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란·부동산 폭등·저축은행 사태 출발점은 모두 ‘규제 완화’

2014.03.03 21:47 입력 2014.03.04 09:53 수정

(4) 한국 사회 뒤흔든 잇단 경제사건

부산저축은행 비상대책위원장인 김옥주씨(53)의 시간은 2011년 2월17일에 멈춰 있다. 금융위원회가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린 날이다. 악착같이 모았던 2억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피해자 대부분이 60~70대 고령자였다. 목소리를 낼 사람은 김씨밖에 없었다. 김씨는 부산저축은행 농성을 주도했다. 3년이 흘렀다. 도와주겠다고 했던 정치권이나 분노한 여론에 눈치보던 금융권은 시간이 흐르고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자 외면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허리디스크와 고혈압, 검찰의 기소였다. 공무집행방해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 죄목만 8가지다.

민병두 의원(민주당)이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6개 저축은행이 무너지면서 치른 사회적 비용은 27조원에 육박한다. 피해자 수는 10만명이 넘었다.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였다.

2012년 5월 저축은행 파산으로 예금을 찾을 수 없게 된 한 시민이 저축은행 지점에 찾아가 직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2012년 5월 저축은행 파산으로 예금을 찾을 수 없게 된 한 시민이 저축은행 지점에 찾아가 직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사진

▲ ‘88클럽’ 규제 없애자 6년 뒤에 저축은행 연쇄 파산
말로만 감독 강화… 대형사고 터져도 책임자 없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규제 완화에 매달렸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섣부른 규제 완화는 몇 차례 대형 사고를 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에서 시작된 26개 저축은행 도미노 퇴출사건이다. 2005년 11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은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98건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했다. 그중 하나가 ‘88클럽’ 대출 완화였다. 88클럽은 ‘자기자본 비율 8% 이상, 고정 이하(연체 3개월) 여신 비율 8% 이하’인 저축은행이다. 저축은행은 한 법인에 최대 80억원까지만 대출을 해줄 수 있었다. 정부는 ‘88클럽’은 우량은행이라며 이런 규제를 없앴다. 당시 금융당국은 “영업활동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되 건전성 감독을 더욱 강화해 부작용을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이 조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에서 큰 수익을 남기려던 저축은행 업계가 집요한 로비를 벌인 결과였다.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저축은행들은 PF에 대규모 대출을 해줬다. 88클럽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저축은행들은 후순위채권을 마구잡이로 팔아치웠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은 꺼졌고, PF 신화는 신기루가 됐다. 후순위채권은 서민에게 폭탄이 돼 돌아왔다. “부작용을 막겠다”던 당국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규제 완화의 덫]카드대란·부동산 폭등·저축은행 사태 출발점은 모두 ‘규제 완화’

투자자 4만1000여명, 피해금액 1조7000억원을 남긴 동양증권 기업어음(CP) 사태도 규제 완화가 배경에 있다. 금감원은 2009년 5월 동양증권 계열사 기업어음 판매 문제를 발견했다. 금감원은 동양증권에 기업어음 보유 규모를 줄이고 투자자 보호조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뿐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친기업 정책과 규제 완화 흐름에 제대로 된 조치를 못했다. 금감원은 2012년 7월이 돼서야 금융위에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을 건의했다. 증권사가 일반투자자에게 투기 등급의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 투자를 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금융위는 2012년 11월 초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이번에는 규제개혁위원회가 미적거렸다. 2013년 3월 통과시키면서는 법 적용 유예기간을 당초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3개월 사이 2만2000명의 피해자가 더 생겼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5년 부동산 거품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사태 뒤에는 어김없이 규제 완화가 있었다. 신용카드 사태는 1999년 내수진작을 위해 신용카드에 대한 부가서비스 규제를 없애면서 시작됐다. 이어 규개위는 월 70만원이던 현금대출 한도를 없앴다. 길거리 모집을 반대하자는 금융당국의 제안도 규개위는 “카드 모집인 실직이 우려된다”며 막았다.

2005년 부동산 폭등은 1999년 1월 시행한 아파트 분양가 규제조치 해제가 출발점이다. 같은 해 3월에는 수도권 분양권 전매 제한 규제와 재당첨 금지 제한 기간 규제가 풀렸고, 1가구 2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면제됐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은 “정부는 일이 터지면 잠시 규제를 마련하는 듯하다가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규제 없애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정책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일벌백계하는 장치가 있어야 대형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