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남북에 7점만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다면…

2019.08.30 16:44 입력 2019.08.30 16:46 수정

고려시대 금속활자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를 떠올리면 먼저 뿌듯함이 다가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류의 인쇄사를 새로 쓰게 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이 땅에서 찍어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직지)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도 자랑스럽다.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도 밀려든다. “세계 최고”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우리는 고려 금속활자를 잘 알지 못한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왜 제작했는지, 어떻게 관리되고 어떤 기록물을 얼마나 인쇄했는지…. 학술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게 많다. 자료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남북 분단도 큰 이유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는 단 7점(남한 1점, 북한 6점 소장)뿐으로 연구에 한계가 있다. 남북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한다면 자료 부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 세계기록유산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것도 아쉽다. 실물을 보기가 어렵고, 간절한 요청에도 한국에서 전시회 한 번 열리지 않았다. <직지>의 가치를 몰라보고 100여년 전 유출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남북 공동발굴조사단이 개성 만월대 유적을 함께 발굴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남북 공동발굴조사단이 개성 만월대 유적을 함께 발굴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 단 7점의 고려 금속활자

인류는 종이, 활자 발명 이전에도 지식·정보를 여러 방법으로 저장·기록했다. 그야말로 기록하는 인간, ‘호모 아키비스트’다.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선 파피루스 줄기를 가공해 글·그림을 그렸다. 점토판, 동물 뼈에 문자를 기록한 유물들도 세계 곳곳에서 발굴된다. 나무조각에 기록한 목간, 양이나 소 등의 가죽을 손질한 양피지도 널리 쓰였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면서 기록문화는 혁명적 변화를 맞았고 필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필사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오류도 일어났다.

필요가 발명을 낳은 게 인류사다. 결국 활자가 나왔다. 목활자, 금속활자, 흙을 구워 만든 도자활자 등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금속활자는 종이만큼이나 인류의 지성사, 문명사에 획기적 영향을 미쳤다. 보다 효율성 높은 인쇄로 기록물의 대량제작과 대중화가 가능해졌다. 기록물의 대중화는 지배자·권력자들이 독점하던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를 의미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혁명을 배태했고, 문화적으로 인류의 지성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인류 인쇄사 새로 쓴 금속활자
세계 최고라는 말 자주 하지만
누가 제작했고 얼마나 인쇄했는지
학술적으로 규명 못한 것 많아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증도가’
금속활자본은 전해지지 않아
1377년 ‘직지’가 세계 최고 영광
그마저도 프랑스에 유출돼

금속활자 실물 또한 극히 희귀
2015년까지 남북에 1점씩만 존재
만월대 공동발굴로 1점 발굴 뒤
북한 단독발굴로 4점 더 찾아

남북 소장품 한 곳에 모인다면
비파괴분석 등으로 비교 연구해
갖가지 중요한 정보 얻을 수 있어
전문가들 공동 연구·조사 재개돼야

①만월대에서 남북이 공동 발굴한 고려 금속활자 ‘단(전)’. ②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금속활자 ‘복’. ③북한 소장 고려 금속활자 ‘전’. ④~⑦북한 단독발굴 고려 금속활자 4점.

①만월대에서 남북이 공동 발굴한 고려 금속활자 ‘단(전)’. ②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금속활자 ‘복’. ③북한 소장 고려 금속활자 ‘전’. ④~⑦북한 단독발굴 고려 금속활자 4점.

금속활자가 언제 처음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 이 땅에서 처음 만들어져 인쇄에 활용됐다. 문헌기록, 실물로 명확하다. 글자를 정밀하게 주조한다는 점에서 금속활자는 금속을 다루는 수준 높은 기술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재료에 따라 구리·주석·아연 등을 합금한 청동(동)활자, 납(연)활자, 쇠(철)활자 등이 있는데 고려시대에는 주로 동활자가 사용됐다. 금속활자는 조선시대 들어 꽃을 피우니 태종 때는 활자전문 기구 ‘주자소’까지 설치됐다. 물론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경제상황에 따라 비용이 적게 드는 목판인쇄도 널리 활용됐다. 세계기록유산이자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32호)은 고려시대 목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시대 활자 80만여점(금속활자 50만·목활자 30만)을 소장, 세계 최대 활자 소장 박물관이다. 물론 세계에 자랑할 만큼 활자의 수준도 높고, 조형미도 빼어나다.

그렇다면 금속활자 인쇄가 세계 최초로 이뤄진 때는 고려시대 언제일까. 학자마다 여러 주장이 있다. 다만 문헌상으로 보면, 금속활자로 찍어낸 가장 오래된 서적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증도가)로 본다. <증도가>는 안타깝게도 금속활자본은 전해지지 않고 목판본으로만 2점 남아 있다. 삼성출판박물관 소장품(보물 758-1호)과 개인 소장품(보물 758-2호)이다.

놀랍게도 이들 목판본에는 고려 무인정권의 실세인 최이(?~1249)가 쓴 발문이 있는데, ‘주자본(鑄字本)을 바탕으로 다시 새겼다. 기해(己亥)년 9월 상순’이라는 내용이다. 즉 1239년 9월 상순에 주자본(금속활자본)을 바탕으로 다시 목판인쇄를 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1239년 이전에 금속활자본 <증도가>가 있었다는 의미다. 남아 있지는 않지만 <상정예문>(고금상정예문)이란 금속활자본도 있었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글 ‘신인상정예문발미’(新印詳定禮文跋尾)에 ‘최윤의 등이 엮은 <상정예문>을 주자(금속활자)로 28부 찍어 나눠 간직하게 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역사적 사실 등을 감안하면 금속활자본 <상정예문>은 1234~1241년 사이에 인쇄됐다.

<직지> 이전에 <증도가> <상정예문> 등 금속활자본이 존재했지만 전해지질 않으니, 1377년 인쇄된 <직지>가 세계 최고라는 영광을 안는다. <직지>는 원래 고려 말 백운화상(경한 스님)이 선(禪)의 핵심을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역대 조사·고승들의 법문 등에서 뽑아내 1372년 손으로 쓴 상하 두 권의 책이다. 이 책이 5년 뒤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상하 두 권 인쇄됐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하권뿐으로, 총 39장 중 첫 장은 없어지고 38장이 보존되고 있다. 다행히 <직지> 마지막 장에는 ‘선광7년정사7월일 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라고 적혀 있다.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것을 분명히 전한다. 이 <직지>는 조선 고종 때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이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53~1922)가 수집해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도 행방을 모르던 <직지>는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1929~2011)가 고증,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직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직지> 발굴 전까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평가받던 <구텐베르크 성경>(42행 성서)이 떠오른다. 1450년경(1455년이란 주장도 있다) 인쇄된 책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를 활용한 근대적 활판인쇄술 발명자인 구텐베르크의 작품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고려보다 늦었지만 ‘구텐베르크 혁명’으로 불릴 만큼 인류사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 문화적 차이와 정치·경제적 이유 등 여러 이유 때문이다. 양측의 인쇄에도 차이들이 꽤 있었다. 고려 금속활자는 주로 동활자로 납활자인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비싸 대중화에 한계가 있었다. 인쇄 방법도 고려에서는 금속활자판 위에 최고급 먹인 송연묵(소나무를 태워 나오는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활용해 문질러 찍었지만 구텐베르크는 인쇄기를 사용했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영인본(위·청주고인쇄박물관)과 보물 785-2호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아래·개인 소장).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영인본(위·청주고인쇄박물관)과 보물 785-2호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아래·개인 소장).

■ 절실한 남북한 공동연구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를 했음에도 불구, 학계의 고려시대 금속활자 인쇄문화 연구는 지지부진하다. 우선 금속활자 실물이 7점으로 적다. 7점이 남아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1점, 북한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6점이 소장돼 있다. 그동안 금속활자들이 발굴된 개성의 고려 궁궐 터인 만월대 등 유적을 정밀 발굴하면 실물자료를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남한에서 유일한 고려 금속활자인 중앙박물관 소장품은 ‘복’(산덮을 복)자를 새긴 활자다. 가로 1.07㎝, 세로 1.17㎝, 높이 0.7㎝, 무게는 4.1g이다. 개성의 고려시대 무덤에서 나왔다는 활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매입됐다. 뒷면이 오목하게 팬 이 동활자는 글자면이 반듯하지 않고 네 변의 길이도 차이가 나는 등 조선시대 것에 비해 정교하지는 않다. 제작 시기, 출토지 등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드높은 가치의 귀한 고려 금속활자다.

북한에는 6점이 있는데, 2015년까지만 해도 단 1점밖에 없었다. 바로 ‘전’(이마 전)자 활자로, 1956년 만월대에서 수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의 ‘복’자와 북한의 ‘전’자는 모두 뒷면이 오목하게 파였고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글자다. 글자체는 중국 송설체(원나라 서예가인 조맹부의 글씨체) 계열로 비슷하고, 주조 방법도 정교하지 못한 등 여러 면에서 조선시대 금속활자와 비교된다.

2015년 말, 고려 금속활자 연구나 남북 문화교류사에 길이 남을 경사가 일어났다. 남북한 전문가들이 만월대 공동발굴조사를 하던 중 고려 금속활자 1점을 발굴한 것이다.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의 활자는 남한에선 ‘아름다운 단’ ‘한결같은 전’으로, 북한에서는 ‘사랑스러울 전’으로 읽힌다. 이 활자는 기존 ‘복’ ‘전’ 활자와 흡사한 형태로 무엇보다 출토 경위가 명확해 학술적 가치가 높다.

공동으로 활자를 발굴, 관심을 모은 7차 만월대 남북공동조사는 이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단됐다. 그사이 2016년 5월 북한은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발굴단이 만월대 단독발굴에서 4점의 금속활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명’(이름 명), ‘명’(밝을 명), ‘칙’(물흐르는 모양의 칙), ‘조’(지게미 조) 활자다.

가로 1.2~1.3㎝, 세로 1~1.1㎝의 이들 활자는 동활자로 제작 시기는 12~13세기로 분석됐다. 북한은 “기존 고려 금속활자와 다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 7점 외에 국내는 물론 일본의 개인이 소장한 고려 금속활자도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공개되기를 학계는 기대한다. 한때 <직지>보다 앞서 간행된 <증도가>를 찍을 때 사용했다는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가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소장자는 101점에 대해 문화재청에 보물 지정 신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문화재청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으로 보면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있지만 활자의 출처·소장 경위 등이 불분명해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다양한 조사분석 결과 <증도가>를 찍을 때 사용한 활자로도 보기 어려워 보물로 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막을 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대고려’ 특별전 당시 북한이 소장한 고려 금속활자들이 출품될지 관심을 끌었다. 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전시됐으니 북한만 응하면 고려 금속활자 7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하지만 요청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금속활자를 포함한 고려시대 유물을 대여하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여기에 2007년 시작돼 8차까지 이뤄진 만월대 공동발굴조사도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의 문화유산 공동 연구·조사는 문화재를 통한 공통된 역사문화의 복원이란 학술적 의미와 더불어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일이다. 특히 만월대는 고려 금속활자가 더 발굴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공동조사로 실물자료를 더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나아가 남북 전문가들의 공동연구는 숭숭 뚫린 고려시대 금속활자 인쇄문화 연구를 위해 시급하고 소중한 작업이다. 세계에 7점밖에 없는 남북 소장품을 한데 모아 비파괴분석 등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비교 분석·연구하면 고려 금속활자에 관한 갖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할 연구다. 역시 분단의 아픔, 상처는 길고도 깊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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