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왜곡된 정의감의 폭력과 횡포 비판

2017.02.07 20:23 입력 2017.02.07 20:27 수정
김성곤 | 문학평론가·한국문학번역원장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

[김성곤·방민호의 현대문학 명장면 20] (18)“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왜곡된 정의감의 폭력과 횡포 비판

# 나만 옳다는 정의감이 부른 트럼프 시대

사람들은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정치인도 법조인도 아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냐고 묻는다. 우선은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이 잘 안되고, 은행 이자가 턱없이 낮으며, 고임금 백인 노동자들이 저임금 이민 노동자들에 의해 밀려나면서 불만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공약이나 우선 정책이 보여주듯이, 트럼프와 그를 찍은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선언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그리고 외국 기업들에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요구하는 것, 또는 불법이민 추방이나 멕시코 장벽 같은 것들도 모두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다 더 심층적인 이유 중 하나는,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 편만해진 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옮겨온 유색인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 같은 것을 통해 백인들을 너무 벼랑 끝으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인 학생들은 소위 ‘소수인종 쿼터’로 인해 대학 입학과 취직에 심각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백인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유색인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해고당했다. 반면 주변부와 소수인종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거 대학에 진출한 유색인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정의감에 사로잡혀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백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PC 운동’은 일종의 마녀사냥처럼 사상검열을 했고, 일부 과격한 소수인종 교수들은 거기에 편승해 마크 트웨인이나 윌리엄 포크너처럼 인종차별에 비판적이었던 백인 작가들조차 인종주의자로 몰아 공격했다. 그러더니 지난 200년 동안 미국인들이 사용해온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조차 특정 종교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가능한 한 쓰지 않도록 했다. 그런 극단적인 사회현상에 반발하는 백인이 늘어나고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므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미국 내 소수인종의 과도한 정의감과 자신만 옳다는 ‘정치적 올바름’이 초래한 필연적 현상이었다.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2000)은 바로 그러한 잘못된 정의감이 편만한 사회현상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가를 다룬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이 소설은 1998년에 있었던 빌 클린턴의 성추문으로 시작된다. “1998년 여름, 미국 전역은 경건함과 순수함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야단법석이었다. 대통령과 한 여성의 섹스스캔들은 공산주의를 밀어내고 국가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 된 테러리즘보다도 더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자기만 성자인 척하는 감정적 도취가 부활했다. 국회와 신문과 방송에서는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눈길을 끌어보려는 사람들이 자기만 성자인 척, 남을 욕하고 개탄하며 응징하지 못해 안달이 나서 도처에서 맹렬하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들은 행정부를 거세해 엄격한 정화의식을 실행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휴먼 스테인>, 박범수 역, 문학동네)

필립 로스의 소설 <휴먼 스테인>(왼쪽)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휴먼 스테인>.

필립 로스의 소설 <휴먼 스테인>(왼쪽)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휴먼 스테인>.

전 국민이 한목소리로 클린턴을 비판하고 매도할 때, 로스는 그들과는 달리, 스캔들에 대한 가십이나 항의에 동참하기보다는, <휴먼 스테인> 같은 깊이 있는 작품을 통해 그런 사회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가다. <휴먼 스테인>에서 그는 ‘정치적 올바름’ 같은 극단적인 정의감이나 도덕적 우월감도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또 다른 테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기만 옳다는 독선과 잘못된 정의감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대에 그러한 사회현상 속에 내재해 있는 문제점을 발견해 독자들에게 깨우침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예스!’를 외칠 때, 홀로 ‘노!(No! in thunder)’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휴먼 스테인>의 등장은 문학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 위험한 게임: 도덕적 우월감과 왜곡된 정의감

<휴먼 스테인>은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더불어 필립 로스가 쓴 3부작 소설 중 마지막 작품이다. 로스는 이 3부작에서 자기 세대 미국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매카시즘과 베트남전쟁, 빌 클린턴 스캔들을 소재로 당대의 미국 사회가 드러냈던 문제점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휴먼 스테인>은 네이선 저커만이라는 65세의 작가가 이웃에 사는 71세의 은퇴한 교수이자 전 학장인 콜먼 실크의 회고담을 듣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테나대학의 고전문학 교수였던 콜먼은 수업에 한번도 안 나타난 두 학생을 지칭해, “이 학생들은 유령인가?”라고 말했다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politically incorrect)’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대학을 그만둔 사람이다. 그가 사용한 “유령(spooks)”이라는 말이 흑인을 비하하는 속어로도 사용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동안 백인 유대인 행세를 해온 콜먼이 사실은 흑인이었다는 점이다.

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콜먼의 아내가 심장마비로 죽자, 상처 입고 외로워진 콜먼은 34세의 대학 청소부 포니아 팔리와 사랑에 빠지는데, 이 또한 정의감에 불타는 대학의 페미니스트 여교수로부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비윤리적 행위라는 비난을 받는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는 러시아혁명 때, 극단적인 볼셰비키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정치적 올바름”이, 나는 언제나 옳고 정의이며, 타자는 틀렸고 불의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그런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외모가 거의 백인인 콜먼은 젊었을 때 스티나라는 백인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콜먼이 흑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스티나는 콜먼을 떠난다. 충격을 받은 콜먼은 그때부터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백인 행세를 한다. 콜먼은 집에는 알리지 않은 채, 두 번째 백인 여자친구인 아이리스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둔다. 콜먼은 자기 가족에게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지만, 나중에 만난 포니아에게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포니아의 전남편 레스터는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베트남전 참전 군인인데, 포니아를 스토킹하며, 자신의 불행이 그녀의 잘못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로스는 베트남전이 미국인들에게 입힌 심리적 상처 문제도 건드린다.

[김성곤·방민호의 현대문학 명장면 20] (18)“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왜곡된 정의감의 폭력과 횡포 비판

<휴먼 스테인>에서 로스는 사회적 편견에 대처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상을 제시한다. 첫째 유형은 주인공 콜먼처럼 어리석은 사회나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는 사회가 자신에게 편견을 갖지 못하도록 백인으로 살아간다. 둘째 유형은 콜먼의 형 월터처럼 사회적 편견에 맞서 투쟁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월터는 사회의 편견에 저항하지 않고 백인으로 살아가는 콜먼을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유형은 아버지 클라렌스처럼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흑인도 백인과 같은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는 자녀들에게 백인 영어를 가르치고, 초서와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를 읽게 하며, 박물관과 음악회와 전시회에 데려간다. 그러나 로스의 소설에서 이 세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 파멸한다. 사회가 좋아지려면, 피해자의 노력보다는 가해자의 인식의 전환이 우선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우월감과 왜곡된 정의감에 도취하게 되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타자의 심판관이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의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폭력과 횡포를 행사하게 된다. 작가로서 로스가 부단히 시도하고 성취하는 것도 인간의 그러한 성향에 대한 깊은 반성과 통렬한 비판이다. 그런 의미에서 <휴먼 스테인>은 도덕적 우월의식과 그릇된 정의감으로 타자를 심판하며, 독선과 편견의 패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휴먼 스테인’, 즉 ‘인간의 오점’을 극복하고 21세기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휴먼 스테인>의 출간은 21세기의 시작을 장식한 문학의 명장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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