼 세세하고 탄탄하게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다만 의사도 환자도 과학적 관점으로 의료에 접근하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만은 분명하다. 스스로 부작용을 의식했는지 “(우리의 주장이) 이른바 ‘대체 의료’가 의료보다 우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밝혀야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책과 삶]‘고혈압’ 기준 왜 자꾸 낮아질까…‘효과 없는’ 과잉진료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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