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까지 그린 ‘황혼의 화가’ 윤중식 10주기 추모전 ‘회향’

2022.05.08 16:03

윤중식(1913~2012)은 생전 일몰 직전 새들의 동작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어둡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 관념, 그 작고 따스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는 몸짓에서 황혼녘 인생의 현신(顯身)”을 확인했다. “황혼이 꺼지기 전 새로운 삶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희망과 몸부림”도 읽었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자세로 황혼녘과 새를 그렸다. ‘석영(夕映)의 화가’, ‘황혼의 화가’로 불렸다.

윤중식은 황혼녘 풍경을 곧잘 그려 ‘석영(夕映)의 화가’, ‘황혼의 화가’로 불렸다. 굵은 윤곽선과 두터운 채색에서 유화의 힘과 함께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생태 가치도 느낄 수 있다. 그림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무제’(연도미상), ‘무제’(연도미상, ‘무제’(1984), ‘무제’(1983).  김종목 기자

윤중식은 황혼녘 풍경을 곧잘 그려 ‘석영(夕映)의 화가’, ‘황혼의 화가’로 불렸다. 굵은 윤곽선과 두터운 채색에서 유화의 힘과 함께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생태 가치도 느낄 수 있다. 그림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무제’(연도미상), ‘무제’(연도미상, ‘무제’(1984), ‘무제’(1983). 김종목 기자

윤중식은 어린 시절 고향인 평양 집에서 비둘기집을 지어 직접 새들을 길렀다. 실향민이 된 이후 비둘기를 고향과 평화를 상징하는 소재로 삼아 자주 등장시켰다. 강·먼 산·뭉게구름·새·고깃배 같은 자연과 동물, 인공물은 윤중식이 평양 대동강변에서 곧잘 스케치하던 것들이기도 하다. 훗날 “고요하고 맑은 강과 섬”을 강렬한 톤의 주홍으로 물들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는 일출과 일몰의 색이 자연에서 가장 강렬한 색이라고 봤다. “그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체”도 함께 그렸다. 작품들은 “자연과 삶에 대한 찬미를 예술로 승화했다”(미술관)는 평가를 받았다.

윤중식 ‘석양’(2014).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윤중식 ‘석양’(2014).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의 윤중식 타계 10주기 추모 기획전 ‘회향(懷鄕)’엔 ‘자연 예찬’, ‘서정’, ‘향수’를 담은 작품들이 여럿 나왔다. 이 작품들은 지금 잊힌 것들, 죽어가는 것들, 살려내야 할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 소멸’과 ‘메가 시티’ 운운하는 세상에선 ‘희망’을 읽어낼 황혼녘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든다. 윤중식은 새와 사람도 함께 그리곤 했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 같은 생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작가로 볼 수도 있다.

윤중식 ‘고깃배’(1962, 왼쪽)와 ‘아침’(연도미상). 김종목 기자

윤중식 ‘고깃배’(1962, 왼쪽)와 ‘아침’(연도미상). 김종목 기자

회화(繪畵)란 말은 ‘색깔을 칠한다’(회)와 ‘윤곽을 그린다’(화)는 뜻을 포함한다. 윤중식의 굵은 윤곽선과 두터운 채색에서 “야수파 화풍에 인상주의적 붓질”도 확인한다. 미술관은 “(동경 제국 미술학교에서) 마티스의 제자인 나카가와 키겐에게 배웠던 그는 야수파, 표현주의, 자연주의 등에 심취했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우리나라의 향토적 서정미와 색채미가 충만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노랑, 주홍색이 주조를 이루는 석양빛 색채미와 도식화된 단순화, 안정된 수평 구도 등은 작품을 일관하는 양식적 특징”이라고도 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짐작하기 힘든, 중첩된 유화의 질감은 미술관에 가야 확인이 가능하다.

윤중식의 새 그림 연작(왼쪽 벽)과 ‘가을’(1974). 김종목 기자

윤중식의 새 그림 연작(왼쪽 벽)과 ‘가을’(1974). 김종목 기자

윤중식은 ‘천생 화가’, ‘평생 화가’였다. 2012년 상수(上壽, 100세)를 기념하는 전시도 이 미술관에서 열었다. 현역 작가로는 최고령 전시였다. 1963년부터 살았던 성북동에서 죽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2012년 죽기 몇달 전 마지막으로 그린 게 아내 초상이다. 이 그림을 전시장 한켠 윤중식의 작품과 유품으로 재현한 작업실 벽에 걸었다. 윤중식이 ‘사랑하는 빠렛트 2011년 8(월), 2일 현재, 98세 사용중’이라고 적은 팔레트도 놓았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조용필의 14집 앨범까지, 윤중식이 작업 도중 들었을 가요와 클래식 카세트 테이프도 전시했다.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은 전시장 내에 윤중식의 실제 작품과 유품으로 그의 작업실을 재현했다. 맨 왼쪽 그림이 2012년 사망 몇달 전 부인 초상(무제, 2012)을 그린 것이다. 김종목 기자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은 전시장 내에 윤중식의 실제 작품과 유품으로 그의 작업실을 재현했다. 맨 왼쪽 그림이 2012년 사망 몇달 전 부인 초상(무제, 2012)을 그린 것이다. 김종목 기자

‘사랑하는 빠렛트’로 시작하는 메모를 적은 윤중식의 팔레트와 그가 즐겨들었을 음악 카세트 테이프. 김종목 기자

‘사랑하는 빠렛트’로 시작하는 메모를 적은 윤중식의 팔레트와 그가 즐겨들었을 음악 카세트 테이프. 김종목 기자

유족은 지난 3월 유화 71점을 포함해 드로잉, 자료 등 500점을 미술관에 무상 기증했다. 미술관은 “근현대 주요 서양화가의 작품과 자료 대부분이 지역의 공공미술관으로 환원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10주기 전시엔 ‘풍경’(1953), ‘고깃배’(1962), ‘가을’(1974), ‘성북동 풍경’(1980), ‘석양’(2004), ‘무제’(2012) 등 1950년대 초부터 2012년 작고 전까지 그린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삽화 등을 140여 점을 내놓았다. 한국전쟁 피란길에 그린 드로잉 시리즈 28점도 포함했다. 전시는 7월3일까지. 무료.

100세 때인 2012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윤중식.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100세 때인 2012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윤중식.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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