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사과, 남겨진 5가지 물음

2020.05.17 13:18 입력 2020.05.18 12:22 수정
이하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 김창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중에서도 4세 경영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4세 경영은 전혀 핵심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과에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주목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왜 지금인가

이 부회장이 왜 ‘지금’ 사과를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국정농단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1심과 2심, 대법원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뇌물로 인정한 액수만 달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현재 양형 판단만 남겨두고 있다.

양형을 판단하게 될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삼성에 재발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때 재판부가 언급한 것이 미국의 연방양형지침서 8장이다. 이는 기업이 효과적인 감시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될 때, 양형을 깎아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판부의 주문 직후 “감시제도를 만들면 이 부회장을 봐주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일었다.

삼성은 재판부의 주문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올해 2월 5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가 공식 출범했다. 위원장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다. 준법위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이 부회장의 사과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준법위 활동은 이 부회장의 양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 부회장의 사과 역시 준법위 활동의 일환이기 때문에 양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재판, 왜 이렇게 중요한걸까

1심은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를 89억원으로 봤다. 최순실의 코어스포츠, 정유라의 말, 장시호의 영재센터를 모두 승계작업을 위한 뇌물로 인정했다. 회사 돈을 이용한 뇌물은 곧 ‘횡령’으로 이어지고 관련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이 부회장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3년 이상은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2심은 최순실 회사에 준 36억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특히 정유라가 사용한 말에 대해서는 말 자체나 말 값을 지불한 게 아니기 때문에 뇌물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대법원 판단은 또 달랐다. 대법원은 정유라의 말과 장시호 영재센터 지원을 모두 뇌물로 봤다. 총 86억 8081 만원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다시 판단하라며 2심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여기까지만 보면 대법원에서 인정한 뇌물액이 50억원이 넘기 때문에 집행유예는 불가능해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작량감경’ 이라는 규정(형법 제53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판사는 재량으로 형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경우 관련법에 명시된 ‘5년 이상 징역’에서 ‘2년 6개월’로 줄어 집행유예가 가능하게 된다. 이번 파기환송심이 이 부회장에게 중요한 이유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양형기준은 감경사유와 가중사유를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준을 벗어난 준법위 활동과 사과문 같은 범죄 후 정황을 근거로 감경이 되면 곤란하다”며 “이런 식으로 감경이 이뤄진다면 사실상 양형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당승계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에 과한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당승계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에 과한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사과까지 했는데 비판받는 이유는?

준법위 권고에 의한 사과, 그리고 이 사과가 양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다.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과에 대해 ‘이실직고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사과는 하는데 무엇 때문에 사과를 하는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민주주의21 대표인 김경률 회계사는 “재판부 주문에 의한 사과였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의 잘못 인정과 이에 대한 책임 정도의 내용은 담길 거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과였다. 내용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가령 경영권 승계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KBS 라디오에서 “논란이나 질책이 아니라 불법이다”라고 꼬집었다.

실제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로 이건희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과 신주인수권이 결합된 증권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무죄를 선고 받았음에도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다. 1996년 에버랜드 이사회는 주당 8만 5000원대인 전환사채를 주당 7700원에 125만4000여 주(96억원) 발행했다. 하지만 이런 ‘헐값’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주주였던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중앙일보 등은 모두 이 헐값의 전환사채를 ‘포기’한다. 전환사채의 97%가 제3자인 이 부회장 남매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다. 이들은 2주 후에 이를 주식으로 바꾸었고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다. 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됐다. 준법위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당시 주심 판사였다.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법무법인 지담 변호사는 “자신의 경영 승계를 위해 뇌물을 제공하고 뇌물을 주기 위해서 회삿돈을 횡령했다. 그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임에도 그런 내용은 사과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과문에서 최순실·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는 ‘재판중’이라고 표현됐다.

■준법위는 감형사유가 되어도 될까

2심에 이어 파기환송심을 맡은 정준영 재판장은 지난해 10월 25일 열린 1차 공판 때만 해도 “(준법위가) 이 사건 재판 진행이나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올해 1월에 갑자기 말을 바꿨다. 삼성이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한다면 양형 감경사유로 삼겠다고 한 것이다. 정 판사의 발언에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크게 반발했다.

결국 특검은 2월 24일 정 재판장에 대한 ‘기피신청’을 냈다. 재판장을 바꿔달라는 것이다. 특검은 정 재판장이 “일관성을 잃은 채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감경요소에 해당되지도 않는 삼성그룹 내의 준법위 설치·운영와 실효성 여부에 대해 양형심리를 진행하고, 이를 근거로 피고인 이재용 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는 재판장의 예단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특검의 지적처럼 준법위는 감형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 재판장은 미국 제도를 언급했지만 따져보면 이 부회장 사건에는 적용될 수 없다. 언급된 제도의 대상은 기업범죄이고 감시제도의 활동 시기는 사건 발생 ‘이전’이어야 한다. 불법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 같은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면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개인범죄이며 준법위는 사건 발생 ‘이후’ 꾸려졌다. 최한수 교수는 “준법위가 기업에 대한 감경 사유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피고인에 대한 감경 사유는 안 된다. 미국의 해당 조문을 보면 그렇게는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라며 “재판부와 삼성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준법위가 이 부회장의 감경사유가 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이재용이고 삼성이라는 회사는 피해자다. 그런데 피해자가 법을 잘 지키겠다고 하는 게 가해자의 양형사유가 된다? 법률적으로 감형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은 후 2018년 2월 5일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재용 부회장이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은 후 2018년 2월 5일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 “4세 승계를 말할 때가 아니다”

대대적으로 보도된 4세 승계와 관련해서도 살펴볼 지점이 있다. 김기식 정책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 내 지분율이 3%가 채 안 된다”며 “재산을 물려주느냐, 안 물려주느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인의 권한이지만 3%밖에 안 갖고 있는 사람이 회사 경영권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자신의 재산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도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부회장의 재산은 7조원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관련해 납부한 세금은 1995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 부터 60억 8000 만원을 받으면서 낸 16억원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고 남은 45억원이 현재 이 부회장의 종잣돈 노릇을 했다.

문제는 45억원이 7조가 되기까지 많은 의혹과 불법 논란이 일었지만 제대로 해명된 것은 없다는 점이다. 먼저 삼성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이다. 이 부회장은 45억원으로 당시 상장되지 않았던 두 회사의 주식을 싼값에 샀는데 얼마 뒤 두 회사가 상장이 되면서 주식 가치가 급증했다. 그렇게 이 회장은 45억원에 산 주식은 605억원에 매각했다.

다음은 에버랜드와 SDS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1997년 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사들였다. 이 부회장이 이를 사들이고 얼마 뒤, 두 회사가 또 상장되면서 이 부회장의 보유 지분은 수조원이 됐다. 45억원이 몇 년 만에 몇 조 가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2년 만해도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23%)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일단 당시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였던 에버랜드와 제일모직 일부가 합병된다. 합병으로 인해 이 부 회장은 제일모직의 주주가 될 수 있었다. 이어 2015년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이 1대 0.35의 비율로 합병된다. 그리고 이때 제일모직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사 가치를 부풀리는 회계 부정이 있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년 동안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이런 불법적인 상황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라며 “이 “지금 이 부회장은 4세 승계를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 진행 중인 재판을 잘 받을 때”라고 말했다.

김경률 회계사는 “사과문을 듣기 전에는 솔직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해 재판에 영향이라도 주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이런 사과로는 재판에 영향을 주기 어려워보인다”며 “이 부회장과 삼성이 지금 할 일은 검찰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정농단 양형판단이 남아있고 삼바 분식회계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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