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왕실 보물창고 '쇼소인'(정창원)의 한반도 보물들...국립문화재연구소 국제심포지엄

2018.02.28 15:25 입력 2018.02.28 16:52 수정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로 유명한 ‘쇼소인’(정창원)에 소장된 유물인 1300여년 전 바둑돌. 쇼소인에는 일본, 백제와 신라, 당나라, 인도, 사산조 페르시아 등 7~9세기 희귀한 고대 유물 9000여점이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로 유명한 ‘쇼소인’(정창원)에 소장된 유물인 1300여년 전 바둑돌. 쇼소인에는 일본, 백제와 신라, 당나라, 인도, 사산조 페르시아 등 7~9세기 희귀한 고대 유물 9000여점이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로 유명한 쇼소인(정창원)에 소장된 1300여년 전 바둑판.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로 유명한 쇼소인(정창원)에 소장된 1300여년 전 바둑판. 경향신문 자료사진

1300여년 전 삼국시대 바둑판과 바둑알, 식기와 수저, 악기, 백제 의자왕과 관련된 가구, 호구조사 문서와 사경, 각종 옻칠공예품….

‘국보’가 되고도 남을 희귀한 문화재들이다. 모두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정창원)에 소장돼 있다. 백제·신라와 일본 간 무역, 선물로 전해진 것들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유물들이다.

쇼소인에 소장된 백제, 통일신라 유물을 국내외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침내 마련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3월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여는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정창원을 통해 밝혀지는 백제·통일신라의 비밀’이란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이다.

쇼소인 소장품으로 전해지는 가야금의 일종인 ‘신라 금(琴)’. 신라에서 유래된 악기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쇼소인 소장품으로 전해지는 가야금의 일종인 ‘신라 금(琴)’. 신라에서 유래된 악기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쇼소인은 일본 천년고찰 도다이지(東大寺)의 목조 창고다. 쇼무천황의 명복을 빌기위해 고묘황후가 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도다이지에 756년 헌납하면서 왕실 보물창고가 됐다. 이후 왕실·귀족들이 바친 다양한 종류의 보물과 문서 등 고대 유물 9000여점이 탁월한 보존·관리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쇼소인 보물이 주목받는 것은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와 생활문화상 연구·복원에 획기적인 자료들이어서다. 8세기를 중심으로 7~9세기 일본은 물론 백제와 통일신라·당나라·인도·사산조 페르시아의 귀한 유물들이 온전한 상태에 있다.

■비밀공간 쇼소인과 국제학술심포지엄

국제적으로 주목받지만 쇼소인 소장품은 아직까지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 왕실재산으로 궁내청에서 엄격하게 폐쇄적으로 관리하면서다. 1년에 단 한 차례 60여점만 골라 인근 나라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공개한다. 따라서 소장품들은 특별전과 전시도록, 학술지, 논문 등으로 극히 일부만이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일본 연구자들의 종합적인 조사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폐쇄적 공간인 정창원 유물은 일본을 벗어나본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소장품에는 한국에는 없는 백제, 통일신라 유물도 있다.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줄 유물이지만 어떤 유물이 얼마나 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은 학계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대남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은 28일 “한국, 일본 전문가들이 6개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을 통해 쇼소인의 한반도 유래 유물을 새롭게 조명한다”며 “백제와 통일신라, 나아가 동아시아 교역과 문화상을 이해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심포지엄에선 최응천 동국대 교수, 박남수 신라사학회장, 이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 신숙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나라국립박물관 나이토 사카에 학예부장과 히가사 이츠토 연구원이 주제발표를 한다.

■쇼소인의 한반도 유물들

백제 의자왕과의 관계로 주목 받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 의자왕이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는 ‘적칠관목주자’는 없어졌지만 이 ‘적칠문관목주자’도 당시 백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제 의자왕과의 관계로 주목 받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 의자왕이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는 ‘적칠관목주자’는 없어졌지만 이 ‘적칠문관목주자’도 당시 백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이토 학예부장은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이란 주제발표문을 통해 한반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쇼소인 보물들을 개괄한다. 백제 유물로는 의자왕과 관련 여부가 주목되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가 있다. 국내에는 7세기대 이같은 백제 목칠공예품이 없다. 원래 쇼소인에는 756년 6월 고묘왕후의 보물 헌납 당시 작성한 목록문서인 ‘국가진보장’이 전해지는데, 이 문서에 ‘백제 의자왕이 하사한다’고 기록된 ‘적칠관목주자’가 있다. 그런데 의자왕의 ‘적칠관목주자’는 없어지고 ‘적칠문관목주자’만 남아 있다. 나이토 부장은 “적칠문관목주자도 재질, 금속장식 문양 등으로 볼 때 당시 백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은제 다리 위에 코발트블루의 유리잔이 아름답다.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유리잔이 백제로 왔고, 백제에서 은으로 다리를 만들어 접합시킨 이 유리잔은 일본으로 까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은제 다리 위에 코발트블루의 유리잔이 아름답다.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유리잔이 백제로 왔고, 백제에서 은으로 다리를 만들어 접합시킨 이 유리잔은 일본으로 까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은제 다리가 있는 코발트블루의 ‘유리잔’도 있다. 그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잔이 백제로 와 은제 다리가 접합된 뒤 백제 멸망 이전 일본으로 온 것으로 본다”며 “당시 동아시아 격동의 시대를 빠져 나와 전해지는 기적의 유리그릇”이라고 말했다.

소나무 본체에 상아로 선을 긋고 17곳의 화점을 표시한 바둑판(목화자단기국)과 바둑판을 담기위해 금박·은박·상아 등으로 장식한 함(금은귀갑기국감)도 있다. 바둑알을 넣는 서랍까지 있는 이 바둑판은 일찍부터 국내 학자들에게 알려진 한반도 유물이다. 나이토 부장은 신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의 주요 수출품이던 놋쇠 그릇(사하리 가반)’과 수저(사하리 수저)는 당시의 포장상태가 그대로다. 그릇과 수저 사이에는 신라 문서들이 끼여있다. 오동나무에 금가루 등으로 무늬를 장식한 가야금의 일종인 ‘신라 금(琴)’, 명문이 있는 먹인 ‘신라 묵(墨)’, 양털로 만든 꽃무늬가 있는 카페트들, 초의 심지를 자를 때 사용한 가위로 경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것과 흡사한 ‘백동가위’ 등도 있다.

신라시대의 포장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놋쇠 수저(사하리 수저) 묶음. 놋쇠 식기류는 신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라시대의 포장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놋쇠 수저(사하리 수저) 묶음. 놋쇠 식기류는 신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관료들이 신라에서 구입한 놋쇠 그릇(사하리 가반).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관료들이 신라에서 구입한 놋쇠 그릇(사하리 가반).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남수 신라사학회 회장은 ‘정창원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를 통해본 신라 물품 교역’이란 주제를 발표한다. ‘매신라물해’는 752년 일본에 파견된 신라 왕자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가격을 기록한 문서다. 쇼소인에 소장된 병풍(조모립녀병풍)을 수리할 때 배접지로 재활용한 고문서들인 ‘매신라물해’에는 일본 관료들이 사려한 각종 향, 인삼·감초 등 약재, 촛대와 향로·화로, 불교용품, 식기류 등 120여종의 물품이 기록돼 있다. 박 회장은 ‘매신라물해’를 비롯, 쇼소인 소장품 중 남아 있는 명문, 문서들의 분석을 통해 당시 교역상황을 살펴본다.

752년 일본을 찾은 신라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그 가격 등을 기록한 문서인 ‘매신라물해’의 일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752년 일본을 찾은 신라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그 가격 등을 기록한 문서인 ‘매신라물해’의 일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쇼소인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 먹’. 신라 이두 등이 새겨진 명문도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쇼소인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 먹’. 신라 이두 등이 새겨진 명문도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난희 학예사는 ‘정창원의 칠공(漆工)기법-한국 관련 유물을 중심으로’를 통해 옻칠공예품과 기법 등을 고찰하며 한반도 칠공예품과의 관련성을 조명한다. 이 학예사는 “쇼소인의 칠공예품은 종류의 다양성은 물론 최고급 재질, 갖가지 기법이 사용돼 격조높은 칠공예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며 “일부 유물은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백제의 유물 문양과의 관계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특히 동물가죽과 옻칠을 조합한 칠피기법의 공예품은 최근 백제 공주 공산성에서 발굴된 옻칠 가죽갑옷에서 그 기법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보석류와 나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전 동경’. 쇼소인에는 최고급 재질에 수준 높은 칠공예 기법을 만들어진 칠공예품들이 많이 소장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각종 보석류와 나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전 동경’. 쇼소인에는 최고급 재질에 수준 높은 칠공예 기법을 만들어진 칠공예품들이 많이 소장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제와 일본 정창원 소장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쇼소인 소장품과 백제의 관계를 집중 조명한 신 교수는 “국내에 비교할 만한 백제 미술품이 적다는 이유로 그동안 백제와의 관계가 부정되거나 판단이 유보된 쇼소인 소장품들이 있다”며 백제 유물들과의 비교연구를 강조했다. 신 교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바둑돌의 경우 그 장식기법이 삼국시대 ‘상아제 사리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히가사 이츠토 연구원은 ‘정창원 소장 <화엄경론 질(帙)>과 심상이 들여온 신라 사경’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신라와 일본의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화엄경론질’(화엄경론을 포장한 덮개)과 당시 화엄종 승려이던 심상(審詳)의 역할과 그 의의 등을 살펴본다. 1933년 이 ‘화엄경론질’을 해체수리할 때 고문서 조각들이 발견됐는데, 바로 그 유명한 ‘신라촌락문서’다. 통일신라 때 세금을 거두기위해 조사한 촌락들의 세대수와 인구, 토지 내역, 소와 말의 숫자 등을 기록한 이 기록유물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1차 사료다.

쇼소인에 소장된 ‘백동 가위’.

쇼소인에 소장된 ‘백동 가위’.

신라의 수도 경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 가위’. 초의 심지를 자를 때 사용한 가위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신라의 수도 경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 가위’. 초의 심지를 자를 때 사용한 가위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고묘왕후가 보물들을 허납할 당시 작성된 목록 문서인 ‘국가진보장’의 일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묘왕후가 보물들을 허납할 당시 작성된 목록 문서인 ‘국가진보장’의 일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나라의 천년고찰 도다이지 북서쪽에 자리한 쇼소인. 계단이 없어 유물을 꺼낼 때는 사다리를 놓아야 하는 쇼소인은 자연 통풍 등으로 습기를 막아내는 고대 건축기술이 반영된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 나라의 천년고찰 도다이지 북서쪽에 자리한 쇼소인. 계단이 없어 유물을 꺼낼 때는 사다리를 놓아야 하는 쇼소인은 자연 통풍 등으로 습기를 막아내는 고대 건축기술이 반영된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창원 금속공예의 연구현황과 과제’를 통해 쇼소인 소장 각종 금속공예품의 연구 상황을 분석한 최응천 교수는 특히 “쇼소인 유물은 동아시아의 타임캡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최 교수는 문화재청의 일본 궁내청과의 교류 확대와 창구 일원화, 한반도 관련 유물의 체계적인 목록화 작업과 데이터 베이스화, 양국 공동연구의 적극적인 시도와 교류 전시 등을 향후 과제로 꼽았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정창원 소장품의 한반도 유물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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