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막혔어도 여행 갈 수 있어, 문화원은 열려있으니까

2021.03.27 06:00

주한 외국문화원에서 즐기는 ‘이국의 정취’

지난 24일 서울 역삼동 터키이스탄불문화원에서 열린 터키식 피자 ‘피데’ 요리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터키인 강사(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설명을 따라 반죽을 밀고 속재료를 얹고 있다. 이석우 기자

지난 24일 서울 역삼동 터키이스탄불문화원에서 열린 터키식 피자 ‘피데’ 요리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터키인 강사(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설명을 따라 반죽을 밀고 속재료를 얹고 있다. 이석우 기자

온라인으로 배우는 인도 전통무용과 노래
터키식 피자 ‘피데’ 만들며 체험하는 음식예절…
“이럴 때일수록 ‘마음 여는 일’ 더 소중해”

“랑그 바르세 비게 쭈나르 왈리, 랑그 바르세.”

지난 24일 저녁,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타고 한국인이 부르는 인도 노래 ‘홀리 송(Holi song)’이 울려 퍼졌다. 주한인도문화원에서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힌디(Hindi) 노래 수업이다. 수강생인 고모씨가 몇 소절씩 끊어 부르면, 강사인 아비짓 차크라바티가 중간중간 주의할 점을 일러주며 음을 교정했다. 강사와 고씨가 함께 한 소절씩 되짚어 부르는 동안 노래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두 사람을 연결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여행자들을 멈춰 세웠다. 흐릿해지던 국가 간 경계가 견고해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다반사’였던 이국으로의 여행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 됐다. 나와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직접 몸을 담가보는 경험이 막혔다. 이런 때에도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문화교류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계속된다. 한국에 있는 해외 문화원들도 문화교류의 통로가 되고 있다.

■선율에 실려오는 인도 문화

지난 24일 주한인도문화원 ‘힌디 노래’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왼쪽)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에게 노래를 배우고 있다. 강사가  연주하는 악기는 인도 전통 건반악기인 ‘하모니움’이다. 구글미트 화면 캡처

지난 24일 주한인도문화원 ‘힌디 노래’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왼쪽)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에게 노래를 배우고 있다. 강사가 연주하는 악기는 인도 전통 건반악기인 ‘하모니움’이다. 구글미트 화면 캡처

주한인도문화원은 이달 초 인도 전통춤과 ‘발리우드(Bollywood, 인도 영화산업)’ 춤, 힌디 노래 등을 전하는 수업을 온라인으로 개강했다. 수년간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수업을 코로나19로 잠시 닫았다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해 열었다. 등록비 1만원을 제외하고, 수업료는 없다.

수업은 단지 춤 동작을 따라하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춤과 노래 속에 문화가 담겨온다. 24일 진행된 노래 수업 역시 그랬다. ‘홀리 송’을 부를 때는 “유명한 발리우드 영화에 나온 곡인데, ‘색의 축제’로 알려진 인도의 ‘홀리 축제’를 노래하고 있다. 올해는 오는 29일이 홀리 축제일”이라는 강사의 설명이 따라왔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색색의 가루와 물감을 서로에게 뿌리며 행복을 기원하는 축제다. 노래 속에 반복되는 “랑그 바르세 비게 쭈나르 왈리 랑그 바르세”라는 가사는 “스카프를 한 소녀가 수채화색 물감에 흠뻑 물들었네”라는 뜻이다. 힌두교의 시바신을 찬양하는 두 번째 노래를 부를 때는 ‘갠지스강이 시바신의 몸을 타고 땅으로 흘러내렸다’는 힌두교인들의 믿음이 함께 전해졌다.

북인도 전통무용인 까탁 춤 무용가인 차크라바티는 주한인도문화원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친다. 그는 문화를 전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다른 문화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저의 구루(스승)는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아주 좋지만,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고 하셨어요. 되도록 많은 한국인들과 예술을 통해 교류하고 싶습니다. 처음엔 낯선 한국에 와서 겁이 났는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냅니다. 가르치러 왔지만 저 역시 매일매일 모두에게 배우고 있어요.”

수강생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이는 여행지의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어떤 이는 다른 문화를 배우는 흥미로운 경험을 위해 문화원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고씨는 “재작년에는 인도 전통악기 ‘타블라’(작은 북)를 배웠고, 이번에는 노래 수업이 온라인으로 열린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인도여행을 다녀온 뒤 인도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그 여행갔을 때의 느낌들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한인도문화원에서 북인도 전통춤 ‘까탁’을 배우는 한은정씨가 코로나19 이전 연습실에서 코끼리 머리를 한 힌두교 신 가네슈를 형상화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도에서 가네슈는 행운과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한은정씨 제공

주한인도문화원에서 북인도 전통춤 ‘까탁’을 배우는 한은정씨가 코로나19 이전 연습실에서 코끼리 머리를 한 힌두교 신 가네슈를 형상화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도에서 가네슈는 행운과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한은정씨 제공

차크라바티에게 까탁 춤을 배우는 한은정씨는 “익숙하지 않은 동작,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배워나가는 일이 어렵지만 그래서 더 즐겁다”고 말했다. 춤 수업을 들은 지 5년이 넘었는데, 온라인으로 배우는 건 처음이다. “코로나19로 수업이 닫혀서 다시 열리길 손꼽아 기다렸는데, 온라인으로라도 수강하게 돼서 좋아요. 처음에는 작은 내 방에서 춤을 추는 게 가능할지 걱정도 됐는데 충분히 소통하며 할 수 있더라고요. 배우다보면 인도에 얼른 다시 가보고 싶어지죠.”

소누 트리베디 주한인도문화원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확산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전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주한인도문화원은 인도 문화를 사랑하는 한국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기 위한 시도로 온라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면서 “온라인 수업이 결코 물리적 교육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제한된 여건에서도 다양한 대체 학습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에는 요가와 명상, 악기 연주 수업 등도 추가로 열 계획이다. 1947년 8월15일 영국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제75주년 독립기념행사 ‘INDIA@75’도 지난 19일부터 오는 8월15일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해 계속될 예정이다.

■음식에 담겨온 터키 문화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역삼동 터키이스탄불문화원에서 열린 요리 수업에서 완성된 터키식 피자 ‘피데’와 ‘보스타나’ 샐러드. 이슬씨 제공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역삼동 터키이스탄불문화원에서 열린 요리 수업에서 완성된 터키식 피자 ‘피데’와 ‘보스타나’ 샐러드. 이슬씨 제공

민간에서 설립한 문화원들의 프로그램도 일부 축소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24일 오전에 찾은 서울 역삼동의 터키이스탄불문화원에선 터키식 피자인 ‘피데’를 만드는 요리 수업이 열렸다. 1997년 터키인이 시작한 민간 문화원으로, 지난 1년간 방역수칙에 따라 수강 정원을 때론 1~2명까지 대폭 줄여가면서 프로그램을 이어왔다. 현재는 한 수업에 최대 8명까지 받고 있다.

터키인인 제이다가 진행한 이날 수업에는 수강생 5명이 참여했다. “오늘 만들 전통 음식은 ‘에브 야프므 피데’라고 부릅니다. 가정식 피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에서는 피자가 비싼 편이지만, 터키에서는 피데가 아주 저렴한 서민 음식이에요. 피데 반죽 위에 원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얹어서 만들기도 합니다.”

설명에 따라 반죽을 치대고, 밀대로 밀어 모양을 내고, 속재료를 얹어 구웠다. 끝이 뾰족하게 모아진 타원형의 피데를 만드는 동안 자연스럽게 터키의 음식문화와 식사 예절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수강생들은 터키 홍차와 음식을 즐기면서, 터키 문화를 먹고 마셨다. 처음으로 문화원 수업에 참여했다는 이슬씨는 “1년에 한 번씩 가던 해외여행을 지금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데, 오늘 와보니 100%는 아니더라도 충족되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다른 문화원에서 하는 문화교류 프로그램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제이다가 요리수업을 진행한 지는 1년 정도 됐다. 코로나19로 제약이 많지만, 그래도 터키 요리를 통해 한국인들과 소통하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긴다. “대개 ‘가정식 터키요리’를 함께 만드는데, 제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모든 새로운 문화는 경험하고 배우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여행길이 막혀서 답답한 분들도 있으실 텐데, 많은 분들과 함께 이국적인 문화를 나누었으면 하고 바라요.”

이곳에선 요리뿐 아니라 터키 전통 램프와 도자기, 실크 스카프 수업 등이 열린다. 한 달에 한 번 40여명이 모여 터키식 아침식사를 하는 대규모 행사는 취소했지만, 소규모 행사는 방역수칙을 지키며 지속하고 있다. 문화원 박민정 팀장은 “한국과 터키가 문화적으로 어떤 면이 비슷한지, 어떤 점이 다른지 등을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며 “한국인들에게 터키를 좀 더 알리고 교류의 폭을 넓혀가려 한다”고 말했다.

■문화로 마음 여는 일, 더 중요해져

해외문화원을 찾은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오히려 다른 문화권 사이에 ‘마음을 여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문화교류는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더 문을 닫고 서로 배제하기 쉽잖아요. 동양인이면 무조건 코로나19 이야기를 하며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서로 소통하고 문화적 이해를 쌓으면서 존중할 때, 상대를 향한 극단적 행동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여러 문화를 접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더 소중해진 것 같습니다.”(한은정씨)

이슬씨도 “다른 문화를 접하면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 오히려 더 발견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른 관점을 알게 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만큼 이런 문화교류의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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