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문학 향해 긴 방황…이젠 시 쓸 디딤돌 마련”

2018.01.10 20:17 입력 2018.01.10 20:28 수정

경향 신춘문예 당선자 3인, 문학과 삶을 이야기하다

소설 부문, 지혜 “소설 묘사는 죽었다? 그 엄정한 매력에 끌려”

평론 부문, 인아영 “자기 스타일로 악보 해석하는 연주자 닮고파”

201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인 인아영씨, 시 부문 당선자 박정은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지혜씨(왼쪽부터)가 인터뷰에 앞서 밝게 웃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01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인 인아영씨, 시 부문 당선자 박정은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지혜씨(왼쪽부터)가 인터뷰에 앞서 밝게 웃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당선의 기쁨이 지나고 곧 책임감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201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3인의 공통된 소감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박정은씨(33·시), 지혜씨(32·단편소설), 인아영씨(28·문학평론)를 최근 만났다. 세 사람은 문학하는 즐거움과 간절함, 설렘을 이야기했다. 더 나은 글을 써내고 싶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도 신인답게 새롭고 다채로웠다. 첫발을 내디딘 이들의 문학과 삶에 대해 들었다.

■ 글을 쓰기까지, 그리고 당선의 기쁨

박정은 = “스무 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글을 쓰고 싶어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원에서 시를 썼다. 시를 쓰니, 시가 정말 좋았다. 시를 쓴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당선이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당선되고 ‘시를 쓸 디딤돌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기뻤지만 다음날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움이 많이 들었다.”

지혜 =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갔고 계속 글을 썼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출판사에 다녔다.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6개월 전쯤 아예 일을 그만뒀다. 2014년이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개인적인 여러 일들도 겹쳤는데, 소설 쓰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습작도 치열하게 하고 응모도 많이 했다. 거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쓴 작품이 당선됐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아영 = “대학 전공은 인류학인데, 원래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고 지적으로 글을 쓰는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예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 복수전공으로 미학을 선택했고 예술비평이 마음에 들어 대학원에서 문학비평을 배우고 있다. 인간을 가장 지적이고 총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문학비평이라는 형식과 ‘나’라는 인간이 조화롭게 맞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선 소식에 정말 기뻤지만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 당선작에 관하여

박정은 = “‘크레바스에서’는 약 반 년 전에 쓴 시다. 시를 쓰면서 느낀 개인적인 상황을 쓴 것이다. 어떤 상황을 한 번 시로 쓰고 나면 해소가 되고 다음 문제로 나아갈 수 있었다. 20대 때는 나중에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계속 머뭇거리면 문학을 할 시간이 없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서 일을 그만뒀다. 방황이 길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한 선택에 관해 해석을 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지혜 =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재가 가족 이야기라 생각했다. 가족관계를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관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볼트’를 쓰면서 평범한데 기이한 존재들을 생각했다. 심사위원들은 훼손된 가부장제의 부속품으로서 구성원들의 이야기라고 평했는데, 맞는 말씀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드러내 이야기하기보다는 기이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인아영 = “최근 몇 년간 한국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폭력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민정 작가는 자기 자신이 처한 겹겹의 조건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국적, 성별, 세대, 계급…. 하나로 퉁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를 끊임 없이 의식하면서 자기를 가로지르는 조건을 알고, 또 알아보려고 하는 박민정 작가에 대해 꼭 써보고 싶었다.”

■ 문학과 문학하는 삶

박정은 = “문학이 글로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듯이 문학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 소설을 시작할 때의 발화점,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발화점이 다르지 않다. 등단해야만 문단에서 인정받고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방에서 일기라도 쓰고 있으면 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라는 장르에 대한 자의식이 부족하다. 소설은 인과관계의 고리로 쌓아가는 것이라면 시는 사슬을 풀었을 때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시적인 문장에 대한 부족함을 채우고 나만의 문장,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

지혜 = “시대가 바뀌어서 문학은 시장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 시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분열되고 파이가 줄어든 것이다. 낡은 문예지라든가 플랫폼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너무 힘든데 왜 계속 쓸 수밖에 없을까 고민했다. 견딜 수 없어서 쓴다.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학으로 세상을 바꿔야지’ 하는 거대한 생각이 아니라 내밀한 상황을 쓰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소설에서 묘사는 죽었다고 하는데, 묘사를 했을 때 아름다움과 엄정함에 관심이 간다. 제주 출신으로서 전쟁이나 4·3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

인아영 = “문학이 예전만큼의 위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이 담당했던 것을 영화나 음악의 영역에서, 대중매체와 심지어 유튜브에서까지 담당하고 있다. 문학에 위상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김현 선생님은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문학은 억압을 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문단 성폭력 문제를 들 수도 있다. 문학은 오히려 유용하고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분야이고 사회를 성찰할 수 있는 언어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기악곡을 좋아한다. 훌륭한 연주자는 그만의 스타일로 악보를 해석하고 비평한다. 연주자와 같은 비평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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