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람보르기니의 야심작 ‘미우라’

2011.11.21 13:49 입력 2011.11.21 13:52 수정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1966~1972년)는 람보르기니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차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업체 람보르기니가 ‘페라리(Ferrari) 타도’를 목적으로 제작한 차량이다. 미드십 엔진(midship engine·엔진이 뒷 좌석 부분에 위치하는 형태) 방식이며 뛰어난 성능과 고품격 디자인으로 스포츠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먼저 이 차의 탄생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1916~1993)는 2차대전 당시 정비공으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온 페루치오는 트랙터를 생산하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트랙토리체’라는 회사를 만든다. 람보르기니의 모체가 된 기업이다. 트랙터 사업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쥘 수 있었다.

엔쵸 페라리에 문전박대…수퍼카 제작 결심 =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페루치오는 60년대 초 인기 스포츠카였던 페라리의 250 GT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페라리는 당시 F1 경주대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클러치 결함’이라는 고질병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 1966년~1972년 생산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 1966년~1972년 생산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높은 기술력으로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페루치오는 엔지니어로서 자문을 전달해주기 위해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쵸 페라리를 찾았다. 하지만 호의를 가지고 방문한 페루치오에게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와 수모였다. 레이스 대회에서 입지를 굳혀가며 자신감에 넘쳐있던 엔쵸 페라리는 페루치오의 기술 자문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모욕을 당한 페루치오는 ‘최고의 수퍼카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1963년 현재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볼로냐 인근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장을 설립했다. 동시에 최정예 기술자들을 끌어모았으며, 페루치오가 이들에게 주입한 절대 원칙은 ‘페라리와의 경쟁에서 월등한 자동차’였다. 토리노 모터쇼에서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350GT를 내놓은 람보르기는 성능과 디자인면에서 페라리에 앞서 나갔다. 후속 모델인 400GT까지 잇따라 성공시키며 ‘트랙터 업체가 수퍼카를 제작하려는 것은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던 주위의 시선을 한낱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

미우라 P400 전측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 전측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람보르기니 미우라 -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의 시발점 = 자신감을 얻은 람보르기니는 성능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페라리를 앞서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바로 ‘미우라’가 그것이다. 미우라는 페루치오가 직접 명명한 것으로, 투우(싸움소) 중 최고 종자라는 뜻이다.

‘미우라’라는 정식 명칭이 붙기 전의 차 이름은 ‘P400’이었다. P는 ‘Posteriore’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뒷쪽’을 뜻한다. 엔진을 뒤에 놨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애초 ‘P400’은 페루치오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페루치오는 스포츠카보다는 GT(Grand Touring·그랜드 투어링)카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했고, 페루치오 역시 람보르기니의 이미지와 광고 효과를 고려해 프로젝트 추진을 승낙하게 된다.

미우라 P400 측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 측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P400(프로토타입) 제작의 선봉에는 람보르기니의 쟝 파울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와 파울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 밥 월레이스(Bob Wallace) 등 엔지니어들이 나섰다. 이들은 레이싱 자동차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공공도로용 스포츠카를 원했다. 람보르기니 마니아들을 위해 트랙에서도 경쟁 차종을 이길 수 있고 공공도로에서도 몰고 다닐 수 있는 자동차를 상상한 것이다.

P400(프로토타입) 섀시.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출처: (cc) Wikipedia at Miuragirl>

P400(프로토타입) 섀시.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출처: (cc) Wikipedia at Miuragirl>

엔진이 가로로 중앙에 배치된 P400의 경사 진 차대(섀시)는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호평 속에 이듬해 P400이라는 이름 대신 프로토타입에 바디를 완성시킨 ‘미우라 P400’이 등장했다. 장착된 미드십 엔진으로 기동성을 높이고 또한 공공도로 주행도 가능한 스포츠카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람보르기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투우 뱃지도 이때부터 본격 사용하게 됐다.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된 미우라 P400은 4.0ℓ V12 엔진에 최고속도 280㎞/h, 최대출력 350마력의 고성능을 자랑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소요되는 시간(제로백)은 6.2초를 찍었다.

미우라 로드스터. 1968년에 모터쇼를 위해 특별히 한 대만 제작되었다.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로드스터. 1968년에 모터쇼를 위해 특별히 한 대만 제작되었다.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페라리도 미드십 엔진 모방 =특히 미우라 P400은 지금까지 수많은 역작을 만들어낸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와 베르토네(Bertone)가 당시 디자인한 것으로 강하면서도 역동적인 외관으로 인상적이었다. 90도에 가깝게 누운 헤드램프와 리어펜더 앞의 공기 흡입구 등이 특징이다. 또 알루미늄 차체와 5단 수동식 변속기, 더블 위시본 식 독립현가장치, 디스크 브레이크 등 정통 스포츠카의 사양을 고루 갖췄다. 특히 페라리 등 주요 메이커들은 이후 미드십 엔진 방식을 잇따라 채택하며 미우라 P400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이후 1968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된 ‘미우라 P400S’와 ‘미우라 P400SV’ 등에 이어 440마력의 힘을 자랑하는 ‘미우라 P400 조타’와 P400 조타의 후속모델을 만들어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에 의해 제작된 ‘미우라 SV/J’, 또 단 한 대만 제작된 ‘미우라 로드스터’까지 후속모델이 잇따라 공개되는 등 판매 부진으로 생산이 중단된 1972년까지 미우라 모델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엔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생산이 중단된 지 33년만인 2006년 ‘람보르기니 미우라 컨셉트카’가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미우라 P400의 후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의 후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 엔진 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 엔진 내부.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의 도로 주행 모습.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의 도로 주행 모습.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 실내 모습.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미우라 P400 실내 모습. <사진 제공: 람보르기니서울>

2006년 미우라 컨셉트카. <출처: (cc) Wikipedia at smartvital>

2006년 미우라 컨셉트카. <출처: (cc) Wikipedia at smartvital>
미우라 P400 제원

엔진 형식 : 4.0ℓ V12 / 배기량 : 3939㏄ / 차체형식 : 2도어 쿠페 스포츠카
구동방식 : 미드십 엔진 / 최고속도 : 280㎞/h / 총 무게 : 1292㎏
최대출력 : 350hp·7000rpm / 최대토크 : 37.7㎏·m·5100rpm / 전장 X 폭 X 높이 : 4260㎜ X 1760㎜ X 1050㎜
생산년도 : 1966~1969년
총 생산대수 : 27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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