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엔 고민이 깊어진다. 가족과 나들이를 떠나 추억을 만들고 싶지만, 가는 곳마다 인파에 치이고 관광지의 비싼 물가에 실망하기 일쑤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수도권에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충전소가 있다. 바로 도서관이다. 이제 공공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책과 함께 감성을 충전하고 마음의 휴식도 얻을 수 있다. 미술 작품과 음악을 감상하고, 캠핑과 소풍까지 즐길 수 있는 수도권 도서관들을 찾아가 봤다.
도서관 캠핑장으로 책소풍 떠날까
경기 오산에는 캠핑장이 있는 도서관이 있다. 죽미령공원 인근에 있는 꿈두레도서관이다. 2014년 4월 문을 연 도서관은 전국 최초 1박2일 독서캠핑장을 도입했다. 도서관을 둘러싼 숲에 캠핑 시설을 마련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1박2일 독서캠프 등을 운영하며 책을 테마로 한 ‘체험’에 집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오자 도서관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숙박’ 대신 ‘소풍’을 테마로 새롭게 독서캠핑공원으로 문을 열었다. 8개동이었던 독서캠핑장에 캠핑사이트를 추가했다. 또 도서관 숲과 독서캠핑장을 조망할 수 있는 숲속 트리하우스와 버스킹 공연장도 마련했다. 기존 주말에만 이용 가능했던 독서캠핑장을 주중에도 개방했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캠핑동 내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매달 25일 홈페이지에서 다음달 예약 신청이 가능하고 도서관 회원증만 있으면 무료다.
밤 시간대 운영을 낮으로 바꾸면서 ‘북크닉’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소풍 바구니, 미니 테이블, 돗자리, 보드게임, 왜건 등을 무료로 빌려주는 서비스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독서캠핑공원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사람이면 신청할 수 있다. 선착순 8가족을 대상으로 예약 없이 현장 접수로 운영된다. 꿈두레도서관 조현성 주무관은 “도서관 옆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캠핑 시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이 책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며 “캠핑동 이용 예약은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그냥 책 한 권 들고 캠핑공원에서 소풍을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캠핑 체험을 내건 꿈두레도서관처럼 오산의 공공도서관은 저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다. 소리울도서관은 ‘음악·악기’, 초평도서관은 ‘가족’, 햇살마루도서관은 ‘어린이도서관’, 청학도서관은 ‘사회과학’, 양산도서관은 ‘역사’를 테마로 꾸며졌다.
그림 감상하고 음악 즐기고···예술 감성 충전하는 도서관
의정부에는 예술 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두 곳이나 있다. 민락동에 있는 미술도서관과 신곡동에 있는 음악도서관이다. 의정부는 ‘책 읽는 도시’ 브랜드를 내걸고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보는 도서관을 넘어 예술과의 접점을 이룬 공간을 만든 것이다.
2019년 문을 연 의정부 미술도서관은 ‘연결’을 키워드로 1~3층이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진다. 3층 높이의 전면 창은 바깥 풍경과 햇살을 도서관 안으로 끌어들인다.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읽기 그만이다. 도서관 구석구석을 꾸미고 있는 예술 작품은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미술’을 주제로 한 미술관인 만큼 1층 아트그라운드에는 건축, 회화, 디자인, 공예, 사진, 패션 등 국내외 예술 분야 도서 등이 포진해 있다. 또 1층에 미술 작품 전시관이 있어 책을 읽다가 작품 감상을 할 수도 있다.
2층 제너럴그라운드는 일반 자료 서가와 어린이 도서공간으로 꾸며졌다. 알록달록한 어린이 공간과 어른을 위한 열람실이 연결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기에도 좋다. 3층 멀티그라운드는 ‘미술’ 자체에 좀 더 초점을 맞춰 꾸몄다. 신진 작가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로그램 존,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과 개인이 기증한 자료가 있는 공간 등이 마련됐다.
신곡동에 있는 음악도서관은 음악으로 가득 채운 공간이다. 음악 전문 서적을 접하는 것을 넘어 음악을 직접 듣고 느끼고 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책을 읽는 공간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시종일관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지역 특성을 살려 재즈, 블루스, 힙합, R&B 같은 블랙 뮤직 감성을 살렸다고 한다. 계단에는 블랙 뮤직을 모티프로 ‘힙’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1~2층엔 책을 만나는 서가와 연주를 즐기는 무대가 마련돼 있다. 팝, 재즈, 클래식, 오페라, 악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 도서가 마련됐다. 일반 서적과 어린이 서적도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오기도 좋다. 전면 창을 배경으로 한 공연장은 연주회가 열리지 않을 때는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오픈스테이지로 운영된다.
음악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은 2층 창가와 3층이다. 2층 창가에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 플레이어와 헤드셋이 마련돼 있다. 창밖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도서관이 아닌, 음악카페에 온 기분이 든다.
3층 뮤직스테이지에 가면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다. CD, LP, DVD를 장르별로 구비해뒀고 턴테이블과 CD 플레이어가 비치돼 있어 다채로운 음악을 경험할 수 있다. 고품질 사운드를 경험하는 오디오룸, 공연이 열리는 뮤직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곡하고 피아노를 연습하는 스튜디오도 예약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한옥에 앉아 책장 넘길까··서울 도심 한옥도서관
서울을 벗어나기 힘들다면 도심 속 한옥에서 독서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2014년 인왕산 자락에 문을 연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에서 처음 지어진 한옥공공도서관이다. 산속에 자리잡아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면 국가유산처럼 보인다. 실제로 한옥채 기와는 숭례문 복원에 사용한 지붕 기와와 같은 방식으로 기와 장인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 앞 담장 기와는 돈의문 뉴타운에서 철거한 한옥 수제 기와 3000여장을 재사용해 예스러운 맛이 느껴진다.
콘크리트로 만든 지하층과 한옥 지상층으로 구성된 도서관은 산의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그래서 지하층도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온다. 한옥 대청마루와 툇마루에 앉으면 앞마당 아래로 인왕산과 도심이 내려다보인다. 한옥 본채 옆에는 연못, 정자, 폭포가 있어 물소리를 들으며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창작실과 세미나실로 이뤄진 한옥채는 프로그램이나 대관이 없을 경우 열람실로 개방해 놓는다. 겨울에는 뜨끈한 한옥 온돌바닥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 주변에 창의문, 윤동주문학관, 성곽길 등 즐길거리가 지척이라 하루 나들이 코스로도 좋다.
서울 강남구에도 한옥도서관이 있다. 2017년 문을 연 ‘못골한옥어린이도서관’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 고택을 재현해 지었다. 전통 한옥의 운치를 살린 안채, 사랑채, 곳간채, 앞마당, 후원 등 한옥 5개동과 넓은 마당으로 이뤄져 있어 여유롭게 한옥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다. 3만4000여권의 책이 비치돼 있어 다양한 도서를 만날 수 있다. 넓은 마당에서는 전통문화체험과 독서프로그램이 운영돼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도봉구 방학동에는 ‘원당마을 한옥도서관’이 있다. 방학동 원당샘공원 옆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도서관이다. 한옥도서관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중앙정원과 앞마당 정원이 펼쳐지고, 독서대 앞창을 열면 원당샘공원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서관 인근에는 원당샘공원, 연산군묘, 수령 약 560년의 ‘방학동 은행나무’,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남편 안맹담의 묘, 김수영문학관, 전형필가옥(간송옛집), 북한산둘레길 등이 있어 산책을 즐기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