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대부분의 사무직 업무는 사실 아무 쓸모가 없다

2022.08.13 08:00

필수 노동자는 저임금, 온갖 컨설턴트들은 부유

‘가짜 노동’이라는 기만, ‘핵심 업무’에 집중하라

<가짜 노동>의 저자들은 많은 사무직 노동이 사회 전체와 개인에게 낭비라고 말한다.

<가짜 노동>의 저자들은 많은 사무직 노동이 사회 전체와 개인에게 낭비라고 말한다.

가짜 노동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자음과모음|416쪽|1만6800원

어떤 양육자들은 “열심히 공부해라. 아니면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한다”는 말로 학생들을 얼렀다. 이들의 말 속 ‘더울 때 더운 곳,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현장직을, 반대로 ‘더울 때는 시원한 곳,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무직을 암시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꿈은 사무직이었다. 그러나 사무직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가 뒤집혔을 때, 각국 정부는 ‘필수 노동자’ 목록을 만들어 발표하고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에 착수했다. 보건의료 종사자, 돌봄 종사자, 배달업 종사자, 환경미화원 등이 꼽혔다. 전문 경영인(CEO), 경영 컨설턴트, 감사 책임자, 홍보 전문가 등은 여기 포함되지 않았다. 책 <가짜 노동>은 “필수 노동자 중 많은 수가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반면, 온갖 종류의 컨설턴트들은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역설”을 지적하며 “노동의 대부분이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없는 신기루”라고 주장한다.

현장직과 사무직 사이 발생하는 신분·임금 차이 등의 모순을 지적하며 문을 연 책은 사무직 노동의 대부분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증명하는 데에 힘쓴다. 하나 마나 한 설문지를 채우느라 시간을 허비한 의사, 스프레드시트를 채우느라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없는 교사, 결국은 폐기될 새로운 상표명을 고안하는 데 6개월을 고민한 CEO…. ‘내 일은 쓸모없다’고 증언하는 이들은 차고 넘쳤다. 저자들은 지식 집약 노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면담한 결과 그들이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파국적이고 존재론적 낭비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가짜 노동’(pseudowork)이라는 개념어를 사용한다.

생산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18세기, 유럽과 미국에 ‘서기’들이 등장해 교역과 재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무직을 위한 건물이 사방에 들어섰고, 생산 노동자가 일하는 시설은 도시 밖으로 옮겨졌다. 사무직의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문제가 있었다. 현장직의 일과 달리 사무실에서 하는 일은 ‘계량’하기 어려웠다. 사무직 노동의 효율성을 상승시키기 위해 온갖 새로운 절차, 감독, 직업이 생겨났다. 효율성을 관리하겠다는 목적 아래 관리직, 경영진, 그리고 그들을 위한 비서를 고용하는 소모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이뿐 아니다. 예전엔 약간의 교육이나 훈련만으로 충분했던 일자리들을 위해 갑자기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는 석사, 박사 학위까지 요구하는 일들도 생겨났다.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지나친 교육을 받았음을, 학위는 단지 구직자를 거르는 용도로 사용될 뿐 정작 직장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길러주지는 않았음을 실무에 투입되고 나서야 마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류는 고등교육을 받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위한 역할을 찾아냈다. 인사, 홍보, 마케팅, 영업, 경영 전략, 준법 감시, 연구 개발, 혁신, 회계 관리, 업무 관리, 인성 분석…. 책은 이런 직군 종사자들이 ‘가짜 노동’에 시달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완전히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펴낸 <불쉿 잡(Bullshit Job)>은 “‘쓸모없고 무의미하고 허튼 일자리’인 ‘불쉿 잡’이 자본주의적 위계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며 이 현상의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을 분석해 호응을 얻었다. 사모펀드 CEO, 광고 조사원, 보험 설계사, 법률 컨설턴트, 기업 법무팀 변호사 등을 대표적인 ‘불쉿 잡’의 예로 들었다. 불쉿 잡은 노동자 스스로 노동에 회의를 느끼게 만들게 하는, ‘직업을 위한 직업’이라고 평가했다. <가짜 노동> 역시 이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불쉿 잡>이 특정 ‘직업’에 실질적 내용과 의미가 결여됐다고 지적했다면, <가짜 노동>은 직군에 상관없이 대부분 사무직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업무’에 집중했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책은 불쉿 잡 등의 정의를 녹이면서도, 그저 노동 시간을 채우는 무의미한 서류 작업이나 회의를 포괄하기 위해 ‘가짜 노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긴 시간이 많은 생산을 의미하는 시대는 고릿적에 끝났다. 노동자가 직조 기계 앞에서 가동 시간 내내 옷감을 생산하던 때는 37시간 대신 40시간을 일하면 더 많은 가치가 생산됐다. 현대의 사무직 노동자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고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주지의 사실이다.

“노동자들은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면 쫙 빠져나갈 것이다. 일주일에 사흘만 그렇게 일하고 나머지 4일은 정원을 돌보며, 삶을 즐기고 자연과 교감할 것이다.”

미래 도시를 설계하던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930년 프린스턴 대학교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시기,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미래에 여가 시간이 너무 많아질 것이라며 2030년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60년 미국 상원은 2000년까지 주 14시간 노동이 실현 가능하리라는 예측 보고서를 냈다. 이토록 많은 20세기 학자들이 인류가 진보하면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주 15시간 노동을 당연한 미래로 여기지 않는다. 저자는 덴마크 전일제 직장은 아직도 37시간이라는 점을 근거로 드는데, 슬프게도 한국 전일제 직장인의 노동시간은 이것보다도 훨씬 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지겹도록 일하고 있는가. 책에 따르면 개인적 차원과 조직적 차원, 구조적 차원이 모두 문제다. 먼저 개인적 차원을 보자. 잉여 인력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근무시간에는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천천히 일하고, 삼중으로 확인하고, 잠깐씩 주의를 분산시킨다. ‘가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조직도 이를 허용한다. 관리직들은 더 많은 직원을 관리해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규모가 큰 팀의 리더일수록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팀원 두 명이 한 명이 할 일을 나눠서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평균 임금보다 200배 많은 봉급을 가져가는 미국 CEO들은 서로의 터무니없는 봉급을 합리화하기 위해 리더십, 전략, 가치, 비전 등 ‘허깨비’의 유용성을 세상에 설득한다.

바쁜 것이 좋고, 필요하고, 도덕적이라는 개신교적 교리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믿음이 됐다. 종교와 국가의 영향이 덜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성실한 일꾼, 회사에서 중요하고 대체불가능한 직원으로서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바쁜 척’을 하는 것, 즉 ‘가짜 노동’은 자신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노동을 시간 기준으로 측정하는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은 것도 문제다. 유럽의 좌파와 노동조합들은 20세기 중반 이래로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더 많은 정규직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노동시간은 임금을 기준으로 유지됐다. ‘가짜 노동’이 횡행한 데는 좌·우파의 책임을 나누기 어렵다. 덴마크의 뉴스 프로그램 <데드라인>에 좌파 대표 패널로 섭외됐던 아네르스 포그 옌센과 우파로 섭외됐던 데니스 뇌르마르크가 함께 이 책을 집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가짜 노동’이라는 오랜 기만을 그만두고 ‘핵심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동자가 빠른 효율로 주어진 일을 마친 뒤 더 많은 시간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개인에게는 더 멋진 삶, 사회적으로는 더 고상한 문화와 문명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1932년 버트런드 러셀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노동의 의미를 전부 부정하지는 않는다. ‘가짜 노동’의 정체를 밝힐 증언들을 담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인간은 뭔가 유용하고 의미 있고 진짜인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이런 움직임에 회사가 먼저 나선다면 더할 나위 없다. 책은 직원들이 더 적게 일하면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 4일제 노동을 도입한 회사를 소개한다. 덴마크의 데이터 사업 회사인 IIH 노르딕의 매출은 직원들이 더 적게 일할수록 증가했다. 주 4일제 도입 이후 직원들의 병가는 50% 줄었고, 주간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스트레스 지수는 최저 수준을 보여줬다.

2009년 현장의 인사담당직을 대부분 없앤 넷플릭스의 사례도 인용한다. 당시 최고 인사담당자였던 패티 매코드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고픈 스스로의 욕망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인력을 신중하게 채용한다면, 직원의 97%가 제대로 일할 것입니다. 대부분 회사는 나머지 3%가 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 방침을 규정하고 시행하면서 끝없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합니다.”

독자에게는 사회가 바뀌기를 기다리고만 있지 말라고 주문한다. 눈치 보지 않고 할 일이 끝났으면 퇴근하기, 직장에 있는 동안은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기, 회의를 짧게 하기, 서로에 대한 감시를 줄이고 신뢰하기, 부당한 지시에 불복종하기 등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을 나열했다. 책은 낭비를 멈추고 ‘진짜 문제’에 집중할 것, 자유롭게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진짜 문제’는 보고서 작성,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만들기, e메일 정리하기 등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아무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기 등이다.

저자들은 ‘가짜 노동’에 대한 개인적인 대응책 사이에 소극적으로 ‘보편적 기본 소득’을 끼워 넣었다. 가짜 노동의 원인을 잘 설명하면서도 구조적, 거시적 차원의 해결책은 본격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노동을 측정하는 기준을 ‘시간’이 아닌 ‘실제 업무’로 대체하는 거대한 변화를 위해 개인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다소 무책임해 보인다. 장시간 노동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척 그만하고 퇴근하라’는 저자들의 제언을 실천할 수 있을까.

[책과 삶]대부분의 사무직 업무는 사실 아무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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