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람이 무서워, 귀신이 무서워?”라고 누가 묻는다면…

2019.07.19 16:40 입력 2019.07.19 16:51 수정
김혼비

납량특집 무서운 이야기

막대선으로 등장인물들의 눈을 가린 영화 <기생충> 포스터를 보고난 뒤 며칠간 강한 기시감에 시달렸다. 비슷한 이미지를 어디서 봤는데…뭐였지…분명 봤는데…오싹한 분위기가 감도는 어딘가에서. 이런저런 장면들이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내가 찾는 그것은 아니었다. 옷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린 허리 고무줄 끈의 끝부분을 옷감 위로 그러잡고 낑낑대며 구멍 밖으로 빼내는 것처럼 기억 속 이미지를 끄집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어느 날.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지렁이가 기어 나오듯 드디어 고무줄이 바깥으로 나왔다. 공포에 질려 동공과 입이 원형에 가깝게 활짝 벌어져있는 한 어린아이, 아이가 떨어뜨린 책, 그 뒤로 배경처럼 퍼렇게 서 있는 귀신들. 막대선은 그 귀신들 눈 위에 하나씩 달려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책, 바로 <오싹오싹 공포체험>의 표지그림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그 시절 나는 대교문화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오싹오싹 공포체험>은 <내일 신문 대특종>과 함께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책이다. 몇 년 후 한뜻출판사에서 <공포특급>이라는, 모든 등장인물이 한뜻으로 독자를 어지간히도 괴롭히는 베스트셀러가 나왔지만, 그때는 이미 오컬트적 공포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을 시기라 그런지(그래도 무섭긴 정말 무서웠다) 나는 <오싹오싹 공포체험>을 훨씬 무섭게 읽었다.

내가 한동안 귀신을 얼마나 무서워했냐면, 초등학교 저학년생들끼리 흔히 주고받는 실없는 문답들, 이를테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스테고사우루스 키울래, 트리케라톱스 키울래?”(당시 나를 비롯한 일부 친구들은 인생에서 바야흐로 ‘공룡기’를 지나고 있었다), “수박이 되고 싶어, 참외가 되고 싶어?” 같은 질문들 중에서, “사람이 무서워, 귀신이 무서워?”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실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무조건, 무조건 “귀신”이라고 답했다.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혹시 귀신이 듣고 ‘뭐? 나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어디 본때를 보여주지!’라며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혹시 내 말이 귀신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귀신!”이라고, 지나가는 귀신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대답해서 귀신의 기를 은근히 세워준 것이다. 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퍽 이상한 방식으로 주도면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귀신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귀신!”이라 대답했던 겁 많은 아이는
자라서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귀신!”이라고 외치는 20대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귀신까지 무서워하기에는 우리 일상에 도사린 공포의 임계치가
이미 압도적으로 커졌기 때문인지도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죽은 딸인 김민지의 이름 자모들과 신체부위를 화폐 그림마다 심어놓았고, 이 모두를 찾아낸 사람은 어디선가 나타난 김민지에게 사지가 찢겨 죽는다는 ‘김민지 괴담’이 한창 유행했을 때는, 그 숨은그림들이 저절로 눈에 띄어 얼떨결에 다 찾아버리는 참극이라도 벌어질까 봐 동전과 지폐를 1초 이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마가 처음으로 침대를 사주겠다고 했을 때는, ‘침대 밑’이라는 공간적 여지를 주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일념하에 바닥에 딱 붙은 침대가 아니면 쓰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침대 밑’과 유사한 공간으로는 ‘커튼 틈’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영화 <뉴욕 세 남자와 아기>를 보다가 커튼 사이로 소년의 형체를 한 무엇(귀신이라는 설이 강력하게 떠돌았었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이후에는 커튼을 칠 때마다 틈새를 남기지 않도록 남다른 주의를 기울였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잦아들 무렵, 일제강점기와 관련이 깊어 귀신 소문이 파다했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다시 긴장의 끈이 바짝 조여졌다.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화장실칸이 두려워 웬만해서는 가지 않으려고 방광을 혹사했고, 밤길을 걸을 때면 온갖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느라고 청각을 혹사했으며,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든 누군가와 같이 타든(“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아 심장을 혹사했다. 혹독했던 시대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덮어놓고 무서워만 하기에는 한편으로 매우 미안했던 귀신들과(정확히는 귀신 이야기들과)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이별하나 했지만, 입학한 대학교가 옛 안기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이어서 이번에는 군사정권시대의 귀신들을(정확히는 귀신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 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운명의 장난일 것이다….

대학 시절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책들을 한창 찾아 읽으며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 후부터 잔혹한 고문과 억울한 죽음이 그림자처럼 서린 학교 괴담들이 처연하고 아프게 다가와서인지, 아니면 단지 내가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되어서인지, 어느 순간 더 이상 귀신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새벽 2~3시경에 귀신이 나타나 노크를 한다던 지하편집실에서 혼자 밤을 새우기도 하고, 군사정권시대에 군용차량들을 세워놨던 곳이라 한밤중에 군용차량의 엔진음이나 캐터필러 소리가 들리곤 한다던 공터를 혼자 가로질러 걷기도 했다. 별로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나는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 특성상 스태프들과 함께 지방에 며칠 이상 묵을 일이 꽤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저녁에는 술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 술판에는 여러 좋지 못한 소문이 따라붙은, 이미 눈빛이나 언행에서 이상한 기미를 보이곤 했던 남자가 하나둘씩 끼어있는 경우가 있었다. 왜 늘 그런 사람일수록 그 작은 사회 안에서도 누군가의 일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한 권력을 쥐고 있거나 위계의 꼭대기 위에 올라가 있었던 건지(혹은 그랬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 있었던 건지), 팀 내에서 나름 ‘대가 센’ 사람들도 감히 그들에게 따져 묻거나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했다. 왜 늘 그런 사람일수록 술자리에서 뻗지도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건지, 주변에서 우회적으로 아무리 주의를 줘도 못 들은 척, 야릇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곁에 있는 여자들에게 슬쩍슬쩍 몸을 갖다 대며 밖에 나가 바람 쐬다 오자고 뻔한 수작을 계속 걸어대는 걸 볼 때마다 그 당당한 뻔뻔함이 소름끼치도록 싫으면서 무서웠다.

그런 자리에서 갑자기 소환되는 건 귀신이었다. 몇몇 눈치 빠른 여자들은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우니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며 다른 여자 두세 명을 데리고 나갔고, 지목된 여자들은 기꺼이 따라나섰다. 그런 남자들 중 누군가가 자기가 같이 가주겠다며 막무가내로 일어설 기미가 보이면, 같은 여자가 아니면 화장실 안까지 같이 들어갈 수 없지 않으냐는 논리로 가까스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면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이 정말로 귀신이기라도 한 듯 서로 팔짱을 꽉 낀 채 꼭 붙어서 화장실까지 갔고, 남은 두 명은 그 앞에서 보초를 섰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이 있는 저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게 너무 싫어서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는 점일 것이다. 서울이었다면 적당한 시간에 안에 있는 여자들까지 전부 데리고 나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익숙지 않은 고장에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깟 것들 뭐가 그리 무섭다고, 그 세계에서 쫓겨나거나 불이익을 당하거나 그들이 퍼트리는 악의적인 소문의 희생자가 된들, 당장에는 억울하고 치명적이겠지만 그게 뭐 그리 인생에 커다란 타격이었을 거라고, 네가 문제라고, 너희들이 문제라고 똑바로 말하지 못한 채 귀신을 호명했을까. 내가 그들의 정체를 안다는 걸 그들이 아는 순간, 그나마 ‘젠틀한’ 척 쓰고 있던 가면 아래로 괴물 같은 본얼굴이 나타날까봐 두려웠던 걸까. 화폐 속 숨은 그림을 모두 찾았다는 걸 들키는 순간 어디선가 김민지가 나타나는 것처럼. 귀신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귀신!”이라고 대답했던 겁 많은 어린이는 자라서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귀신!”을 외치는 20대가 되어있었다.

시간이 흘러 몇 가지 다른 직업들을 거치고, 다양한 사람들을 겪고, 많은 여자 동료와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른 업계라고 다를 것도 없고, 세대별로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업계와 세대를 막론하고 여자들을 괴롭혔고 계속 두렵게 만드는 것들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너무 비슷해서 가끔은 분하고 기가 막혔다. 위협을 모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들까지 어찌나 비슷한지. 남자 상사에게 시달리다 못해 있지도 않은 약혼자를 만들어내고, 현관 앞에 남자 구두를 갖다 놓아 있지도 않은 동거인을 만들어내고, 택시 뒷좌석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며 전화기 너머의 목격자를 만들어내고, 언제든지 성범죄로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는 경고성으로 법조인 친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 호명해내는 실체 없는 존재들. 귀신들.

이제 귀신을 두려워하던 시절은 한참 지났지만 삶의 어떤 형태들은 여전히 그 시절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없는 사이에 누군가 침입해서 숨어들어 있을지 모를 ‘침대 밑’은 여전히 음습한 공간이고(작년에 개봉한 영화 <도어락>은 현실에 흩어져있는 그런 두려움을 재현했다), 심지어 고배율 카메라나 드론으로 20층 오피스텔도 ‘불법도촬’당하는 이런 세상에서 속옷 차림으로 거실에 나갔다가 문득 불안해져 황급히 옷을 끼워 입는 여성들에게는 ‘커튼 틈’ 역시 여전히 섬뜩한 공간이다. 아무도 없고 ‘몰카’가 달려있을지도 모를 공중화장실, 혼자 걷는 밤길, 혼자 혹은 누군가와 같이 타는 엘리베이터,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두렵다.

사실 한여름이고 해서 납량특집으로 ‘무서운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해보고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인데, 결국 이런 일상에 밀착된 공포에 관한 글이 되어버렸다. 하긴 며칠 전 여자 친구들과 만나서 최근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화제 삼아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놀았을 때도 비슷했다. 귀신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일상밀착형 공포경험담으로 끝났던 것이다. 귀신까지 무서워하기에는 우리 일상에 도사린 공포의 임계치가 이미 압도적인 건지도 모른다. 이제 누군가 “사람이 무서워, 귀신이 무서워?”라고 물으면 무조건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나저나 귀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국의 전통설화에 나오는 여자귀신들은 귀신이 되어서도 어쩜 그런가. 하나같이 원통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했으면서, 가해자들에게 바로 달려들어 죽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늘 그놈의 원님을 찾아간다. 원님이 그들의 억울함을 헤아리고 가해자들을 대신 처벌해준다. 세상에. 이렇게 죽어서도 법적절차를 준수하고 삼강오륜을 지키는 귀신들이라니. 그러니까. 귀신이 뭐가 무서운가. 처참하게 죽은 여자귀신들에게도 예의 따지는 설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더 독하지. 설화라는 게 원래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라지만, 정말이지, 이제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김혼비의 혼비백서](3) “사람이 무서워, 귀신이 무서워?”라고 누가 묻는다면…


▶필자 김혼비

퇴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출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직장인이자 틈틈이 이런저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이다. 축구와 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2018년에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2019년에 <아무튼 술>을 썼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