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진정성’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종종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이 세상에 잘 알려진 사건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이유다.
2일 개봉하는 영화 <제보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05년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이다. 당시 줄기세포 연구팀에 있던 한 제보자가 ‘줄기세포는 없다’는 사실을 시민단체를 통해서 언론에 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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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을 만났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온 <제보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언론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제보자>를 줄기세포 조작 진위나 한 개인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임 감독은 “언론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서 사실이 아닌 것이 어떻게 사실이 되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가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었죠. 정보기술(IT)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바이오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크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바이오산업은 모두의 욕망을 반영할 만한 것이었다고 여겼죠.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 난치병이 완치된다 등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것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황우석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그 중심에 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강점’이자 ‘약점’이 됐다. 임 감독은 “당시 40대 아저씨들도 ‘미토콘드리아’니 ‘처녀생식’이니 전문용어를 입에 달고 다닐 만큼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었다”며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 관객들이 이 영화를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교훈적인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그는 “이 영화가 추리물이 아니지만 (추리물과 같은) 장르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컷 수를 늘려 화면의 속도감이 느껴지도록 했고 배경음악도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것들로 넣었다. 중심이 되는 캐릭터들에게도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군데군데 넣었다. 주인공인 윤민철 PD는 진지한 성격이지만 때때로 틈을 보이고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농담을 구사하는 것 등이다.
과학적인 내용들은 쉽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도 했다. 임 감독은 제작팀과 함께 촬영 시작 전 4개월 동안 온갖 자료를 섭렵하며 공부했다. 당시 논문조작을 보도한 수십 개의 뉴스 프로그램들을 봤다. 임 감독은 “생물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어 기본적인 용어를 이해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윤민철 PD(박해일)와 이장환 박사(이경영)가 전문적인 내용으로 설전을 주고받을 때도 관객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몇몇 용어는 자막으로 설명했다.
영화의 제목인 ‘제보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제보자는 영화 속에서 사실을 알리는 제보자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논문조작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언론인 윤민철 PD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는 전자보다 후자에 더 무게중심을 둔 듯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국민들이 언론과 이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다시 돌아봤으면 한다고 했다.
“요즘 언론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잖아요. 언론이 외압도 많이 받고 있고요. 관객들이 영화 속 윤 PD의 노력이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외압들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기자나 언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변화는 국민들이 중심에 서야 이뤄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