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 담합’은 된다?…여당 ‘허용’ 압박에 공정위 제재 고심

2021.08.01 21:42 입력 2021.08.01 21:45 수정

국내외 해운업체 23곳 가격담합
공정위 ‘8000억원 과징금’ 심사
여 ‘업계 특수성 인정’ 법 개정안

관행 고려해도 법 허용 수준 넘어
“화주 국내 기업·소비자 부담 전가”

국내외 23개 해운업체가 한국·동아시아 노선에서 가격담합을 벌인 것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만간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해운업계는 물론, 여당에서도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해운업체 간 담합을 하더라도 이를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발의됐다. 그러나 특정 산업 보호를 위해 무제한 담합을 허용할 경우 소비자 전체에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이르면 9월 전원회의를 열고 항로 운임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적 선사 12개사와 해외 선사 11개사에 대한 심사에 착수하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최근 공정위 사무처는 이들 선사에 도합 약 80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발송했다.

해운업계는 “공정위가 규정한 담합은 운임을 함께 조정하는 정당한 행위로, 화주단체와의 협의 등 요건을 충족했다”고 반발했다. 실제 해운법 29조1항은 “선사 간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담합)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도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해운법에 선사들의 공동행위 관련 규정이 들어있다”면서 “이에 따라 처리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해운업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부산을 찾아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99.7%가 선박으로 운송되며 해운산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이라고 언급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운임 동맹은 외국 선사들도 하고 있는 일”이라며 “해운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안이 있는지 관계자들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해운업계의 입장을 반영해 공정위가 해운법에 따른 담합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해운법에 따라 규율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공정위는 해운업 특수성을 고려해도 이미 법에서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해운법 29조2항에는 담합을 하더라도 운임 등에 대한 협약을 하거나 내용을 변경할 때는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주단체와 운임과 부대비용 등 운송조건에 관해 서로 정보를 충분히 교환(해운법 29조6항)하도록 했지만 이 규정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공정위는 여당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담합을 무제한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담합에 대한 문턱을 더 낮출 경우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문제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대한민국 산업 전체를 고려해야지 특정 산업만 고려하면 안 된다”며 “담합을 허용하면 화주인 국내 기업에 부담이 전가되고, 이는 소비자의 가격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정영식 한국해양대 교수는 “2010년대 들어 미국과 EU(유럽연합)에서도 운임에 대한 담합은 허용하지 않고 있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번 제재를 계기로 해운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 교수는 “해운업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해운법에 점유율 등 구체적인 담합 허용 요건에 대해 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심사하고 공정위에 통보할 수 있도록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과 충돌하지 않도록 법 개정 과정에서 공정위와 충분한 협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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