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가든디자이너 오경아의 ‘정원학교’

2016.05.27 21:10 입력 2016.05.27 21:26 수정
글 한윤정 선임기자 ·사진 박기호 사진가

수선화 지고 곧 찔레꽃 피겠죠… 그 집에서 배운 흙과 풀의 위안

고대 그리스에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3개의 유명 사립학교가 있었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시움, 그리고 에피쿠로스의 정원학교였다. 쾌락주의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는 자신이 세운 학교에 키친가든을 만들어 이곳에서 매일 학생들과 식물을 키우고 흙을 돌보며 철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중시하며 참행복이 무엇인가를 고찰했던 에피쿠로스에게 정원이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배움의 장이었던 셈이다.

텃밭정원 사이로 한옥의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이 보인다.

텃밭정원 사이로 한옥의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이 보인다.

정원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가든디자이너 오경아씨(49)에게도 흙과 식물은 무엇보다 따뜻한 위안이었다. 30대 후반에 찾아온 삶의 위기. 어머니와 아버지를 1년 간격으로 여의고 마음의 고통에 시달렸으며,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16년간 계속해온 방송작가 생활은 보람과 함께 극심한 마감 스트레스를 안겼다. 두 딸의 엄마로 집안일과 바깥일을 함께하면서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막막한 시간들이었다. 일을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떠나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때 정원을 만났다. 경기 일산 단독주택에 살던 그는 작가생활의 스트레스를 정원 일로 달랬다. 퇴근하면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마당에 가방을 놓고 풀을 뽑았다. 그러면 마음이 풀렸다. 거슬러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버지의 습관이기도 했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서울 홍은동 단독주택에서 정원 가꾸기로 여가를 보냈다. 가지를 자르고 꽃을 돌보면서 자식들에게 “얼마나 예쁜지 보라”고 했다. 그런 경험이 결국 그를 정원으로 이끈 셈이다.

유리문을 단 툇마루 왼쪽에는 방 3개가 있고 안쪽은 부엌이다.

유리문을 단 툇마루 왼쪽에는 방 3개가 있고 안쪽은 부엌이다.

오씨는 38살이던 2005년 두 딸을 데리고 영국 에식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3년제 학부과정부터 다시 시작했다. 2년째에는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의 인턴정원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지도교수는 학부를 생략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영국에는 아침마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요. 어느 날 차를 운전해 학교에 가다가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엄마 인생이 꼭 저 안개 같다’고.”

그러나 정원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안내했다. “정원에서라면 노년이 좀 더 풍요로울 것 같았다”는 당초 소박한 기대와 달리, 그의 등장을 계기로 가든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글솜씨가 뛰어난 그는 유학생활 중 <소박한 정원> <영국정원산책>을 펴냈다. 2012년 귀국한 뒤에는 <정원의 발견> <가든디자인의 발견> <시골의 발견>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기쁨과 위안을 주는 정원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에 한글정원을 조성하는 등 공공작업도 선보였다.

건조한 상태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조성된 자갈정원.

건조한 상태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조성된 자갈정원.

“조경과 가든디자인은 달라요.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은 글자 그대로 건축의 연장선상에서 정원을 조성하는 일이죠. 그러나 가든디자인은 개별 식물의 속성을 알아야 하고 어떤 식물이 서로 어울리는지 공부해야 하고 여기에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예술적 요소까지 들어가요. 식물학과 디자인, 공예가 합쳐진 분야입니다.”

그가 지난해 세운 ‘오경아의 정원학교’는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인 강원 속초시 중도문길의 오래된 마을에 있다. 도문(道門)은 사명대사가 설악산으로 도를 닦으러 들어갔던 곳이라는 유서 깊은 지명이다.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정원학교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인 오래된 한옥과 함께, 단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손님을 맞는다. 가든디자이너로서 꿈꿔왔던 공간이다.

앞마당에는 텃밭정원이 있다. 식재료인 채소와 관상용 식물을 함께 심는 게 텃밭정원이다. 허브와 상추, 보리가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정원에서 자란다. 한 종류만 심으면 해충의 공격에 약하기 때문에 여러 종류를 나란히 키운다. 예컨대 벌레를 많이 타는 겨자와 금잔화를 함께 심으면 금잔화향 때문에 벌레가 덜 생긴다. 식물 사이 간격을 넓게 잡지 않고 바짝 심는 것도 습기를 유지해 건강한 흙을 만드는 비결이다. 텃밭정원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한다. 향나무 종류인 주니퍼러스와 방향식물인 한련화는 정원에 개성을 부여한다. 식물 외에 장식물도 풍성하다. 양쪽 버드나무 가지를 가운데서 묶어 터널 모양으로 만든 윌로 캐빈, 덩굴식물이 줄기를 감는 오벨리스크가 있다.

집 바로 앞은 파티오(중정) 구간이다. 집 안에서 내다볼 수 있는 미니화단에는 계절별로 다른 꽃이 핀다. 튤립과 수선화가 지나갔고 헬레니움과 원추리가 나올 예정이다. 파티오와 텃밭정원 사이 휴식 공간에는 뒤집힌 ㄱ자와 바로 선 ㄱ자 모양의 철제 조명이 마주 섰다. 낮은 벤치는 해질 녘 텃밭정원을 감상하기에 딱 알맞다.

담장과 접한 집의 옆면과 뒷면을 따라 여름정원, 자갈정원, 하얀정원이 차례로 펼쳐진다. 만물이 생생한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여름정원에는 장미와 포도나무, 보리수를 시작으로 해바라기와 칸나, 생강과 토란을 심었다. 담장 아래 펼쳐지는 자갈정원은 고산지대 식물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서늘하고 건조하다. 자갈을 깔고 물과 영양이 부족해도 자라는 알파인 식물로 조성할 예정이다. 집 뒤 하얀정원은 백묘국, 흰줄무늬억새, 패스큐, 찔레꽃, 보리사초, 조팝나무, 라벤더, 무늬조팝나무 등 잎과 꽃에 흰색이 들어 있는 식물로 연출했다.

하얀정원 옆으로는 나비집들이 서 있다. 이 집의 담장은 둥근돌을 접착제 없이 쌓아서 만든 것인데 새로 만든 정원과 맞춤하게 어울린다. 조금씩 무너진 부분을 수리하려 했으나 돌담 쌓는 기술자가 사라져 할 수 없이 시멘트를 썼다고 주인은 아쉬워했다. 나머지 마당에는 작고 빽빽한 잔디를 심었다. 정원 가꾸기의 절반은 잡초와의 싸움이다. 일년생 잡초는 씨를 뿌리기 전에 뽑아주고 뿌리가 깊은 다년생은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하므로 잔디에 맞춰 위만 잘라주는 게 원칙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정원을 보려면 전해 가을부터 씨를 받고 거름을 준비해야 돼요. 어느 정원이든 제 모양을 갖추려면 최소한 일년은 걸립니다.” 이곳에서는 2년째 정원학교가 열린다. 지난해에는 12주 과정의 강의가 진행됐으나 계속 참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올해는 1박2일로 핵심적 내용만 가르쳐주는 특강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흐린 날에는 잡초를 뽑지 말라’ 등 식물을 키울 때 주의사항을 알려주면 대부분 수강생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 내가 다 해본 건데.” 다른 일처럼 정원 가꾸기도 아는 만큼 편해진다.

그가 설악산에 살림집을 겸한 정원학교를 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내와 딸들의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던 남편 임종기씨(문예창작과 교수)는 일산 단독주택을 팔고 전세로, 월세로 계속 집을 줄였다. 유학에서 돌아온 가족은 경기 분당의 한 창고에 살았다. 주거용이 아니라 이웃의 민원이 생겼고 결국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러나 정원을 이야기하면서 아파트에 산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경기도 일대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2013년 설계 일 때문에 들렀던 속초에서 이 집을 만났다. 3년째 비어 있어 마당의 잡초가 허리까지 자랐으나 한눈에 쏙 들어왔다.

도문은 오래된 마을이지만 한옥은 모두 헐려 이 집만 남았다. 대지 250평, 건물 22평으로 원래 100년 전 양양에 지었다가 이사 오면서 뜯어와 1970년경 다시 조립한 집이다. 서까래와 기둥, 문틀의 목재는 여전히 튼튼했지만 흙벽은 거의 무너졌다. 마당에는 소를 키우던 축사가 있었다. 취미 삼아 배우던 목수 일이 전문가 수준에 이른 임씨는 직접 개조공사를 맡아 1년간 집을 고쳤다. 한옥은 ㄱ자 모양이다. 전면으로 방 3개가 나란히 있고 꺾이는 부분에 부엌, 앞쪽으로 나온 부분이 오씨의 스튜디오다. 집 옆에는 임씨가 목공 일을 하는 작업장이 있다. 부부는 축사를 뜯고 정원 일에 필요한 용구를 보관하는 창고와 온실도 지었다.

“시골에서 튀지 않는 집을 만들려고 했어요.” 열심히 집을 손보았고 지금도 계속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한옥 껍데기는 그대로이고 정원이 잘 정리된 정도다. 파란 지붕을 기와로 바꿀까 하다가 그대로 둔 것은 비용도 문제이지만, 그 역시 세월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변화는 눈에 띈다. 이웃 할머니가 이 집을 들여다보고는 한마디 하신다. “워메, 이 집 경복궁 됐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원초적 행복을 준다. 오씨는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스스로에게 주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의 2주일 휴가를 잊지 못한다. 영국 북서쪽에 있는 이곳은 30개가 넘는 산과 호수가 있으며 130년 전 전원의 삶이 그대로 유지되는 곳이다.

짧지 않은 길을 돌아 중년에 설악산 아래 시골로 들어왔지만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정원학교가 자신만의 정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지혜를 주는 한편 자신과 가족에게 생활의 방편으로 존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1차(농업), 2차(가공), 3차(유통)를 합쳐 6차 산업으로 변모하는 유럽 농촌마을을 지켜본 그의 목표는 이곳을 정원문화종합센터로 만드는 것이다. 식물과 공예가 어우러진 정원에서 강의하고 게스트 하우스로 제공되며 정원용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을 꿈꾼다.

도시의 삶에 어울리는 정원을 제안하는 일도 그의 관심사다. “아파트에 살면서 마당 있는 집, 시골생활을 꿈꾸기보다는 자신의 공간에 조금이라도 식물과 자연을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잖아요.” 거실에서는 선인장처럼 잎이 두툼한 다육식물을 키우고, 침실에는 약한 조도에서 잘 자라며 가습기 역할을 하는 관엽식물을 두라고 조언한다.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어울리는 식물이 따로 있다. 문제는 식물을 생활에 끌어들이는 것. 정원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경아

[집이 사람이다] (20) 가든디자이너 오경아의 ‘정원학교’


1967년 서울생. 성신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2005년까지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 등 KBS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했다. 영국 에식스 대학에서 7년간 조경학과 정원 디자인을 공부한 뒤 2012년 귀국해 정원설계회사 오가든스를 설립해 가든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한편, 속초에 위치한 ‘오경아의 정원학교’에서 가든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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