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위협받는 한국

2022.08.28 09:4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서명한 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펜을 건네고 있다. /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서명한 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펜을 건네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8월 5일 중국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기후변화 협상을 비롯한 미중 간 협력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전 지구적인 공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미중 간의 대립이 기후변화 대응에 차질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8월 16일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을 통과시켰다. 미중 간의 갈등이 본격적인 ‘녹색 경쟁’으로 이어져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IRA는 향후 10년 동안 4850억달러(약 633조4100억원)의 예산을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헬스케어에 투자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예산의 80%에 달하는 3860억달러가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된다. 단, 관련 제품 부품 조달 등은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공급망 재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8월 20일 미국이 재생에너지 투자에 중국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됐다고 분석하며, “지구는 건전한 경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지석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기후위기를 두고 국제공조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높아 안 하겠다, 유럽에서의 감축 이행이 충분치 않으니 우리도 후퇴시킨다 등으로 서로 옥신각신했는데 이번 IRA 통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40%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태양광, 풍력, 전기차에 집중해 지원하겠다고 방향을 정리한 것”이라며 “이로써 미국과 중국이 에너지전환을 두고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됐는데, 이게 차라리 생산적이라고 본다. 과거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우주 개척을 두고 경쟁할 때 관련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양국의 녹색 경쟁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IRA 에너지전환의 지각변동

전문가들은 IRA를 산업계의 지각변동과 에너지전환을 가속화할 역사적인 법안으로 평가했다. 황민수 한국전기통신기술연구조합 전문위원은 “그동안 미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모범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IRA 통과로 유럽연합(EU) 다음으로 대규모 투자를 하게 됐다. 기후위기 대응에 가속도를 낼 수 있는 전환점을 맞았다고 본다”며 “IRA는 시장에 확실한 시그널을 줬다. 정부에서 투자하는 만큼 민간에서도 재생에너지 분야에 추가로 돈을 투자할 것이다. 세액공제로 사업을 망설였던 개발자들의 투자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9년 오바마 정부 당시 900억달러의 그린뉴딜이 시행됐다. 이번 법안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파급력을 지닐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단순히 계산하면 오바마 정부 때에 비해 5배 정도의 예산이 책정됐다. 동시에 지난 10년간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제조원가가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투자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라며 “지난 5월 유럽연합은 리파워EU(RepowerEU)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번 바이든 IRA는 글로벌 그린 빅뱅을 유도하는 마지막 도장을 찍은 법”이라고 말했다. 리파워EU는 유럽연합의 에너지 안보계획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비중을 높이고 재생가능 수소 프로젝트에 2억유로를 투입하는 계획이다.

김지석 전문위원은 “태양광은 미국의 경우 아직 설치량이 많지 않다. 중국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미국시장이 현재 중국의 규모 혹은 그 이상으로 키울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엄청난 지각변동을 몰고 올 수 있다”며 “만약 정부만 나서고 있고 자본시장이 냉담하다면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지만, 월가를 비롯한 금융가에서도 관련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다. 자본시장의 동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8월 17일 ‘월스트리트는 이 지출 법안을 싫어하지 않는다(Wall Street Doesn’t Hate This Spending Bill)’에서 IRA 통과에 반대했던 조 맨친 상원의원이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소식에 증시가 상승했다며 월가가 IRA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엔 기회로 작용

미국발 에너지전환 지각변동은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에도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8월 23일 블룸버그는 태양광발전 기업 한화솔루션과 풍력발전기업 CS윈드를 거론하며 한국의 재생에너지 기업이 IRA로 이익을 볼 것이라 전망했다. 기사는 IRA 통과로 내년에 한화솔루션이 2억달러의 세액공제를 받게 됐다고 언급하며 한화솔루션과 CS윈드 등 한국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미국시장에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IRA 통과가 국내 기업에 기회로 작동하지만, 국가적으로는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관련 기업의 해외 유출로 중장기적으로 국내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IRA가 통과되자 가장 먼저 전기차 신차의 보조금 지급 조건을 두고 국내 일자리 유출 문제가 대두됐다. IRA는 전기차 신차 구입에 세액공제를 통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급 조건에 따르면 전기차의 최종 생산이 북미지역이어야 하고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등 핵심광물은 일정비율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즉 미국 내 전기차 생산기지를 강화하고 배터리 공급망을 재정비해 탄소중립 달성과 일자리 확대를 연계한다는 의도다.

아이오닉, 아이오닉5, 코나EV, EV6, 니로 등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 현대차는 이번 세액공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 설립을 계획 중이긴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질 우려에 처했다. 대안으로 기존 미국공장의 생산라인 개조나 전기차 생산라인 증설 등이 거론되지만, 이는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 생산라인 증설은 국내 투자 및 생산 감소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실직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등 사라지는 일자리는 명확하다. IRA 통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할 전기차 재생에너지 산업 등이 거대한 시장과 혜택을 앞세운 미국 등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정작 국내 사업의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국내 풍력산업에서 핵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CS윈드는 미국, 대만, 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IRA 통과로 미국에서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불확실성이 높아 공장 건설을 보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우리 기업 중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제조·기술 능력이 뛰어나고 이미 미국의 사업 파트너인 기업들에 IRA 통과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고용이 미국으로 이전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고용이 빠른 속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로서는 미래산업을 미국이나 유럽에 빼앗기는 초기 국면에 들어선 셈인데, 그 결과 국내에서 좋은 일자리가 추가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협소한 내수기반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시장을 목표로 성장해온 한국에게는 치명적인 고용절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태양광발전 단지 / 권도현 기자

국내 태양광발전 단지 / 권도현 기자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한국 정부

한국의 정책 방향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과 배치된다. 에너지전환 시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하는데 일괄적인 법인세 감세 등의 정책은 미래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한병화 이사는 “각국 정부들은 대개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산업에 집중적으로 혜택을 준다. 우리처럼 뭉뚱그려서 법인세를 인하하는 정책은 효과가 모호한 낡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2020년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발표한 재생에너지와 일자리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재생에너지 일자리 수는 1150만개였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는 이 일자리가 2030년에는 3800만개, 2050년에는 4300만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고용창출 효과도 화석연료 대비 3배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은 지원정책 부족과 규제로 인해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7월 20일 열린 에너지전환포럼 ‘에너지 대전환과 일자리 토론회’에서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정규창 파트장은 ‘한국의 태양광 일자리 현황 및 전망’을 발표했다. 정 파트장은 “2020년 기준 국내 태양광 관련 일자리는 약 10만명으로 그중 77%가 중·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에 편중돼 있다”며 “2021년 국내 태양광 4.4GW 설치를 정점으로 올해는 이격거리 제한 등 신규 인허가 건 감소로 3GW 수준으로 예상되며 원부자재 가격 및 환율 상승 등 제조업 환경도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보급 및 산업 정책 없이는 신규 발전사업자 진입 외의 전통적인 일자리 수 증대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전환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모색해야겠지만 현실은 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조차 구성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통해 “재생에너지는 보급 여건을 고려해 목표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겠다”면서 구체적인 목표치를 내놓지 않았다. 지난 8월 18일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김상협 전 제주연구원장이 선임됐지만, 여전히 에너지전환의 구체적인 계획은 모호한 상태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아직 전문위원을 구성하지 않은 상황이라 에너지믹스 구성안이 언제 도출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탄소중립이 환경 이슈를 넘어 산업·통상 이슈로 확대되면서 각국의 기후위기 정책이 새로운 무역장벽이 되고 있다. 이는 국내 산업과 일자리를 위협한다. IRA뿐만 아니라 EU가 2023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탄소국경세와 민간 차원의 RE100선언 등도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에는 도전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 집약적인 한국 산업이 산업생태계 전반의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EU는 내년부터 특정 제품을 만들 때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추가로 관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예정이다. 황민수 전문위원은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내년부터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고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이 EU와 비교했을 때 훨씬 싸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이 EU의 배출권 기준보다 덜한 돈을 냈다면 수출 시 추가로 금액을 내야 한다”며 “철강의 경우 11% 정도가 마진인데 차액이 12%를 상회한다. 그러면 수출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데 유럽 시장에서 수출을 못 하면 타격이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대상 품목 중 시멘트와 비료는 EU 수출이 미미해 영향이 크지 않지만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은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 공시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과 수위가 높아지면서 기후변화 재무정부공개보고서 또한 의무화되고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에 한해 Scope3(모든 단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포함한 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를 의무화한 상황이라 이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가 공급망 유지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됐다”라며 “전력의 높은 탄소집약도와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은 한국의 기업들이 공급망에서 이탈하게 되는 원인이 될 가능성도 높다. 대기업도 이제 Scope3를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중소기업은 준비도 안 돼 있다. 주요기업들이 자기들의 배출량을 관리하려면 공급망 단위에 있는 협력업체의 배출량도 관리해야 하니까 주요 기업들이 배출량이 많은 협력업체와 관계를 끊고 다른 협력업체를 찾아가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자리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WTO 제소 실효성 의문

IRA로 한국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제외되자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한미 FTA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월 1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이런 의사를 직접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별 효과는 없을 전망이다. 김지석 전문위원은 “이 법안은 앨 고어 전 부통령이 1988년 상원의원 시절 과학자 제임스 한센의 증언을 통해 지구온난화를 공론화시킨 이후 30년이 지나 상원에서 통과된 법이다. 오랜 기간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의 염원이 담긴 법안이라 한국정부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부가 글로벌 흐름에 맞춰 선제적으로 에너지전환에 나서야 시장이 움직이고 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워나가면서 새로운 무역장벽에서 국내 산업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한병화 이사는 “특별한 정책이 필요하기보다는 글로벌 흐름에 맞춘 정책을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재민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녹색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산업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성장시킬 골든타임이 왔다. 그러나 당시 원전에만 집중하다가 기회를 놓쳤고, 블랙아웃이 발생한 후에는 석탄에너지를 늘리면서 사실상 재생에너지 발전은 후순위가 됐다. 원전을 강조하는 이번 정부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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