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시인 권혁웅

2014.09.26 21:35 입력 2014.09.28 19:42 수정
글 백가흠 | 소설가·사진 백다흠 | 은행나무 편집자

그의 문학적 변신은 끝이 없다

그는 정확한 사람이다. 그는 답이 있는 사람이다. 인문학이 답 없는 사람들이 답을 구하지 않는 과정을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그러니까 쓸모없는 것들-그것은 오로지 편견이겠으나 경제적 활동의 영역에서-에 구애를 펴는 시간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권혁웅은 인문학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과학이나 테크놀로지를 비롯한 정치와 경제의 영역, 정확한 답이 꼭 있어야만 하는 영역에 재능이 훨씬 더 발휘될 수도 있을 거란 말이다. 이는 비하하거나 비아냥대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셔야만 하는데,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답을 가진 자들이 인문학에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이가 없다는 말이다. 말이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그가 똑똑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 다 이 글을 읽어도 그가 읽는 건 좀 두렵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게 얼렁뚱땅 개똥 같은 얘기를 아주 중요한 ‘설’ 마냥 바꾸어 놓는 게 나의 주된 재주이자 임무이니 이해하시라.

[백(白)형제의 문인보](24) 시인 권혁웅

문학은 온통 쓸모없는 것을 사랑하고 쓸데없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의 사랑모임이다. 하늘 빛깔이나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이나 파도를 받아들이는 갯바위 같은 것의 존재를 고민하는 사랑 환자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의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행위를 탐색하는 관찰자들의 눈이다. 오늘은 수업 중 한 공대생에게 시를 읽게 하고 느낌을 말해보라 했더니 왈, ‘모두 중2병 환자 같은 느낌이에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탁월한 평이었다. 지금 권혁웅 시인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던 참,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그 중2병 환자들의 모임에 십수년 전 제일 명석하고 똑똑한 환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뒤집어 보고 거꾸로 세워 보아도 그는 환자가 아닌 듯하여 드리는 말이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 그린다는 시-그가 시인인 것을 종종 잊을 때도 있는데-를 보면 그는 천생 우리보다 더 색깔과 사물에 민감한 촉을 가진 중증의 시인인 것이다. 환자인 것이다. <마징가 계보학>이라는 시집이 나왔을 때 나는 ‘아, 이런 과거의 디테일한 사물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그가 좀 괴롭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 공부를 좋아하고 비평작업을 하는 이에게 사물에 대한 연민이 어떤 해가 되는지 나는 잘 모르나 짐작을 못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라는 시집에 와선 그가 이제 평론작업을 같이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에 넘치는 감수성은 합리적인 감각을 요구하는 비평작업과는 좀 멀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는 여전히 훌륭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좀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펴낸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정체가 정말 궁금해진다. 오래전에 그는 <두근두근>이라는 성경책만큼 두꺼운, 어떤 장르-우리가 이름 붙인 통상적인-라고 부르기도 힘든 요상한 책을 낸 적이 있다. 내용은 주로 사람의 몸에 대해, 사랑에 대해 쓴 ‘산문시’이다. 사람의 신체에 사랑을 달아놓았다고 할까. 글은 에세이와 시의 경계가 모호한 줄을 타고 있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 보통의 감각으론 그런 글을 쓸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가 ‘감각이 좋다’라는 것이다. 그는 오감이 민감한 사람이다. 그러니 시, 비평, 산문까지도 월등한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문인보 순서를 준비하며 고민한 것이 있었는데 그를 평론가로 소개할 것인가, 아니면 시인의 부제를 붙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그저 나와 같이 답 없는 놀이나 하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의 비평작업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또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었다. 이렇게 어떤 쪽에 치우침이 없이 상반된 작업을 수행하는 이가 드물고 예로 들 이가 없어 좀 난감하기도 했다.

[백(白)형제의 문인보](24) 시인 권혁웅

그는 내 두 번째 장편소설의 해설을 맡았다. 내가 조르고 부탁하여 받아낸 것이다. 그의 비평작업의 가장 좋은 축은 텍스트에 신화와 종교, 구원의 문제를 넣어 명확한 ‘논(論)’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글이 붙으면 텍스트가 근사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그의 글이 욕심났음이 물론이다. 소설보다 해설이 좋았다. 슬펐다.

어쨌든 그는 그리하여 쓸모없고 쓸데없는 것만을 다루는 시인이면서 그 쓸모없는 것을 세상에 가장 귀한 것으로 다듬어 놓는 비평작업을 동시에 하는 명석한 이로 불리게 되었던 터. 또 한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선생이라는 천직이었다. 내 편견은 금세 바뀌어 그는 시인이거나 평론가이기보다도 좋은 선생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곳에 일주일에 두 번 나는 시간강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틈틈이 그의 동태를 뒤에서 파악해 보니 그는 아주 드물게 정한 선생의 모습으로 주 5일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사람이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를 드물지 않게 보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이롭게만 하는 특출한 변신법을 숨기고 있다.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다.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는 법이다. 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해야만 하는 일과 학생들과의 교류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 그는 문학을, 쓸모없는 것들만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어린 나이에 쓸데없는 것만 사랑하게 된 학생들을 사랑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는 친절하고 제자들의 재능을 아끼는 선생이다. 학생들이 존경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다.

그의 변신법은 끊임없다. 그는 좋은 술꾼이다. 그의 이미지는 반듯하고 똑똑하며 딱 부러지는 인상이지만 그는 종종 술로 허물어지기도 한다. 고주망태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의외로 술도 좋아하고 술과도 친하다는 말이다. 그는 술자리에서 가만가만 조용히 말에 취해가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가진 박식함과 상식이 풀어놓는 유머는 잔잔하며 깊다. 그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와 친해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상식적이면 된다. 그는 까다롭지 않으며 상식적인 선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에 그 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던가.

이 많은 재능과 감각으로 부여받은 재주를 부리려면 부지런하지 않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성실함을 타고났다. 독서-그는 엄청난 책을 읽는다. 듣자 하니 그의 집 전체가 책방이라고 한다-하며 책 읽고 공부하기도 하루가 짧고, 시인의 눈으로 뭔가를 바라보는 세상은 힘들고, 학생들 가르치기도 빠듯할 텐데, 또 누군가의 남편으로 사는 것도 한 몫일 텐데, 그는 어떤 일에든지 소홀함이 없다. 그는 좀 작고 말랐지만 그가 가진 에너지는 지구를 들 만함. 그 근원은 성실과 부지런.

▲ 시인 권혁웅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과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비평집으로 <미래파> <입술에 묻은 이름>, 시 해설집으로 <당신을 읽는 시간>이 있다. 신화에 빠져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몬스터 멜랑콜리아>를 냈고 영화와 문학의 접합을 시도한 <시네리테르>를 편집했다. 2012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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