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갑자기 물에 빠졌다면 흐르는 그 물에 몸을 맡기는 건 어때요

2023.11.01 16:26 입력 2023.11.01 22:33 수정

그림책 ‘키오스크’의 아네테 멜레세

“위기가 새로운 기회 되기도”

그림책 <키오스크> 작가 아네테 멜레세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그림책 <키오스크> 작가 아네테 멜레세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그림책에 글은 몇 자 되지 않는다. 그림도 몇 컷 되지 않는다. 때론 그 몇 글자, 몇 컷이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그림책 작가 아네테 멜레세의 <키오스크>가 그렇다. 아이들 그림책인데 2030 어른들이 더 호응했다.

서울 홍대 부근에서 열린 ‘라트비아의날’ 행사 참석차 방한한 멜레세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멜레세에게 한국의 2030,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키오스크>의 인기가 많았다고 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성인 여성들에게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며 웃었다.

‘키오스크’는 한국으로 치면 길거리 가판대다. 신문도 팔고, 과자도 판다. 좁은 키오스크에서 일하는 올가는 키오스크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갑갑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올가는 키오스크 안에서 여행잡지를 읽으며 만족한다. 어느 날 그는 키오스크와 함께 넘어지고 깨닫는다. ‘움직일 수 있구나.’ 그는 걷다가 강물에 빠진다. 물에 몸을 맡긴다. 어느덧 키오스크와 함께 편안한 얼굴로 해변가에 다다른다. 노을을 바라보며 책을 펼친 올가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멜레세는 2008년 예술축제를 위해 비어있는 전시공간 중 하나인 키오스크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키오스크를 보는 순간 머리에 불꽃이 튀었다”며 “직장에서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고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 직장을 그만두고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였다”고 전했다.

<키오스크>. 미래아이

<키오스크>. 미래아이

그림책 <키오스크>의 한 장면. 미래아이

그림책 <키오스크>의 한 장면. 미래아이

<키오스크>가 울림을 주는 대목은 키오스크 안에서도 올가가 행복했다는 점. 멜레세는 “올가가 키오스크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림도 스케치해놨다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결말 같아 사용하지 않았다”며 “키오스크를 벗어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그 속에서 걸어다닐 수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멜레세는 “키오스크 통째로 넘어지는 외부적 상황에서 올가는 ‘일어서서 걸을 수 있다’고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질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며 “물속에 빠져도 도망가려 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흘러간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내려고 발버둥치기보다 때론 받아들이고 위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가다보면 해결점을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가에게 위기는 새로운 기회였다는 점을 독자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에서 엄마는 업무용 방으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아빠에게 아이를 맡긴다.  작가는 엄마가 업무용 공간으로 길게 내뻗은 다리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 힘든 현실을 표현했다고 한다. 미래아이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에서 엄마는 업무용 방으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아빠에게 아이를 맡긴다. 작가는 엄마가 업무용 공간으로 길게 내뻗은 다리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 힘든 현실을 표현했다고 한다. 미래아이

새 책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도 어린이 대상이지만 어른이 봐도 미소 지을 내용이다. 세 살배기 스텔라가 잠잘 시간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고 일하기 위해 업무용 방으로 간다. 아빠는 침대에서 그림책을 읽어준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스텔라에게 잠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디로 갔나 싶은 ‘잠’은 엄마가 가져갔다는 것. 아이를 재우다 잠든 어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다. 실제 두 아이 엄마이기도 한 멜레세 자신의 이야기다. 스텔라도 그의 딸 이름이다.

그는 “때때로 아이를 위한 책인가, 부모를 위한 책인가 싶다”면서 “일과 가족,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고 힘들다”며 웃었다. 유튜브를 비롯해 영상의 홍수 시대에 멜레세도 일하느라 바쁠 때 TV를 틀어준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림책을 읽어주며 부모가 아이와 같이 대화하고 감정적 유대감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 장소에 분홍색과 초록색이 섞인 원피스를 입은 멜레세 뒤로 그의 그림책이 전시돼 있었다. 그의 그림책에도 유독 분홍과 초록이 눈에 띄었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한다. 두 가지 색의 배합은 따스함과 싱그러움이 함께 배어 있는 그의 그림책을 더할나위 없이 잘 드러냈다.

“그림책은 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제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존재이지요. 그림책은 짧지만 그림이 주는 큰 매력이 있습니다. 그림책은 예술입니다.”

그림책 <키오스크> 작가 아네테 멜레세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그림책 <키오스크> 작가 아네테 멜레세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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