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이 차 어때?

기아 EV9이 만든 패밀리카의 새 기준 다섯 가지

2024.03.26 04:31 입력 2024.03.26 09:20 수정

전기차는 썩 훌륭한 패밀리카 후보다. 진동과 소음이 없는 쾌적한 여행을 보장해 준다. 하지만 아직은 전기차를 패밀리카 용도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다.

EV9 전측면. 공기 저항을 줄인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가졌다. 기아 제공

EV9 전측면. 공기 저항을 줄인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가졌다. 기아 제공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주행거리가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차량보다 짧다. 혹여 충전시설이 없는 오지에서 배터리가 방전돼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함이 구매를 꺼리게 만든다.

둘째는 가족들이 편안히 여행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순수 전기차 기반 패밀리밴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드물다.

미니밴 또는 준대형 SUV 대부분이 진동·소음이 큰 디젤 모델이다. 가솔린 모델도 있지만 대체로 배기량이 3ℓ 이상이다 보니 연료비가 만만치 않다. 하이브리드 모델도 고속에서는 엔진이 가동돼 소음이 거슬린다.

기아 준대형 SUV EV9은 이 같은 ‘장벽’을 부순 첫 국산 준대형 전기 SUV다.

EV9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로 만든 기아의 두 번째 전기차 모델이다. 전장이 5m가 넘고, 앞뒤 바퀴 간 거리(바퀴축 간 거리)도 3.1m에 이를 정도로 넓직하다.

전기차로는 국내 최초로 3열 시트를 장착했다. 패밀리카로서의 ‘자격’을 획득한 셈이다.

EV9 운전석과 동승석. 기어 노브는 운전대 칼럼에 장착되는 방식을 적용했다. 기아 제공

EV9 운전석과 동승석. 기어 노브는 운전대 칼럼에 장착되는 방식을 적용했다. 기아 제공

큰 덩치 덕분에 99.8kWh에 이르는 대용량 배터리 탑재가 가능했다. 기아 전기차 라인업 중 가장 긴 501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19인치 휠 이륜구동 모델)를 갖고 있다. 부하가 좀 더 걸리는 21인치 휠 4바퀴 굴림도 주행거리가 454㎞에 이른다.

전기차는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에 주행거리가 떨어진다. 보닛 아래 붙어있는 배출가스 표지판에 따르면 EV9은 영하 6.7도 저온에서도 고속도로에서 378㎞까지 주행할 수 있다.

실제 주행도 공인받은 데이터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75%까지 충전된 상태의 EV9(21인치 휠 사륜구동 )으로 고속도로(약 100㎞ 주행)와 도심을 200㎞가량 달리니 배터리 충전상태가 35%까지 떨어졌다.

헤드라이트를 켠 야간 운전도 있었고, 날씨가 쌀쌀해 히터와 운전대·시트 열선을 수시로 작동시킨 상태로 달렸다. 여기에 급가속과 고속주행을 보탰음에도 충전량의 40%를 소비해 200㎞가량을 달렸으니, 단순계산을 하면 완충 시 450㎞ 안팎의 주행이 가능하다.

전기차를 시승할 때마다 ‘소리 없는 질주’에 놀란다. EV9도 다르지 않다. 2.6t이 가까운 육중한 차량이지만 노멀 모드로만 달려도 웬만한 스포츠 세단만큼 가속이 날래다.

EV9 시트 배치. 2열 시트는 뒤로 돌릴 수 있는 스위블 시트를 선택할 수 있다. 기아 제공

EV9 시트 배치. 2열 시트는 뒤로 돌릴 수 있는 스위블 시트를 선택할 수 있다. 기아 제공

사륜구동은 앞 차축과 뒤 차축에 각각 전기모터가 달리는데, 합산 최고출력 283kW(약 385마력), 최대토크는 700Nm(약 71.4kgf·m)나 된다. 국산 SUV 중 출력이 가장 크다.

21인치 휠에 끼워지는 타이어의 트레드 사이즈는 285㎜로, 역시 국산 SUV 타이어 가운데 폭이 가장 넓다. 이런 광폭 타이어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강력한 가속이 이뤄진다. 초반 가속뿐만 아니라 고속주행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시 놀란다. 이쯤 되면 굉음 수준의 엔진음이 귀를 때려야 맞다. 내연기관 차량이라면. 아니, 고속주행 등 부하가 많이 걸릴 때 엔진과 전기모터가 동시에 돌아가는 하이브리드차량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EV9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소음이 줄어들면 승객들의 쾌적함은 반비례해 높아진다. 귀를 자극하던 엔진음과 배기음이 사라지니 카 오디오가 만드는 바흐, 베토벤이 더욱더 명징하다.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의 도란도란한 속삭임도 귓전으로 부리나케 달려온다.

자동차가 달릴 때 들어오는 풍절음(바람 가르는 소리), 타이어가 도로의 단차나 패인 홈을 지날 때 발생하는 소음도 절제돼 있다. 혼자서 운전하면 딴생각이 날 정도이니, 적어도 소음에 관한 한 패밀리 SUV로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차감도 부족하지 않다. 서스펜션은 딱딱하지도 않지만 물컹거리지도 않는다. 포장이 나쁜 도로에서도 엉덩이가 썩 불편하지 않다.

EV9 후측면.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근육질의 몸매를 지녔다. 기아 제공

EV9 후측면.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근육질의 몸매를 지녔다. 기아 제공

차량 3열은 시트가 다소 성기게 만들어져 착좌감이나 승차감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EV9은 기존 댐퍼(쇼크 업소버)보다 길고 두꺼운 제품을 적용해 진동 및 충격 흡수력을 높였다고 한다.

EV9의 3열 승차감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 아닐까 싶다. 트렁크에 짐을 많이 실어도 댐핑 압력을 조절해 차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이점도 있다.

덩치가 큰 차량이지만 전체적으로 운전하기가 쉬운 편이다. 쉽게 회전하고, 브레이크도 까탈스럽지 않다. 내비게이션 정보에 따라 정해진 속도로 앞차를 따라가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 2(HDA2) 장치와 연결된 운전대에는 정전식 센서가 적용됐다.

이전 장치는 운전대를 잡고 있어도 ‘운전대를 잡으라’라는 안내가 계속 나와 살짝살짝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정전식 센서 타입은 손으로 잡고 있으면 불필요한 안내가 나오지 않는다.

어색한 기능도 한두 가지 있었다. 라디오, 지도 등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버튼 대신 ‘라디오’라고 표시된 대시보드 패널을 누르면 햅틱 반응과 함께 작동한다. 잘 눌러지지도 않고 터치감도 기대 이하였다.

이 차에는 클러스터·공조·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적용됐다. 하지만 공조 정보는 운전대에 걸려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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