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늑대정신’의 원조는 중화민족이 아니라 흉노·돌궐 등 ‘이민족’

2018.09.20 18:44 입력 2018.09.20 21:23 수정

늑대의 후예

이탈리아 로마 카피톨리나 늑대상. 로마의 시조인 로물로스 형제가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형상이다.

이탈리아 로마 카피톨리나 늑대상. 로마의 시조인 로물로스 형제가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형상이다.

2004년 중국 작가 장룽(姜戎)이 <늑대토템(狼圖騰)>을 출간한다. 문화혁명기에 내몽골 올론 초원으로 하방(下方)되어 11년 동안 유목생활을 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중국 내에서만 18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소설이 제기한 ‘늑대토템론’에 대한 논란도 초래한다. 늑대 대 양, 유목 대 농경, 강인 대 유약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중국에 부족한 ‘늑대정신’으로 국민성을 개조하자는 강렬한 복음을 소설이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화민족의 성격에서 양의 성격이 늑대의 성격보다 아주 우세하면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국토를 빼앗기고 유린당했다. 늑대의 성격이 양의 성격보다 아주 우세하면 전제와 폭정에 처했고, 군벌 간의 끊임없는 전란에 시달렸다. 그런데 늑대의 성격과 양의 성격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늑대의 성격이 양의 성격보다 약간 우세할 경우 영토가 넓어지고 국가가 부강하여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그는 주나라 이래 중국의 역사를 두 힘의 강약에 따른 성쇠로 파악한다. 이런 해석이 역사적 실상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늑대정신을 회복해야 중화민족이 번영하리라는 메시지만은 선명하다. 그런데 장룽의 메시지는 여러모로 착잡하다. 늑대정신을 몽골인들의 유목적 강인함이나 생태적 조화의 표현으로 사용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제목이 표방한 대로 늑대토템이라고 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토템은 특정 종족과 혈통적·문화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종족 표지인데 중원 한족의 시각에서 보면 늑대는 만리장성 밖에 있는 오랑캐의 토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장룽의 주장대로 늑대정신이 중화민족의 내재적 자질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에는 이미 ‘폭력’이 내재한다. 몽골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유목문화까지 중화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화 <늑대토템>의 한 장면

영화 <늑대토템>의 한 장면

사실 장룽의 적극적 수용 태도와 달리 늑대기원설은 북방 이민족을 배제하려고 역사서에 등록한 이야기였다. <사기(史記)> ‘대완열전(大宛列傳)’에는 이런 전언이 실려 있다.

‘신이 흉노(匈奴) 땅에 있을 때 들은 바로는 오손(烏孫)왕은 이름이 곤막(昆莫)입니다. 곤막의 아비 난두미는 본래 대월씨와 함께 기련과 돈황 사이에 살았던 작은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대월씨가 습격하여 난두미를 죽이고 그 땅을 빼앗자 백성들이 흉노로 도망갔습니다. 아들 곤막이 막 태어나자 스승 포취령후가 안고 도망가다가 풀속에 누이고는 식량을 구하러 갔습니다. 돌아와 보니 늑대가 젖을 물리고 있었고,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곁에 날아왔습니다. 그는 이를 신령스레 여겨 데리고 흉노한테 갔더니 흉노 왕이 곤막을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흉노 견제라는 외교 임무를 띠고 중앙아시아 대완국까지 갔던 장건이 한나라 무제한테 전한 말이다. 그는 중간에 두 번이나 흉노에게 잡혀 억류됐다가 장장 13년 만에 귀국한 참이다. 그가 전한 이야기는 실은 오손왕 곤막의 탄생신화다. 늑대가 낳은 것은 아니지만 잠깐이나마 늑대와 까마귀의 양육을 받은 영웅적 인물이 곤막이었다는 이야기다. 시르다리야강 상류에 거류했던 튀르크계 유목민족 오손이 늑대나 까마귀와 문화적으로 가까웠다는 단서가 이 이야기 안에 숨어 있다. 이 단서를 <위서(魏書)> ‘고차전(高車傳)’이나 <주서(周書)> ‘돌궐전(突厥傳)’과 연결해 보면 숨은 그림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흉노의 선우에게 두 딸이 있었다. 자태가 빼어나 흉노인들이 신으로 여길 정도였다. 선우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딸들을 어찌 사람한테 시집보내겠는가? 장차 천신에게 바칠 것이다.” 그는 천신이 맞으러 올 것이라면서 나라 북쪽 무인지대에 높은 대를 쌓고 두 딸을 살게 한다. 그러나 삼 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참다못한 모친이 딸들을 데리러 가려 하자 선우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말린다. 다시 일 년이 지났을 때 늙은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늑대는 곁에서 주야로 짖어대면서 누대 밑을 파헤쳐 굴을 만들고는 떠나지 않았다. 작은 딸이 말했다. “천신한테 시집보내려고 아버지가 우릴 이곳에 머물게 한 거잖아. 저 늑대는 하늘이 보낸 천신일지도 몰라.” 동생이 내려가려 하자 언니는 깜짝 놀라 말린다. “저건 짐승이야, 부모님을 욕보이는 짓이야.” 하지만 동생은 듣지 않고 내려가 늑대의 아내가 된다. 뒤에 아들을 낳았고 훗날 그들이 번성하여 나라를 세웠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늑대가 짖는 것처럼 소리를 길게 끌면서 노래하기를 즐긴다.

투르크메니스탄 화폐에 그려진 영웅 오구즈칸.

투르크메니스탄 화폐에 그려진 영웅 오구즈칸.

‘고차전’에 실려 있는 고차족의 기원신화다. 선우는 흉노족이 족장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흉노 족장의 작은 딸과 늑대가 결혼해 고차족이 탄생했다고 하니 모계를 흉노에 두고 있는 신화다. 실제 고차족은 위진남북조 시기 존재했던 튀르크계 민족으로 흉노와 관계가 깊다. 강력한 세력을 이뤘던 모돈선우 때(기원전 209~174년) 흉노는 정령(丁零)을 정복해 노예로 삼는다. 그런데 1세기 중엽 흉노 세력이 약해지자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들은 오늘날 간쑤(甘肅)성 하서주랑(河西走廊) 일대에 자리 잡은 뒤 흉노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이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나간다. 이 정령족이 바로 남북조시대에 고차 또는 철륵이라고 불린 종족이다. 흉노의 노예였다가 독립해 새로운 세력을 이루고, 나라까지 세운 내력이 이 기원신화에 함축돼 있는 셈이다.

중국 작가 장룽의 ‘늑대토템’
주나라 이래 중국의 역사를
‘늑대 대 양’ 이원론을 바탕으로
두 힘의 강약에 따른 성쇠로 파악
‘늑대정신으로 중화 번영’ 메시지

오손·고차·돌궐, 중국사에 등장
늑대 신성시하는 튀르크계 민족
중국이 적으로 묶은 이방인 신화
늑대 이야기를 화두에 두는 건
신화는 집단 동일성을 주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

한데 재미있는 것은 고차족이 부계를 늑대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보통 늑대가 아니라 천신이 보낸 늑대! 그러니까 늑대는 천신의 현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찍이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천신 관념은 가장 오래된 원시 튀르크 층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고차족 기원신화는 늑대가 젖을 먹였다는 오손 신화에서 더 나아가 천신의 화신인 늑대가 아버지였다고 이야기한다. 천신 관념과 동물 조상신 관념을 결합해 종족의 신성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손이나 고차보다 역사상 늦게 출현한 민족이 돌궐이다. 돌궐은 6세기 중엽 흥기하여 7세기 중엽에 이르면 강력한 초원의 제국을 건설한다.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을 튀르크계로 묶는 것도 돌궐제국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돌궐전>에 담겨 있는 돌궐 아사나씨 기원신화는 오손이나 고차의 신화를 종합한 것처럼 읽힌다.

돌궐은 흉노의 별종으로 성은 아사나이고, 따로 부락을 이루고 산다. 훗날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고 족속이 모두 죽었다. 당시 나이가 열 살 된 아이가 하나 있었다. 병사들이 아이가 어려서 차마 죽이지 못하고 발을 자른 뒤에 풀이 무성한 늪에 버렸는데 암컷 늑대가 고기를 가져다가 먹였다. 아이는 자라서 늑대와 교합했고 늑대는 임신한다. 적국의 왕은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죽이라고 다시 사람을 보냈다. 사자가 보니 곁에 늑대가 있는지라 죽이려고 하자 고창국 북쪽 산으로 도망갔다. 산에는 동굴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평지가 있고 풀이 우거졌으며 면적은 수백리나 되었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늑대는 그 안에 숨어서 아들을 열 명이나 낳았다. 이들이 자라서 다시 아내를 맞이하여 아이들을 낳았다. 훗날 이들이 각각 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사나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자손이 번성해 수백가구에 이르렀고 몇 대가 지난 뒤에는 동굴을 나와 여여(茹茹)의 신하가 되었다. 이들은 금산 남쪽에 살면서 여여를 위해 철을 다루었다. 금산은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는데 투구의 속칭이 돌궐이다. 그래서 돌궐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 이 돌궐의 기원신화는 평량(平凉)에 거주하던 돌궐족이, 5세기 중엽 흉노가 세운 북량(北凉, 397~439)을 북위(北魏, 386~534)가 멸망시키자 고창(高昌, 현재 신장 위구르자치구 투르판) 북산(北山)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금산(金山), 곧 알타이산 남쪽 기슭으로 이동하여 유연(柔然), 곧 여여의 신하가 되어 대대로 단노(鍛奴) 노릇을 했던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여여는 튀르크계가 아니라 퉁구스계 종족의 나라였다.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27) ‘늑대정신’의 원조는 중화민족이 아니라 흉노·돌궐 등 ‘이민족’

이 신화에는 발이 잘려 죽을 지경에 이른 사내아이를 양육하는 암컷 늑대가 등장한다. 늑대는 오손 신화처럼 양육할 뿐 아니라 고차 신화처럼 결혼까지 해 아사나씨의 시조모가 된다. 실제로 아사나씨는 낭두독(狼頭纛)을 족장의 거처 앞에 세웠다고 한다. 낭두독은 ‘늑대머리깃발’이다. 이런 관습은 늑대가 이들 집단의 토템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그런데 늑대신화를 뒤져보면 양육하고 결혼하여 시조모가 되는 늑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구즈(오우즈)칸이라는 튀르크의 신화적 영웅이 있는데, 그의 업적을 노래하는 서사시에도 늑대가 등장한다. 오구즈칸이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에 나설 때 그를 인도하는 존재가 늑대다. 어느 날 아침, 장막 안으로 빛이 들어왔는데 빛 속에서 잿빛 갈기와 털을 지닌 수컷 늑대가 나타나 앞길을 인도한다.

우랄산맥 남쪽에 거주하는 바쉬쿠르트족은 종족 이름 안에 늑대가 들어와 있다. 바쉬는 ‘머리’, 쿠르트는 ‘늑대’라는 뜻이다. 이들이 구전하는 신화를 보면 그럴 만하다. 본래 바쉬쿠르트족은 카자흐족이나 키르기스족 등과 섞여 살았는데 어느 날 족장이 사냥을 나갔다가 늑대를 만났다는 것. 늑대를 따라가다 보니 마치 천국같은 숲과 강이 있는 큰 산에 이른다. 신의 인도라 믿고 돌아온 족장은 자신의 종족을 거느리고 늑대가 인도했던 땅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구전 서사시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13세기 <몽골비사>는 몽골의 기원신화로부터 시작한다. 하늘이 점지한 잿빛 푸른 늑대(부르테 치노)와 흰 암사슴(코아이 마랄)이 텡기스 바다를 건너와 부르칸 칼둔에 자리 잡으면서 바타치칸을 낳았다는 것. 칭기즈칸은 물론 바타치칸의 후예다. 몽골은 튀르크계 민족은 아니지만 튀르크와 혈통적으로 섞이고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가 잿빛 푸른 늑대다. 몽골인들에게도 늑대는 천신 탱그리의 사자이고 민족의 인도자였던 셈이다.

오손·고차·돌궐은 모두 중국 역사서에 흔적을 남긴 튀르크 계통의 민족들이다. 이들은 모두 늑대라는 공통의 동물 조상을 지닌 종족들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초기 중국에는 거주 지역에 따라 분류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는 이방인 개념이 있었다. 프린스턴대학교 동아시아역사학부 석좌교수인 니콜라 디 코스모는 여기에 다른 구조를 추가한다. ‘만’과 ‘이’는 연합하거나 동화할 수 있는 이방인의 범주에 넣는 반면 ‘융’과 ‘적’은 국외자 또는 동화할 수 없는 적대자로 묶는 구조다. 늑대는 바로 국외자 융과 적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중화민족의 늑대정신이라니!

2009년 창설된 튀르크계 언어 사용국 협력위원회(Turkic council)라는 것이 있다. 이 위원회가 최근 정상회의를 했다고 한다. 터키·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회동했고, 헝가리·우즈베키스탄도 가입 의사를 보인다고 한다. 터키가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튀르크 정체성을 이용한다는 혐의도 있다. 어쨌든 튀르크계 민족들에게나, 그들을 동화 불가능한 적대세력으로 보았던 중국에나 여전히 늑대신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신화는 한낱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집단의 동일성을 주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필자 조현설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27) ‘늑대정신’의 원조는 중화민족이 아니라 흉노·돌궐 등 ‘이민족’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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