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삼대’를 그려나가다

2012.10.21 21:44
김재희 작·김정란 그림

상섭은 단편 ‘출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김동인의 상황을 그럴듯하게 그려보았다. 물론 김동인이라고 지칭은 안 하였지만 문단 사람들 누가 봐도 짐작 가능하였다. 죄책감은 들었지만 작가로서 좋은 소재를 놓치기도 싫었다. 게다가 늘 주눅 들었던 김동인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상큼하였다.

1930년, 상섭의 나이 어느덧 34세가 되었다.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잡지나 신문에 평론을 싣고, 수필과 소설을 썼다.

“진지 올릴까요?”

일찍이 퇴근하여 펜대를 잡고 있는데, 밖에서 머뭇거리던 아내가 기어이 입을 열었다. 아내에게 사근사근하게 굴지 못하였다. 늘 야생늑대처럼 굶주리고 헤매던 그에게 안온한 가정은 어색하였다. 밥상은 고사리나물, 콩나물국, 김치가 고작이었지만 맛있었다. 오늘은 월급날이었지만 신문사 사정으로 받아오지 못하였다.

‘부인, 말도 못하겠고 미안하오. 집안 쌀독이 비어 쥐가 자취를 감춰도 이해해주오. 내일은 기자로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저녁에 잡지사 원고 넘겨서 반드시 생활비 마련해주겠소.’

[소설 횡보 염상섭](11) ‘삼대’를 그려나가다

달도 자취를 감춘 새까만 밤, 상섭은 오랜만에 양주동을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휘청휘청 아현동 산동네를 걸어 올라오다 동네 어귀에 주저앉았다.

“형, 가끔은 도향이가 부럽소. 이제 걸작을 써내야 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된 거 아냐?”

양주동의 마지막 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내렸다. 아, 내가 글 감옥에 갇혀버렸구나. 말할 수 없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왔다.

오늘도 월급을 받아오지 못하였다. 어제도 글 한 줄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돈 문제도 아니요, 소재 고갈도 아니요, 바로 생활에 짓눌려 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사라진 데다 좋은 글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밤마다 회의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냐. 기자냐, 작가냐. 대체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 말고 무엇을 남겼느냐. 이대로라면 영원히 글이라는 감옥에 갇혀 무기징역으로 살아야 된다. 차라리 사형이 낫겠다. 글을 포기하자! 밤마다 자신이 들어가 누울 관을 짜느라 머리가 바삐 돌아갔다.

가을밤, 자는 아내 얼굴을 한번 보고 책상서랍에서 안경 하나를 빼들고, 귀뚜라미 슬피 우는 장독대로 나갔다.

“나는 한 단어도 못 쓰겠는데, 너는 참 잘도 운다.”

툇마루에 앉아 귀뚜라미를 시샘하다 오래전에 썼던 동그란 안경을 코에 걸쳐보았다. 열여섯 살, 일본에 유학 가서 처음으로 맞췄던 안경이었다. 난생처음 안경을 끼자 온 세상이 빛으로 들어차 환하게 보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안경알 너머 선명한 밤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뒤란에 핀 하얀 국화가, 장독대 위에 놓인 막사발 하나가, 흙바닥에 던져진 고무신 한 짝이 보였다. 그리고 초라한 자신의 두 손과 두 발이 보였다.

그래, 관을 짜지 말고 세상을 달리 보자. 걸작을 남겨야 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자. 나는 나, 횡보로 오롯이 걸을 뿐이다.

1931년 1월,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삼대>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 꼴하고…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뿐이냐?”

상섭은 입으로 ‘왜 모두 그 따위뿐이냐’를 종종 되뇌어보았다. 가난의 시대가 두려우면 굶어죽는 법이다, 쓰는 거 두려워하면 빈 원고지만 보다 숨이 턱턱 막히고 결국 철자에 깔려 죽는다. 하지만 씩 웃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첫 문장 들어가면 언젠가는 끝을 보게 되어 있다. 그 따위뿐인 문장이지만 에잇, 나도 모르겠다. 나는 횡보 식으로 쓴다. 싫으면 읽지 말란 말이야. 껄껄.

상섭은 여념 없이 집필에 매진하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원고 70여매를 거뜬히 써내고 집 근처 외상 선술집에서 막걸리 잔을 들이켰다. 다급하게 들어오는 동네 어른이 보였다.

“아들이야, 아들! 어서 집에 들어가 보게나.”

상섭은 고무신이 벗어져라 달렸다. 싸리대문을 박차고 들어갔으나 차마 방안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열린 문틈으로 아기 우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응애응애, 상섭은 문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보았다. 조물거리는 아기의 두 손 두 발이 보였다. 산파가 목욕을 시키고 있었고, 아내는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자식과의 첫 만남이었다. 상섭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장면을 잊지 못하였다. 첫 아이의 탄생은 자신감과 책임감을 안겨 주었다. 핏줄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삼대>에 나오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로 이어지는 가계는 돈과 사랑과 애욕이 얽히고 설키면서 당시 경성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었다. 조의관은 구세대적인 보수주의의 상징이고, 아들 조상훈은 기독교 신자에 유학까지 다녀왔음에도 첩을 두는 등 구습을 버리지 못한다. 손자 조덕기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마음과 사회주의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또한 덕기의 친구 사회주의자 김병화는 상훈에게 농락당해 아이까지 낳은 홍경애에게 애틋함을 느낀다.

기자직도 내놓고 집에 들어앉아서 글쓰기에 진력을 다하는데 원고를 받으러 기자가 찾아왔다.

“조금만 기다리게, 거의 다 써가네.”

“선생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카프 소속 작가들이 검거되었습니다.”

“무엇이? 박영희, 김기진 모두 들어갔는가?”

“네, 그렇습니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저항문학활동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상섭은 내심 이들의 용기와 저항정신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경향문학이 문학의 본질에 어긋난다고는 하지만 목적을 위하여 위험도 감수하는 저들의 용기는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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