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운지]‘안목의존’문화재감정의 한계

2001.06.01 19:37

지난 1991년.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동양화가 천경자의 ‘미인도’를 두고 괴상한 논란이 벌어졌다.

천경자씨는 “절대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화랑협회가 실시한 감정에서는 감정위원 7명 모두가 ‘진품’이라고 결론내렸다. 화가 본인이 ‘가짜’라고 하는 데 이른바 전문가들이 ‘진짜’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비단 이뿐이랴. 1900년쯤 중국령 중앙아시아에서는 미지의 옛 언어로 된 고문서가 쏟아졌다. 서양인들은 이 고문서들을 자국으로 약탈해가는데 혈안이 됐고 영국의 고문서 전문가들은 옛 문자들을 해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고문서 일부는 이슬람 아훈이라는 협잡꾼이 팔아먹기 위해 멋대로 옛 문자를 써서 만들어낸 가짜문서였으니 해독이 될 리 없었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문서인 줄 알고 신주단지모시듯 하면서 해독하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우습다.

이것들은 문화재나 그림의 진·위품 여부를 가린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경찰청 특수수사대에 의해 압수된 금동불상 3점에 대한 진위여부가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산경찰서가 압수한 불상에 대해 감정을 의뢰받은 문화재청은 문명대 동국대 교수·곽동석 공주박물관장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적인 가치가 없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반면 이 사건을 재수사한 서울경찰청 특수수사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감정을 재의뢰했고 강우방 이화여대교수 등은 ‘진품’이라고 정반대로 감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정반대의 입장에 선 문명대·강우방교수가 지난 94년 부소산에서 발견된 반가사유상의 진위여부가 논쟁거리였을 때는 한편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황수영 전동국대 총장·정영호 교원대 교수 등은 ‘진품’이라고 주장했으나 문명대·강우방교수는 ‘가짜’라고 감정했다. 그만큼 진위여부를 가린다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학자들간, 경찰청·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 간에 갈등을 심어놓았다. 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인 생명’이 걸린 이 논란에서 결코 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어차피 문화재의 감정은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이른바 안목감정이니 누가 옳다고 할 수 없다.

이번 일로 ‘감정위원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졌다는 것도 문제다. 문화재청이 경찰청측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가뜩이나 수사과정에서의 문화재 감정을 꺼리는 풍토인데 이제 이름이 공개되는 마당에 어느 누가 선뜻 나서 감정에 임하겠느냐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박물관측과 협의, 문제의 불상에 대한 재감정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그 또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는데 고민이 있다. 해당 문화재를 만든 조상이 와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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