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고 뛰어오르는 삶, '나'로 사는 법…뮤지컬 '쇼맨'

2022.05.04 11:02 입력 2022.05.04 15:07 수정

오는 15일까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주체성을 상실한 개인의 삶과 회복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오는 15일까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주체성을 상실한 개인의 삶과 회복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공연은 “때로는 당당하고 때로는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악기”(이선영 작곡가)인 트럼펫 독주로 문을 연다. 어둠 속 한 남자가 무대 위에 서고, 남자를 비춘 조명은 그의 몸 위로 일렁이는 물결을 만들어낸다. 남자는 마치 파도에 휩쓸린 듯 몸을 허우적대며 노래한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 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세상의 기준과 시선에 맞춘 삶이 아니라, ‘진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에는 이런 질문에 마주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때 어느 독재자의 대역배우로 살았던 70대 노인, 역시 누군가의 ‘대체품’으로 살아야 했던 20대 청년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공연의 처음과 끝에 변주되는 노래 ‘인생은 내 키만큼’의 가사처럼, 이들의 “가라앉고 뛰어오르는”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자의 이름은 네불라, 라틴어로 ‘아지랑이’라는 뜻이다. ‘파라디수스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독재국가 출신 미국 이민자다. 이야기는 마트에서 일하는 한국계 입양아 ‘수아’가 유원지에서 회전목마를 타고 나타난 노인 네불라와 우연히 마주치며 시작된다. 수아를 사진작가로 오인한 네불라는 “진짜 내 모습을 남기고 싶다”며 수아에게 촬영을 부탁하고, 수아는 대충 찍고 공돈을 벌 생각에 이 의뢰를 받아들인다.

촬영이 진행되며 네불라는 무명 배우에서 파라디수스 공화국의 독재자 ‘미토스’의 대역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런 그를 처음엔 경멸하듯 바라봤던 수아는 양부모를 대신해 아픈 동생을 돌봐야 했고, 지금도 마트에서 누군가의 대체 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네불라에게 투영한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누군가의 ‘대역’과 ‘대리’라는 비슷한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은 상대를 거울 삼아 자신과 마주한다.

창작 뮤지컬 <쇼맨>의 한 장면. 극중 소품인 마트 카트는 장면 전환에 따라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로도 활용된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창작 뮤지컬 <쇼맨>의 한 장면. 극중 소품인 마트 카트는 장면 전환에 따라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로도 활용된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쇼맨>의 한 장면. 배우 윤나무(왼쪽)·강기둥은 9살 소년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인공 ‘네불라’를 연기한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쇼맨>의 한 장면. 배우 윤나무(왼쪽)·강기둥은 9살 소년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인공 ‘네불라’를 연기한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올해 초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이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뮤지컬 <레드북>을 함께 만든 한정석 작가, 박소영 연출, 이선영 작곡가가 다시 의기투합해 무대에 올린 신작이다. 사회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개인의 삶과 회복을 블랙코미디의 문법으로 풀었다. 한 작가는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며 “‘주체적이지 않다는 자각이야말로 주체성 회복의 시작’이라는 책(김민섭 <대리사회>)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죄책감과 억울함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된 노인 네불라는 30대 배우 윤나무·강기둥이 번갈아 연기한다. 지난달 28일 무대에 오른 강기둥은 아홉 살 소년부터 청년과 장년, 70대 노인까지 혼돈에 사로잡힌 인물 네불라의 여러 모습을 물 흐르듯 연기했다. 단 6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이지만 매끄러운 장면 전환과 다역 연기로 무대를 꽉 채운다. 수아의 일터 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가 회전목마로 변신한다거나, 인형을 활용해 유년시절 네불라의 어린 형제자매들을 표현하는 등 소품을 활용한 연출도 재치 있다. 6명의 연주자가 트럼펫과 바이올린, 첼로, 드럼과 건반을 연주하며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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