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유승민 “총수 일가 지분 기업, 계열사 일감 못 맡게”…“거래 자유 침해” 반론도

2017.02.22 18:23 입력 2017.02.22 21:56 수정

바른정당 유승민 ‘일감 몰아주기 금지’

일감 따기 위한 회사 설립 막고 친족 기업 ‘밀어주기’도 규제

그룹 계열사 간 내부거래하려면 총수일가 보유지분 팔아야

[주목! 이 공약]③유승민 “총수 일가 지분 기업, 계열사 일감 못 맡게”…“거래 자유 침해” 반론도

“이제는 ‘재벌만 쳐다보는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지난 13일 혁신성장 2호 공약을 제시하며 던진 말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용감한 개혁’을 내세운 유 의원의 재벌개혁 의지는 당색을 초월해 강했다. 이날 유 의원이 내세운 공약의 핵심은 ‘일감 몰아주기 금지’였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는 계열사의 일감을 받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 총수 기업 내부거래 원천 봉쇄

유 의원이 재벌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주목하는 것은 한국 경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란 대기업들이 타 기업을 배제하고 자기 계열사에 싼 가격으로 일을 몰아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 대기업이 건물관리를 자신의 계열사에만 맡기는 행태다. 계열사는 이를 통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덩치를 불려나가고, 계열사를 소유한 총수 일가는 사돈의 팔촌까지 미래를 보장받는다. 만약 계열사의 대주주가 재벌 2세 혹은 3세라면 가치가 높아진 보유주식을 팔아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기업의 확대와 상속에 악용돼온 한국 경제의 적폐다. 그동안 다양한 대안이 나왔지만 재벌대기업들은 숭숭 구멍 난 법망을 속속 피해갔다. 유 의원의 구상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가 단 한 주라도 주식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계열사의 일감을 따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계열사의 일감을 따오기 위해 만들어지는 기업은 설립 자체를 금지하려고 한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기존 기업이라면 그룹 내 타 계열사와 내부거래가 금지된다. 굳이 내부거래를 해야 한다면 총수 일가는 보유지분을 팔도록 하는 것이다.

[주목! 이 공약]③유승민 “총수 일가 지분 기업, 계열사 일감 못 맡게”…“거래 자유 침해” 반론도

유 의원은 “기업 간 내부거래로 얻은 수익이 총수 일가에 직접 귀속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내부거래가 필요하다면 총수 일가가 지배하지 않는 계열사로 만들어 거래하면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자동차의 차량을 운송하는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직접 주식을 소유하지 말고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이 지분을 보유토록 하라는 식이다. 만약 유 의원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현대글로비스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차량 물류를 포기하든지, 정 부회장이 자신의 지분 전부를 매각하든지 해야 한다.

유 의원은 동일한 기업집단에서 분리된 친족 재벌기업들 사이의 ‘서로 밀어주기 거래’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삼성에서 나온 신세계가 직원들의 퇴직연금을 들 때 삼성생명에 퇴직연금을 몰아주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뜻이다. 친족 재벌 간의 거래도 사실상 내부거래로 본다는 의미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에서 분리된 친족 재벌기업은 지난 10년간 300여개에 달한다.

■ 내부거래하려면 지분 팔아야

현행 상속증여세법과 공정거래법도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고 있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재벌대기업의 지배주주와 친족이 지분 3% 이상을 갖고 있는 계열사가 내부거래 비중이 30%가 넘을 경우 이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한다. 또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의 보유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 이상)가 일감 몰아주기나 사업기회유용(대기업집단 소속 기업이 직접 영위하면 이익이 되는 사업기회를 직접 영위하거나 자회사에 맡기는 행위)을 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유 의원 대선캠프에서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이종훈 전 의원은 “현행법은 내부거래의 성격과 규모를 따지는데 오히려 이것이 더 불합리하다”며 “기업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내부거래를 하되, 그 이익이 대기업 총수에게만 직접 흘러가지 말라는 것이 공약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폭스바겐 등 유수의 해외 기업들도 자회사를 통해 물류서비스 등을 제공하지만 계열사가 거래량에 따라 출자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재벌 총수의 사익편취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이 공약은 생경하다고 보기 어렵다. 2013년 일감 몰아주기 금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 이 전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빠졌다며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했다. 찬성토론에 나선 민병두 의원은 “(여당에서) 반대토론을 하시고 제가 야당인데 찬성토론을 (해서) 저도 헷갈린다”며 당황했을 정도다.

■ “위헌적” vs “한국에 불가피”

유 의원의 일감 몰아주기 금지 공약은 “거래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의견이 다소 우세하다.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이 있다는 이유로 거래 자체를 못하게 막는 것은 과잉규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공정위 출신의 이경만 공정거래연구소장은 “기존 공정거래법을 감안해보면 혁명적인 내용”이라며 “최근 대기업들의 벤처 투자 등을 감안하면 시행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많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과잉입법 우려는 진보진영에서도 마찬가지로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파격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경제학자 출신이 낸 아이디어로는 상당히 과격하고 경직적”이라며 “합리성을 중시하는 유 의원의 공약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현행 세법과 공정거래법이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해는 간다”면서도 “보수진영 반발을 고려하면 실제 입법화되기 매우 어려운 선거용 공약(空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찬성 여론도 만만찮다. 사실상 무력화된 세법과 공정거래법을 대체할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기준 8개 기업집단의 31개 회사 65명을 분석해보니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가 증가한 액수는 26조원이 넘고 이들의 수익률은 5만5000%가 넘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부회장 등 3인이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일군 부는 15조원으로 전체의 57.5%에 이르렀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매출 규모 1000억원이 넘는 16개사의 5년간 매출액 146조원 중 3분의 2인 97조원이 내부거래라고 밝혔다.

이상승 서울대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를 정면돌파하려 한다면 유 의원 공약은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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