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산업에서 ‘텐트폴(tentpole)’은 여름과 겨울 성수기를 겨냥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한 블록버스터를 뜻합니다. 텐트폴은 텐트의 가운데 중심축이 되는 막대기형 지지대를 의미하는데, 기획된 블록버스터들이 영화의 중심축이 되어 성수기 시장을 주도합니다. 그런데 이 텐트폴은 혼자 잘난 체하며 높이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지대는 텐트의 중심축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텐트의 키를 높이는 ‘텐트폴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이는 전파 등이 넘쳐흘러서 인근 지역까지 퍼지는 스필오버 이펙트(spillover effect)와 비슷합니다.
요즘 모 방송사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시청률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제2의 ‘귀가시계’라고 불리는 이 드라마의 유혹에 폭 빠진 주부시청자 군단 덕에 해당 방송사는 물론 타 방송사도 비슷한 시간대의 프로그램까지 혜택을 본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아내의 유혹> 직후 방송되는 8시 뉴스가 9시 뉴스를 제치는 현상도 눈에 띕니다. 또 뉴스를 외면하는 시사기피형 주부들은 타 방송사로 이동해 전체가구시청률(HUT)이 증가하고 비슷한 시간대 타 방송사의 시청률까지 상승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떡고물 효과라고 불리는 ‘국물효과(trickle down) 효과‘와 유사합니다.
비슷한 현상은 9시 뉴스 전에 방송하는 모 방송사 일일연속극에서도 일어납니다. 저녁 8시대 일일연속극을 보려고 초저녁 6시부터 채널을 고정한 덕에 9시 뉴스까지 텐트폴 효과가 나타납니다. 똑똑한 한 명이 열 자식 안 부러운 걸출한 효자 프로그램 덕에 높이 올라간 텐트에는 넓어진 공간이 제공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덩달아 누리는 행운아들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여름과 성탄 시즌에 활황이듯 방송 프로그램도 시청률 랠리를 할 수 있는 시즌이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밤이 긴 동절기에 가구시청률이 3% 정도 상승한다고 합니다. 신규 프로그램은 그래서 가을이나 겨울에 시작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춘시트콤 경우도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시청률이 상승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텐트폴 효과가 겨울과 결합하면 텐트 속 실내 온도를 높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자아냅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이 공식이 적확하게 들어맞은 경우입니다. 겨울방학에 10대들이 선호하는 ‘학원물’을 시도했는데, 이미 일본과 대만에서 리메이크된 점에서 조금 진부해 보이는 기획이었지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애초 목표 시청자층이 아닌 30, 40대 주부들도 딸과 함께 이 만화 같은 꽃미남 이야기를 봅니다. 30대들은 만화로 이미 <꽃남>을 본 향수가 있습니다. 40대들은 자녀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다가 풋풋한 ‘신데렐라 판타지’에 고단한 일상을 잊고 같이 빠져듭니다. <꽃남>은 맞편성된 통속적 코드의 시대극 ‘에덴의 동쪽’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필자도 2005년 가을 방송을 시작한 청춘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에서 F4 콘셉트로 이민기·김기범·김희철·정의철 등을 캐스팅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방송 한달여 만에 돌연 김기범이 달포가량 미국에 다녀오는 공백기가 있어서 중도에 방향을 수정한 아쉬운 기억이 있습니다.
진정한 텐트폴 효과는 무엇일까요? <꽃남>과 <에덴의 동쪽>은 원작 만화와 동명의 소설이 존재합니다. 진정한 텐트폴 효과란, 독창성과 스타일이 뚜렷한 작품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간 뒤 대박유행을 만들어내는 데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