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한의사의 지하 카페…음악이 아날로그의 온기로 마음을 채운다

2016.06.10 20:33 입력 2016.06.10 22:17 수정
글 한윤정 선임기자 , 사진 박기호 사진가

한의사 최윤욱의 LP바 ‘까망까레’

LP바 ‘까망까레’ 내부. 직접 공사한 흡음벽과 러시아 극장에서 쓰던 대형 스피커가 보인다.

LP바 ‘까망까레’ 내부. 직접 공사한 흡음벽과 러시아 극장에서 쓰던 대형 스피커가 보인다.

한의원 아래 LP바. 최윤욱씨(51)는 이 꿈을 이뤘다. 서울 사당동 한의원 지하 1층에는 LP바 ‘까망까레’가 있다. 오후 7시 한의원 진료가 끝나면 그는 자정까지 카페에 내려가 있다. 처음에 개인 청음실로 만들려던 공간인 만큼 커피와 맥주, 와인을 파는 장사에는 큰 관심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와 음악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카페가 문을 닫는 일요일이면 까망까레는 온전히 그의 공간이 된다. 10시간 넘게 음악을 듣고 또 듣는다.

‘음악으로 소통하고 와인으로 힐링한다’는 ‘까망까레’는 LP와 와인잔을 갖췄다.

‘음악으로 소통하고 와인으로 힐링한다’는 ‘까망까레’는 LP와 와인잔을 갖췄다.

이곳에는 오디오 마니아로서 그의 25년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대구에 사는 한 선배의 집에서 오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는 소리에 반했다. 청계천에 가서 싼 기계와 LP를 구해다 듣기 시작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 고용의를 거쳐 자신의 한의원을 개원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오디오 세계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기계를 사서 들어보고 뜯어 재조립하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1997년부터 하이텔 하이파이동호회를 비롯해 ‘스테레오 파일’ ‘월간 오디오’ 등 여러 잡지에 자신이 사용해본 오디오에 대한 평을 썼다.

“제가 들어본 기계가 아마 3000종은 될걸요.” 그는 특히 아날로그 전문가다. 아날로그란 LP를 가리킨다. 1990년 무렵 디지털 기술의 산물인 CD가 나오기 시작했고 LP시장은 점점 축소됐다. 대세가 CD로 기울면서 LP를 듣던 사람들이 음반과 기계를 내다 버렸다. 그도 CD를 들어보았다. 그러나 CD 소리는 쉽게 피로감을 주기 때문에 음악을 서너시간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와 비슷하다.

진공관 파워앰프.

진공관 파워앰프.

갈림길에서 그는 LP를 선택했다. CD와 LP는 단순히 음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디오는 크게 음원, 플레이어, 앰프, 스피커로 나뉘는데 LP를 음원으로 택할 경우 플레이어에 해당하는 턴테이블과 카트리지, 톤암이 CD에 비해 추가된다. 앰프 역시 CD를 들을 때는 프리앰프와 파워앰프(합치면 인티 앰프)로 충분하지만 LP는 포노앰프까지 갖춰야 한다. 쉽게 상하고 생산이 중단된 LP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플레이어의 구색을 갖추는 것,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것까지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험난한 길을 택한 겁니다. 그러나 아날로그가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음악을 듣는 동안 그는 아날로그에 여러 가지 신화가 덧씌워진 데 문제의식을 느꼈다. 옛날 기술인데다 CD처럼 분명한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카트리지로 어떤 음악을 들으면 천상의 소리가 난다더라’는 식의 유언비어가 많았다. 이런 낭설 속에 기계를 무작정 사고파는 일도 흔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탐구한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다.

그는 <아날로그의 즐거움> <굿모닝 오디오> <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굿모닝 오디오-하이엔드 편> <아날로그 가이드북> 등 5권의 책을 펴냈고 빈티지(하이엔드가 나온 1980년대 이전) 오디오와 모노(스테레오가 나온 1960년대 이전) 사운드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각종 아날로그 오디오의 매뉴얼을 담은 <1940년대 북미방송협회 핸드북>이라는 귀중한 자료를 구했고, 오디오평론가로서 새 기계가 국내에 들어올 때마다 청음해온 노하우가 전문서 집필의 바탕이 됐다.

그의 책이 아날로그 이론을 전달한다면, 지난달 문을 연 LP바 까망까레는 아날로그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이다. LP바를 만들 기회는 뜻밖에 찾아왔다. 최씨가 10년간 임대로 한의원을 운영하던 건물이 지난해 매물로 나왔다. 지하철 사당역 10번 출구로 나와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상업시설이 모여 있는데 그곳 5층 건물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병원으로 출퇴근하다 집과 직장을 합치기로 했다. 1층은 한의원, 2층과 3층은 임대, 4층과 5층은 집으로 꾸몄다. 그후 우연히 지하에 내려가 보았다. ‘내가 왜 이렇게 작지’라고 느끼는 순간, 천장 높이 3m가 넘어 음악 듣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LP바로 꾸미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전문업체에 맡길 경우 인테리어를 알면 소리를 모르고, 소리를 알면 세련된 인테리어가 나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직접 고치기로 했다. 철공소와 철물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손재주에다 오랫동안 턴테이블 받침대나 스피커 인클로저를 만들면서 철판과 목재를 다루는 능력에 자신이 붙었다. 더욱이 오랫동안 꿈꾸던 청음실이라니. 벽과 바닥부터 수도, 전기, 도장, 덕트까지 법으로 금지된 소방공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접 했다. 하루 대여섯 시간, 바쁜 날은 한두 시간씩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중요한 건 소리를 흡수하는 벽이다. 좁은 아파트에서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공간만 넓으면 볼륨을 높여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공간이 넓어질수록 적절한 흡음시설이 필요하다. 고음과 중음, 저음이 고루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에다 격자형 목재 골조를 촘촘히 세운 뒤 고음과 중음을 흡수하는 흡음재, 저음을 흡수하는 판과 항아리를 넣고 다시 목재로 마감했다. 바닥도 체육관 바닥처럼 튼튼하게 만들었다. LP를 보관하는 수납장, 스탠드, 주방과 별실을 가려주는 칸막이, 포도주 보관함도 필요했다.

이렇게 마련된 공간에 오디오를 배치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오디오 가운데 최상의 물건이 LP바로 내려갔다. 턴테이블은 렌코 G88, 체인저는 토렌스 TD224, 포노앰프는 직접 설계해서 공동구매 방식으로 제작한 클라디오, 프리앰프 역시 수제품, 그리고 소리의 질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파워앰프와 드라이버(중음 스피커)를 까망까레로 설치했다. 까망까레(Gaumont Kalee)는 프랑스 고몽과 영국 칼리가 합작해 1950년대 극장용 영사기와 오디오를 생산한 회사다. 국내에 3대밖에 없는 앰프를 그가 모두 갖고 있다. 이 밖에 러시아 극장에서 쓰던 키넵 18인치 전자석 우퍼(저음 스피커)가 이곳의 자랑이다. 볼륨을 높여도 소리가 째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멜랑콜리한 음색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음악을 듣는 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죠. 흔히 밝은 음악이 지친 마음을 치유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슬플 때는 더 슬픈 음악을 들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올드팝이나 대중가요, 재즈에 맞도록 튜닝했다.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등 친숙한 곡들이 마치 공연장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울려퍼진다. “음악감상과 대화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볼륨이 커도 상대방의 말이 잘 들려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다가 대화를 멈추는 순간 음악이 귀에 확 들어와야 돼요.” 그는 아직까지 공간이 80점, 사운드가 61점이라고 자평한다. 앞으로 3년 안에 사운드가 90점에 가깝도록 튜닝하는 게 그의 목표다.

그에게 음악의 원형은 고향인 전북 군산에 속한 섬 개야도에서 듣던 당산굿이나 풍물놀이 장단이다.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가는 섬사람들에게는 음주가무가 흔하고 씻김굿도 자주 열린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육지로 나와 군산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일찍이 이런 음악을 접했던 탓에 그는 저음을 좋아하고 고음을 싫어한다. 다시 말해 저음에는 민감하게, 고음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각자 겪은 음악적 환경, 청력과 두상, 시대 조류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리가 다르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오디오를 하는 재미”라고 한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지만 특히 국악과 클래식을 좋아한다. 국악은 감성을 곧바로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 육자배기는 슬프고 풍물놀이는 흥겹다. 판소리의 임방울, 가야금 산조의 황병기처럼 잘 알려진 국악인 외에 김현수나 안향년, 신쾌동의 음반을 즐겨 듣는다. 클래식은 대학생이던 그를 음악으로 인도한 장르다. 4500장의 LP 가운데 클래식이 2500장이다. 어릴 때는 어렵고 지루한 음악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베토벤 현악 4중주를 들으면서 마약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경험” 이후 클래식에 경도됐다. “오래 음악을 들으면 클래식을 좋아하기 쉽죠.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면서 듣는 지적이고 논리적인 음악이니까요.” 바하에서 베토벤, 부르크너, 말러로 이어지는 이지적 계보의 취향이다.

최씨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아날로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음반 판매량, 인터넷 동호인수 등을 고려할 때 국내 음악 마니아는 40만~50만명, 오디오 마니아는 2만~3만명, 오디오 마니아 중 하이엔드는 1만명(나머지는 빈티지)으로 추산된다. 음악 마니아는 중급 오디오로 음악 자체를 즐기면서 음원을 소비하는 계층, 오디오 마니아는 기계를 계속 바꾸는 계층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음악 마니아 가운데는 여성이 많지만 오디오 마니아는 거의 남성이라는 점이다. “남성에게 사냥꾼의 DNA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떤 기계에서 어떤 소리가 날지 모르면서도 모험심으로 새 기계를 구하는 게 사냥과 비슷하잖아요.” 신기술이던 CD마저 사양길로 접어들어 컴퓨터파일이 대세가 됐지만 LP가 10%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의사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삶도 아날로그다. 그의 한의원에는 첨단 진단장비가 없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져보고 들어보고 진단한다. 가급적 약을 많이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하다. 보통 라이더들은 자전거로 춘천이나 강릉까지 완주에 도전하지만 그는 시내에서 돌아다니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 한의원 앞에 세워져 있고 그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벽에도 걸려있다. 그의 삶을 지배하는 ‘아날로그의 즐거움’이다.

■최윤욱

[집이 사람이다] (22) 한의사의 지하 카페…음악이 아날로그의 온기로 마음을 채운다


1965년 전북 군산 개야도에서 태어나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97년부터 한의원을 개업해 환자들을 진료하는 동시에 ‘스테레오 파일’ ‘월간 오디오’에 리뷰를 쓰는 등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아날로그의 즐거움> <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등 5권의 책을 펴냈으며 서울 사당동에 LP바 까망까레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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