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걸’ 세상의 편견에 맞서 여자답게 승리하라

2020.04.06 20:44 입력 2020.04.07 10:18 수정

호주 경마대회인 멜버른컵 우승자 미셸 페인의 실화를 다룬 <라라걸>은 여성 감독·각본·주연의 ‘트리플 F등급’ 영화다.  판씨네마 제공

호주 경마대회인 멜버른컵 우승자 미셸 페인의 실화를 다룬 <라라걸>은 여성 감독·각본·주연의 ‘트리플 F등급’ 영화다. 판씨네마 제공

승리가 아닌 ‘인내’에 대한 이야기다. 실력과 열정을 끊임없이 부정당했던 한 여성이 ‘여자답게’ 승리를 거머쥐기까지 인내하고, 또 인내한 이야기. 여성으로서는 155년 만에 처음 호주 멜버른컵에서 우승한 미셸 페인의 실화를 다룬 영화 <라라걸>이다.

이야기는 2015년 11월3일 ‘제155회 멜버른컵’이 열린 호주 멜버른 플레밍턴 경마장에서 시작된다. 역대 최초 여성 기수 우승이라는 역사가 쓰인 이날, 출발 직전 상기된 미셸의 얼굴이 어린 미셸의 얼굴로 바뀐다. 페인 페밀리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침대보다 마구간에서 잠드는 걸 좋아하던 ‘꼬마’ 미셸. 역대 멜버른컵 우승자와 경기마 이름을 줄줄 외우며 멜버른컵 우승을 꿈꾸지만, 그가 보고 자란 세계는 여성 기수에게 녹록지 않았다.

아버지는 미셸의 든든한 조력자였지만, 실력이 우수한 딸보다는 아들에게 기대를 건다. 여자 기수들에겐 성차별적 발언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틈을 치고 나가지 않으면 겁쟁이라지, 여자라서. 근데 틈을 치고 나가면 충동적이고 기술력이 없다지, 여자라서.” “여기수는 멜버른컵 우승 근처에도 못 가봤어요. 마지막 100m에서 힘이 달리거든요. 무엇보다 너무 충동적이에요.”

2004년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까지 경험했던 미셸은 끝내 멜버른컵 출전권을 따낸다. 3200번의 출전·361번의 우승·7번의 낙마·16번의 골절이라는 이력을 써낸 후였다. 미셸이 멜버른컵에 출전하자 “여자는 멜버른컵에 나갈 수 없다”던 꼬리표가 “여자는 우승을 못한다”는 말로 바뀐다. 세상은 미셸을 충동적이라 평했지만, 충동적인 건 여성의 실패와 성취를 함부로 재단하는 사회였다. 미셸은 멜버른컵 우승을 통해, 세상이 아닌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흔한 언더독 이야기(이길 가능성이 낮은 팀이나 선수가 편견을 딛고 승리하는 이야기)와 달리 최초·최고 타이틀보다 ‘최선’을 조명한다. 담담하고 차분한 연출 덕분인지 영화 말미에서 실제 미셸이 우승 소감을 말하는 장면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다들 입 다물길 바라건대… 여자는 힘이 부족하다지만, 방금 우리가 세상에 이겼네요.”

미셸의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우승이 채 5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즘 남녀차별이 어딨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무색하게도, 1985년생 미셸이 겪은 차별과 멸시는 동시대의 일이며 현재 진행 중인 일이기도 하다. ‘성별 상관없이 모두 참여 가능하다’는 자격 조건을 걸었음에도 멜버른컵 155년 역사상 여성 참가자가 단 4명뿐이었다는 사실은, ‘경마는 힘’이란 구호 아래 여성에게 가해진 텃세와 선입견·진입장벽을 짐작하게 한다.

원제 ‘라이드 라이크 어 걸(RIDE LIKE A GIRL)’은 여자다움(Like a gir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LIKEAGIRL)에서 따왔다. 우리말 제목은 앞자를 따서 ‘라라걸’로 지었다.

여성 중심 서사에, 여성 작가와 감독이 참여한 여성 영화다. 영화 <쥬드> 등에 나온 호주 출신 배우 레이첼 그리피스가 50세 나이에 메가폰을 잡았다.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배우이자 각본가인 엘리스 매크레디가 각본을 썼다. <핵소고지> 등에 출연한 배우 테리사 파머가 주연을 맡았다. 15일 개봉. 98분,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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