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않는 자들이 만드는 재난

2024.06.24 20:27 입력 2024.06.24 20:28 수정

작년 7월은 비가 무섭고도 질기게 쏟아졌다. 월 강수량은 기상청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았다. 7월15일은,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14명, 경북 예천 산사태로 12명이 사망하는 등 희생자가 30명이 넘었다. 이런 기억은 기후위기 시대에 재난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재해가 늘어난다고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이 따라 늘지는 않는다. 올해 4월 대만을 강타한 지진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국가의 역량이 재난의 양상을 결정한다.

올해 5월 행정안전부는 ‘2024년 여름철 자연재난(풍수해 폭염) 종합대책’을, 충청북도는 ‘재난안전관리 강화전략’을 발표했다. 대책이 기대하는 그림은 이렇다. 홍수 위험이 생기면 인공지능 예측을 활용해 예보하고 인근 운전자의 내비게이션으로 안내되게 한다. 지하차도마다 진입차단시설을 설치하고 4인 담당자를 지정해 둔다. 국민에겐 동영상 홍보를 반복해 행동요령을 익히게 한다. 분명 정부와 지자체는 뭔가 하고 있다. 예측은 기술에, 대응은 일선 공무원과 국민에게 미루는 일.

홍수 위험을 알 수 없어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했던가. 참사 전날엔 미호천 교각공사 현장의 임시 제방이 위험하다는 신고가 있었다. 참사 당일 새벽엔 금강홍수통제소가 홍수경보를 보냈고, 아침엔 “제방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지하차도가 물에 잠길 수 있다, 차량통제가 필요하다”는 매우 구체적인 신고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난대응체계로 인입된 정보는 기대되는 결과를 산출하지 못했다. 총괄·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난대응체계의 총괄·조정 기능은, 안팎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여러 기관에서 필요한 조치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지도록 지휘하는 역할이다. 한국의 재난대응 실패의 핵심엔 총괄·조정 기능의 실패가 있다. 총괄·조정 역할을 맡은 이들은 ‘상황을 주시’하고 ‘만전을 기하라’는 말을 할지언정 어떤 정보를 파악하고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판단하지 않는다. 재난대응은 ‘너희들의 일’이라는 신호만 보낸다. 체계의 말단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CCTV를 더 많이 설치하고 재난안전통신망을 정비하고 일선 공무원의 훈련을 강화한들 전체를 관장하며 판단하고 지시하는 책임자가 없다면 체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현장에서의 각개전투에 기대는 것을 체계라 부를 수도 없다.

재난 대응이 실패했을 때 변명도 한결같다. ‘예상할 수 없었다’, ‘내가 현장에 가도 바뀔 것은 없었다’, ‘시간을 되돌아가도 달라질 것은 없다’.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우려 들지 않으며 오히려 총괄·조정 기능의 공백을 정당화한다. 재난 이후 내놓는 재발방지대책이 체계의 말단으로만 향하는 이유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쏟아내는 말이 또 있다. ‘지나칠 정도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다소 과하리만큼’ 대비하고 대응하라는 말이다. 방법을 모르니 강도만 주문하고 중심은 비우니 말단으로 위험이 몰린다. 해외 순방 일정 논란을 불식하려던 대통령이 산사태 현장을 방문하고, 해병대가 실종자 수색 활동을 시작하고, 한 병사가 물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건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스스로 배우려 들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배울 기회조차 가로막는다. 진상규명을 건너뛰고 내놓는 재발방지대책은 그것이 재발방지대책이 아님을 고백할 뿐이다. 오송참사 1주기를 앞두고 기억과 다짐의 추모행동이 제안되고 있다. 시민진상조사위원회가 보고서를 내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채 상병 특검법도 다시 제정을 향해가고 있다. 사건의 전 경과를 조사하고 복기하며 개선점을 찾을 때 재발방지대책도 만들어진다. 이 여름, 바뀔 것 없었다는 자들을 바꾸는 투쟁이 우리의 재발방지대책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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