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제3권 : (7) 초과이윤의 지대로의 전화

2013.03.01 18:59 입력 2013.03.01 23:44 수정
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토지의 지대는 신기루, 자본 생산력이 한계에 달하면 거품처럼 사라져

■ 자본주의적 지대, 또 하나의 신기루

부동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극히 뜨거운 의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자 낳는 자본과 함께 재테크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어서 사실상 대박의 꿈과 관련된 또 하나의 신기루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초기부터 지대를 통한 대박의 꿈을 현실로 보여주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은 증언도 나와 있습니다. 1857년 런던의 대건축투기가 에드워드 캡스가 의회 청문회에서 진술한 것입니다.

▲ “나는 출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건실한 사업만을 고수하면서 그런 출세를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그는 반드시 … 투기로 건축을 해야 하고
그것도 대규모로 해야만 한다.” (3권, 1034쪽)

그래서일까요? 2010년 말 기준 한국 10대 재벌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무려 61조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강남 불패’의 신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신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부동산 대박에는 한계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타인의 노동에 기댄 자본주의에서는 잉여가치의 생산의 한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대박의 종점은 언제나 허망한 신기루일 뿐입니다.

신기루의 발원지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가 이자와 같은 성질의 것으로 혼동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지대는 토지를 임대하여 정기적으로 받는 화폐수입인데 이자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화폐를 대부한 대가로 정기적으로 받는 화폐수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지가격은 이자율과 지대를 통해서 환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이자율이 연 10%이고 매년 받는 지대총액이 10만원이면 토지가격은 100만원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10=100×0.1).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이자율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자율의 원천인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지대총액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자율의 하락 때문에 토지가격은 계속 상승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만일 지대총액이 10만원인데 이자율이 5%로 하락하면 대부해야 할 화폐총액이 200만원으로 늘어나야 하니까요(10=200×0.05).

▲ “토지가격은 지대의 운동이나 … 토지생산물 가격의
운동과는 상관없이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3권, 851쪽)

게다가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지대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토지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두 요소가 모두 토지가격을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가히 강남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질 만하지 않습니까?

■ 차액지대

자본주의에서 지대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들 두 지대는 모두 토지라는 생산수단의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공중에 떠서 노동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토지는 모든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생산요소입니다. 그런데 토지는 단 하나밖에 없는 지구의 표면이라는 특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한번 소유하면 다른 사람이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특징을 갖습니다. 토지의 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토지를 이용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더 이상 그 토지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지대는 이런 특성으로부터 발생하는데 토지의 소유로부터 발생하는 지대를 절대지대라고 부르고 토지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지대를 차액지대라고 부릅니다. 먼저 차액지대부터 보도록 합시다.

모든 토지는 자연적 성격이 다르고 이런 성격의 차이 때문에 각 토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의 양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한 면적의 토지에 동일한 자본을 투자했다 하더라도 목이 좋은 상점과 목이 나쁜 상점의 매상은 차이가 나며 입지가 좋은 공장과 나쁜 공장의 생산량에는 차이가 납니다. 이 차이가 차액지대를 만들어냅니다.

▲ “지대란 … 항상 동일한 양의
자본과 노동을 고용하여 얻어지는
두 생산물 간의 차이다.” (3권, 883쪽)

동일한 자본이 투자되었는데 생산량이 다르다면 생산물의 단위당 생산비용은 다를 것입니다. 똑같은 100원을 투자해서 10개를 생산한 경우와 20개를 생산한 경우 생산물 1개당 소요된 비용은 당연히 다를 테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산비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산물은 시장에서 동일한 가격에 판매됩니다. 시장에서 같은 상품이 서로 다른 가격으로 판매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결과 각 토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차이가 납니다. 생산량이 많은 토지에서는 생산량이 적은 토지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수익의 차이를 초과이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초과이윤이 과연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그 수익은 각 토지가 갖는 자연적 성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토지는 독점적으로 소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 수익의 차이를 가져갑니다. 그것이 차액지대입니다.

▲ “(초과이윤의 요인은) … 일차적으로 자연력이다.
… 노동생산력을 높여주는 이런 자연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자본이 … 아니다.
… 이런 자연력의 소유는 그 소유주의 수중에서
하나의 독점력을 이루는데 … 이런 상황에서
초과이윤은 지대로 전화한다.” (3권, 876·878·879쪽)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초과이윤이 토지 그 자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초과이윤은 생산된 생산물이 시장에서 동일한 가격에 판매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초과이윤을 챙겨가는 토지 소유라는 명목상의 권리는 생산물의 생산과정은 물론 그것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의 형성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초과이윤은 생산과 시장가격이 모두 결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대의 근거가 되는 토지 소유는 초과이윤 그 자체의 발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대를 이자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자는 대부를 통해 잉여가치의 생산을 도와주고 생산된 잉여가치 가운데 일부를 대가로 받는 것입니다. 잉여가치의 생산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대는 잉여가치의 생산과 전혀 무관한 토지 소유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지대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 절대지대와 지대의 운명

지대의 원천을 알아보기 전에 차액지대에 추가해야 할 얘기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차액지대는 각 토지의 생산량의 격차로부터 발생하는데 이 격차의 기준이 되는 토지가 있습니다. 가장 생산량이 적은 토지 말입니다. 이 토지에 대해서는 지대가 지불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대는 애초에 자본이 토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사 초과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토지의 소유권은 토지의 사용 자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산량이 적은 토지라도 일단 자본에 의해 생산에 사용되기만 하면 무조건 지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처럼 토지 소유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지대를 절대지대라고 합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한 지하 단칸방이나 아무런 쓸모없는 황무지라도 지대를 지불하지 않으면 결코 그 토지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지를 통해 생산된 모든 생산물의 가격은 원래의 가치에 지대를 추가해야만 합니다.

▲ “토지 소유는 이런 가격 상승의
창조적 원인이 된다. 토지 소유 그 자체가
지대를 창출하는 것이다.” (3권, 1010쪽)

그렇다면 이 지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자본주의에서 지대는 일정 화폐액으로 표시되는 가치이며 그것은 노동자가 가져가지 않는 것이므로 잉여가치입니다. 그런데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몫이며 따라서 지대의 원천도 결국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얻은 잉여가치의 일부입니다.

▲ “지대는 …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서,
노동자로부터 그것을 수탈해내는
토지 소유주들에게 귀속되는 것일 뿐이다.” (3권, 1031쪽)

그런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잉여가치의 생산은 무한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동시간이기 때문에 이미 자연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토대인 축적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지대는 증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토지의 사용이 늘어날수록 각 토지의 생산량의 차이에 기초한 차액지대가 늘어날 것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토지가 사용될 때마다 절대지대도 함께 증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대의 증가와 자본축적은 서로 모순된 관계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지대는 자본주의가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을 동안에는 증가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정체되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의 생산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곳에서 지대의 신기루도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으로 알려진 일본과 2008년 공황 이후 미국의 주택들에서 이런 거품이 어떻게 홀연히 사라지는지를 이미 보았고 사실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는 ‘하우스 푸어’가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한편 지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토지 소유 그 자체가 직접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토지 사용이 지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차액지대와 절대지대는 모두 토지에서 생산된 생산물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하나는 가격의 차액으로, 다른 하나는 가격의 절대적 증가로 이루어져 있지요. 즉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인 교환가치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변혁되고 모든 사람의 소득이 자신의 노동에만 의존하는 생산관계가 성립하고 나면 지대는 토대를 잃고 소멸하는 게 운명입니다. 그것은 토지 소유라는 허공의 신기루가 자본주의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 “그것은 … 생산물의 교환가치에 기초한 것이지
토지나 그 비옥도의 차이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만일 자본주의적 사회형태가 지양된다면 …
토지생산물은 거기에 포함된 현실적 노동시간보다 …
부풀려진 가치로 판매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토지 소유주 계급의 토대는 붕괴될 것이다.” (3권, 8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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