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운지]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의 밥값하기

2002.04.01 19:23

“까짓것 받읍시다”

서정배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60)의 결론은 간단명료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그 골치 아프다는 국정감사를 자청한 것이다. 예년처럼 민간단체임을 강조했으면 빠져나갈 수도 있었으나 손을 내저었다.

대신 국정감사장을 ‘재단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하는’ 기회로 삼았다. 남산골 한옥마을, 한국의 집 등을 운영하고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사업 등을 벌이는 문화재보호재단은 현재 민법에 근거한 재단법인이다. 대외적으로 전통문화를 전수·보존하고 문화재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공익기구인데도 민법에 의한 비영리재단이다 보니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게 그의 불만이었다.

서이사장의 내심으로는 재단을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한 비영리 ‘특수법인’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 국고지원의 근거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국감을 자청, 서슬퍼런 국회의원들 앞에서 ‘특수법인화’ 홍보를 펼친 것이다. 그는 지금도 법개정을 위해 국회와 관련부처를 돌며 백방으로 뛰고 있다.

목 디스크에 걸려 운신하기도 어려운데 그의 발품팔이는 쉼이 없다.

재단이 맡고 있는 문화재 발굴현장을 둘러보며 발굴 관계자를 격려하고 한옥마을·한국의 집을 수시로 찾아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체크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일본관광객 유치를 위해 유치단을 구성했을 때 이사장은 한국의집 공연단을 참여시켰다. 그러면서 공연단에는 “일본 관광객을 ‘한국의집’ ‘한옥마을’로 유치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일본 5개 도시를 돈 공연은 대성공. 요즘 한옥마을·한국의집에는 현지에서 공연을 본 일본인들의 예약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서이사장은 ‘민속공연·전통혼례’ 프로그램을 패키지 상품으로 묶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 하나 관리인력 부족 때문에 공휴일·일요일이면 문을 닫았던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공연장 및 전시장을 상시개방했다. 사람들이 찾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해도 시원치 않은데 문을 닫는다는 게 웬말이냐는 것이었다.

1966년 9급 공무원으로 출발, 99년 초대 문화재청장(1급)에 오른 간단치 않은 이력. 그는 지역 주민들과 표를 의식한 지역 정치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딛고 풍납토성·경주경마장 부지를 끝내 보존시켰다. 당시 주민들로부터 화형식까지 당한 서이사장은 호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니면서 문화재 보존의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지난 4월 청장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사장으로 부임한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남들은 “노후를 준비하면서 좀 쉬라”고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럭저럭 임기(3년)만 채울 수도 있었으나 그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마 전 그를 만나 농을 걸었다.

“왜 그렇게 직원들을 괴롭히세요”. 서이사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밥값은 해야죠”. 그래. 밥값이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직자들에게는 두고두고 교훈이 될 말인 것 같다.

〈이기환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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