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기술자’ 도대체 작가의 '일상에서 귀여움을 발견하는 법'

2021.05.21 16:15 입력 2021.05.21 22:30 수정

경향신문 ‘토요툰’ 연재물로 '그럴수록 산책' 출간

도대체 작가의 페르소나인 ‘토요툰’ 주인공과 함께 ‘그럴수록 산책’에 등장했던 각종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의 산책로 사진 위에 도대체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강윤중 기자

도대체 작가의 페르소나인 ‘토요툰’ 주인공과 함께 ‘그럴수록 산책’에 등장했던 각종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의 산책로 사진 위에 도대체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강윤중 기자

2019년 3월1일 홀연히 토요판에 나타나 ‘그럴수록 산책’을 권하던 캐릭터가 있다. 산책길 철쭉 화단 앞에 핀 민들레보다 철쭉 덤불 사이에서 자라는 민들레의 키가 더 크다는 걸 발견하고서는, ‘운 나쁘게 그 자리에 떨어졌지만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려고 용을 썼구나’ 감정이입을 한다. 길에서 만난 작은 생명체, 별스럽지 않은 일상에서 웃을 거리를 찾아내고,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잘한 거라며 스스로를 도닥인다. 머릿속에만 맴돌 뿐 콕 집어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일상의 감정을 8컷 안에 담아내는 통찰력은 도대체 작가 만화의 백미로 통한다.

그동안의 산책 일화에 에세이를 더해 이달 초 출간한 <그럴수록 산책>은 2주 만에 중쇄에 들어갔다. 지난 2년간 경향신문 토요툰을 연재해온 도대체 작가는 야외배변을 고집하는 반려견 태수(네이버 동물공감 만화 ‘태수는 큰형님’의 주인공) 덕분에 하루 네댓 번 산책을 하고 있다며 가무잡잡, 건강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로 만화를 그릴 수 있고 또 공감해주는 분들도 계시는 때에 마침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마 다른 시대였다면 그냥 주의가 산만한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작가가 좋아하는 ‘그럴수록 산책’ 회차는 2019년 4월6일자 에피소드. 개굴개굴 울어서 개구리, 귀뚤귀뚤 울어서 귀뚜라미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동물들은 자기를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름으로 여기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담겼다. 이를테면 길고양이를 보고 “나비야”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비’로, “꼬맹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꼬맹이’로 기억하는 반면 “야, 이 재수 없는 &※#@”처럼 욕설을 퍼붓는 사람은 그 ‘욕설’로 기억할 거라는 도대체식 상상이다.

만화 속 길고양이 ‘꼬맹이’는 도대체 작가의 가족이 됐다. 영역에서 밀려나 하수구에서 겨울을 날 것이 걱정돼 꼬맹이를 데려왔고, 고양이 학대범에게 험한 일을 당한 ‘장군이’도 거뒀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몸으로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들을 돌보던 녀석을 눈여겨보던 차에 “고양이도 착하게 살았으면 복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인생기술자’ 도대체 작가의 '일상에서 귀여움을 발견하는 법'

사업을 망한 뒤 시작한 산책,
길에서 만난 존재들에게서 위안을 받아

■ 산책의 힘

필명 도대체는 1999년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하며 “우발적으로” 만든 아이디다. 별도의 이름 없이 작가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은 단순한 그림체의 캐릭터는 20대 초반 모나미153볼펜으로 그리던 시절 그대로다. “제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씩 유려해진 것 같은데, 다른 분들 보기에는 크게 차이가 없지 않을까요(웃음).” 명색이 미술 전공자 출신. 충분히 그림에 욕심 낼 수 있었지만, 일찌감치 ‘내 그림체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린 만화 (인삼이 아니라 고구마라서) ‘행복한 고구마’가 온라인에서 잔잔한 공감을 불러오며 도대체 작가를 널리 알렸다. 2017년 나온 만화&에세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는 누적 판매 6만권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 따라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면 평소에도 그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하세요.” 다정한 말투로 폐부를 찌르는 글과 단순한 그림의 묘한 조합은 도대체 작가의 간단치 않았던 경력에서 나오는 내공, 요즘 말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다. 웹라디오 작가, 웹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 작사가, 싱어송라이터, 사업가 외 각종 비정규직, 주야 투잡족까지 섭렵했다. 첫 직장은 외환위기 당시 대학을 휴학하고 들어간 온라인 업체. 후임 남자 사원이 아닌 도대체 작가에게 매일 아침 커피 심부름을 시키던 사장의 커피에 화초를 뜯어 올리고(뜨거우니 불어서 드시라고), 계란을 풀어(건강을 생각해서 드시라고) 건네던 의기양양 20대였다. (도대체의 건강 커피 프로젝트는 3일천하로 끝났고, 사장은 남자 직원에게 인계를 명했다.) 이후 30대에 시작한 프리랜서 활동, 야심차게 도전한 사업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처참하게 망하고 나니까 확 겸손해지더라고요. 많이 지났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긴 한데, 20대 초반 오만방자하던 그대로 계속 살았으면 되게 볼썽사나운 사람이 됐을 것 같아요. 그 고비들을 넘기면서 사람처럼 되는 것 같더라고요.”

1년 반가량 아무 수입 없이 멍하니 있던 시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산책이었다. “나를 일으키는 가장 효과 좋은 처방”이었다. 많이 걸으며 체력을 다 써버리면 우울을 느낄 새도 없이 기진맥진 쓰러진다는 사실을 체득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관록이기도 하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건너자, 나 아닌 존재들에게 시선이 가닿았다. 꿩, 두꺼비, 쥐며느리에게까지도.

“산책길에서 만난 벌레, 풀, 길고양이들을 보면서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다들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라고 어떻게 편하게만 살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시간여행은 어려운 게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글을 뻔뻔하게 책으로 내는 저자지만, 도대체 작가는 한 번도 마감 기한을 어긴 적이 없다. 빈틈이 많아 보이는 그림체지만, 맞춤법 한번 틀린 적이 없다. 도대체 작가는 스스로를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에피소드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3분 웃기기 위해 3시간을 준비한다. 매사 주도면밀, 열심이다.

“친구들 웃기겠다고 포토샵으로 ‘도대체 유머교실 수강권’을 만들어 출력해 주곤 했어요. 사실 그렇게 해줘봐야 3분도 안 웃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친구가 웃겠지’ 하면서 준비하는 시간이 좋아서 하죠. 제가 웃으려고 하는 거니까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억지스럽거나 교조적이지 않은 점도 인기 요인으로 통한다. 작가는 화물영업소에서는 간단한 운송비 정산 프로그램도 다루지 못해 맨날 혼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리 업무를 할 때는 첫날부터 유능한 직원이 됐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직업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과 안 맞았다고 다른 사람과도 안 맞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것. “남들이 다 한다고, 열풍이라고 억지로 하는 것보다 내가 해봐서 좋으면 계속하는 것.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게 제일 필요한 것 같아요.”

‘인생기술자’ 도대체 작가의 '일상에서 귀여움을 발견하는 법'

코로나19 위기로 ‘집콕모드’…
알람시계·검은 봉투도 만화 주인공으로
이유를 알면 귀여워지는 것들이 존재…
때론 척박한 세상을 구하기도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며 ‘그럴수록 산책’은 지난해 ‘아무래도 집콕’ 모드로 바뀌었다. 도대체 작가는 ‘집콕’하는 김에 태수의 바리캉으로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삭발을 감행했다. 덕분에 한동안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청결한 방바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집콕’에서 얼마나 만화 소재를 발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역시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쩐지 웃기는 점을 발견해내는’ 특기를 살려 작은 웃음에 집중하는 글과 그림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기 소개는 감염병 시대에도 온전히 발휘되고 있다. ‘아무래도 집콕’에는 본분을 잃은 알람시계부터 급기야 냉동실 깊숙이 자리 잡은 검은 비닐봉지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도대체 작가는 말한다. “이유를 알면 귀여워지는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방호복과 마스크로 온몸을 꽁꽁 감싼 간호사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방호복 위에 부직포로 만든 토끼귀, 꼬리 등을 붙였다. 이 ‘귀여운’ 시도는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치던 지난해 여름, 확진자 낙인으로 이중고를 겪던 병상의 환자마저 미소 짓게 했다. 때론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이처럼 귀여움은 가장 척박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고난도의 영역이다.

하지만 도대체 작가의 ‘일상에서 귀여움을 발견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산책하면서 주변에 관심을 갖듯이 “산만하면 된다”. 속상한 일이 있다면, ‘인생기술자’ 도대체 작가에게 감정이입해보자. 어딘가 웃기는 점을 발견하고, 이 또한 내 인생 만화 속 에피소드의 소재가 될 거라고 여기면 어쩐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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