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월드컵의 국제정치학

2002.07.01 18:52

월드컵이 끝났다. 이번 월드컵은 8·15광복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했다고 한다. 월드컵은 그야말로 해방 이후 최대의 민족적 이벤트였다. 지난 한달간 한국인들은 월드컵에 푹 빠져 지낸 셈이다.

언론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6월 한달동안 한국 언론의 가장 중요한 뉴스거리는 월드컵이었다. 이같은 월드컵 편중보도에 대해 당연히 비판이 뒤따랐다. 기자협회보 조사에 따르면 우리 신문은 전체 지면의 3분의 1 내지 절반 가까이를 월드컵 보도에 할애했다. 공동개최국인 일본에 비해서도 최고 1.7배가 많았다는 것이다. 월드컵 편중보도에 대한 비판은 6·13 지방선거 때도 제기됐다. ‘월드컵에 묻혀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종됐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맞는 말이다.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 우리에게는 관심을 가져야 할 수많은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의 선전, 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길거리 응원 등이 가져온 이번 월드컵의 폭발적 열기는 언론이 쉽사리 지나쳐 버리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게다가 ‘냄비 근성’ ‘벌떼 근성’ 등으로 표현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특정 사안에 대한 소나기식 보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보도의 양적 측면에서 편중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비평의 구체성이라는 점에서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내용 측면에서의 편중성도 검토돼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다소 거칠게 얘기한다면 우리 언론은 한국팀의 성적 등 대회 자체에만 너무 골몰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남북관계나 동아시아 국제정치 등 월드컵 공동개최가 가져올 경기 외적 효과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예컨대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표시했었다. 대회 직전 북측 고위인사의 월드컵 개막식 참가나 남측 인사들의 아리랑축전 대거 참관 등이 거론됐던 것은 이러한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팀의 경기 장면을 보여주지 않던 북한이 지난 6월23일 한국-이탈리아 16강전을 방영한 것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의 의미를 깊이 파들어가기보다는 단순기사로 처리했다. 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국내 북한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한국-이탈리아전 방영은 남북간 공동유대감(common-bond)의 표현이며 남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이런 기대도 최근 서해교전으로 무위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사상 최초로 아시아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이 동아시아의 국제적 위상이라든가 한·중·일 등 3국 관계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은 적었던 것 같다. 예컨대 한국팀의 선전에 대해 일본 언론은 대체로 ‘아시아의 승리’라며 긍정적 태도를 보인 반면 중국의 일부 언론은 편파판정에 의한 떳떳하지 못한 승리라며 악의적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한국 동포들에 대한 폭행사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중국 공안에 의한 한국 외교관 폭행사건 등과 함께 중국의 이같은 비우호적 태도는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니었을까. 요컨대 우리 언론들은 국민들의 월드컵 열기에 묻혀 월드컵의 국제정치학, 월드컵의 경제학 등 여러 경기 외적 성과들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다.

〈박인규/인터넷신문 프레시안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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