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폴 효과, 떡고물 효과’

2009.02.01 17:02
이흥우 MBC 예능국 PD

연예산업에서 ‘텐트폴(tentpole)’은 여름과 겨울 성수기를 겨냥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한 블록버스터를 뜻합니다. 텐트폴은 텐트의 가운데 중심축이 되는 막대기형 지지대를 의미하는데, 기획된 블록버스터들이 영화의 중심축이 되어 성수기 시장을 주도합니다. 그런데 이 텐트폴은 혼자 잘난 체하며 높이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지대는 텐트의 중심축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텐트의 키를 높이는 ‘텐트폴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이는 전파 등이 넘쳐흘러서 인근 지역까지 퍼지는 스필오버 이펙트(spillover effect)와 비슷합니다.

[온에어 이야기]‘텐트폴 효과, 떡고물 효과’

요즘 모 방송사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시청률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제2의 ‘귀가시계’라고 불리는 이 드라마의 유혹에 폭 빠진 주부시청자 군단 덕에 해당 방송사는 물론 타 방송사도 비슷한 시간대의 프로그램까지 혜택을 본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아내의 유혹> 직후 방송되는 8시 뉴스가 9시 뉴스를 제치는 현상도 눈에 띕니다. 또 뉴스를 외면하는 시사기피형 주부들은 타 방송사로 이동해 전체가구시청률(HUT)이 증가하고 비슷한 시간대 타 방송사의 시청률까지 상승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떡고물 효과라고 불리는 ‘국물효과(trickle down) 효과‘와 유사합니다.

비슷한 현상은 9시 뉴스 전에 방송하는 모 방송사 일일연속극에서도 일어납니다. 저녁 8시대 일일연속극을 보려고 초저녁 6시부터 채널을 고정한 덕에 9시 뉴스까지 텐트폴 효과가 나타납니다. 똑똑한 한 명이 열 자식 안 부러운 걸출한 효자 프로그램 덕에 높이 올라간 텐트에는 넓어진 공간이 제공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덩달아 누리는 행운아들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여름과 성탄 시즌에 활황이듯 방송 프로그램도 시청률 랠리를 할 수 있는 시즌이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밤이 긴 동절기에 가구시청률이 3% 정도 상승한다고 합니다. 신규 프로그램은 그래서 가을이나 겨울에 시작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춘시트콤 경우도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시청률이 상승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텐트폴 효과가 겨울과 결합하면 텐트 속 실내 온도를 높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자아냅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이 공식이 적확하게 들어맞은 경우입니다. 겨울방학에 10대들이 선호하는 ‘학원물’을 시도했는데, 이미 일본과 대만에서 리메이크된 점에서 조금 진부해 보이는 기획이었지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애초 목표 시청자층이 아닌 30, 40대 주부들도 딸과 함께 이 만화 같은 꽃미남 이야기를 봅니다. 30대들은 만화로 이미 <꽃남>을 본 향수가 있습니다. 40대들은 자녀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다가 풋풋한 ‘신데렐라 판타지’에 고단한 일상을 잊고 같이 빠져듭니다. <꽃남>은 맞편성된 통속적 코드의 시대극 ‘에덴의 동쪽’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필자도 2005년 가을 방송을 시작한 청춘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에서 F4 콘셉트로 이민기·김기범·김희철·정의철 등을 캐스팅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방송 한달여 만에 돌연 김기범이 달포가량 미국에 다녀오는 공백기가 있어서 중도에 방향을 수정한 아쉬운 기억이 있습니다.

진정한 텐트폴 효과는 무엇일까요? <꽃남>과 <에덴의 동쪽>은 원작 만화와 동명의 소설이 존재합니다. 진정한 텐트폴 효과란, 독창성과 스타일이 뚜렷한 작품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간 뒤 대박유행을 만들어내는 데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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